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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vs. “피에 굶주린 로자”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우드로 윌슨 ‘14개조 평화 원칙’ 발표

1차대전 참전과 ‘14개조 평화 원칙’은 윌슨을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킨 승부수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대통령은 국내 문제엔 진보적이었고 외교 정책에선 이상주의자였다. 국내에서는 소득세 개정, 아동의 노동 금지, 독과점 행위 규제 등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외교에서는 이상주의자답게 도덕 정치를 역설했다. 1917년 1차대전 참전을 결정할 때도 자국의 이익보다는 세계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의 이상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18년 1월 발표한...

3·1 운동과 2·8 독립선언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 일어나 1914년 1차대전 발발 후 일본이 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에 가담하자 한국인들은 이들 3국 협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독일이 승리해야 한국의 독립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독일의 승전을 갈망했다. 다행히 독일이 승승장구하자 1916년 초 손병희 교주를 중심으로 천도교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논의되었다. 1917년에는 1만여 명이 연서해 독일 수뇌부에 독립을 청원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17년 4월...

러시아혁명과 제정 러시아 붕괴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농민 정부’ 탄생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문턱에서, 러시아의 차르(황제)가 맞딱뜨린 것은 혁명의 소용돌이였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으로 차르의 권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사이 혁명 세력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국을 뿌리째 흔들었다. 혁명적 분위기는 1904년 초에도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으로 맹목적 애국주의가 노동자·농민에게까지 확산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김두봉 ‘조선말본’ 간행과 ‘말모이’ 사전

주시경의 문법 이론을 체계화한 문법책 오늘날 남북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휘면에서는 이질적인 점이 많아도 문법적인 면에서는 크게 보아 동질적이다. 이는 해방 후 남북 양쪽에서 한글 정책을 주도한 김두봉(1889~1961)과 최현배(1894~1970) 두 한글학자 덕분이다. 김두봉은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뒤 모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최남선이 1910년 설립한 ‘조선광문회’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광문회는 조선어사전을...

1859년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출간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 찰스 다윈(1809~1882)은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든버러 의과대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케임브리지대로 옮겨 신학을 전공했다.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이었다. 전 세계를 탐사할 예정인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가 탐사에 동행할 박물학자를 모집한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1831년 12월 다윈을 태우고 장도에...

박은식 ‘한국통사(痛史)’ 출간

우리는 왜 어떻게 망했는가를 서술 박은식(1859~1925)은 열렬한 독립투사이자 뛰어난 민족사학자였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해 동네 신동으로 불렸다. 10대 후반에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과 더불어 ‘황해도의 두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20대 초반 정약용의 제자에게서 실학을 배우기도 했지만 20대 중반 이항로의 제자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뒤로는 위정척사파 유학자 계열에 속했다. 1882년 7월 서울에서 임오군란을 목도하고...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 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는 건축가이면서 수도자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건축가’로 추앙받고 있고 그의 작품은 ‘어느 시대의 건축양식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초월의 건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 흐르듯 자유롭게 떠 있는 듯한 선적(線的) 형태들을 3차원의 건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아르누보’에 가깝다는 평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수도자처럼 살며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과한 장식과 지나치게 독창적인...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아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은 ‘유전학의 원조’로 불린다. 다만 1865년과 1866년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리해 발표했는데도 30여 년 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야 연구 업적이 재발견되어 그때부터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멘델은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메렌 지방(현재 체코령)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생물 자연발생설’ 논쟁에 결정적으로 종지부 찍어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프랑스 동부의 쥐라주 돌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하고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 화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854년 릴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화학자에서 미생물학자로 변신했다. 당시 릴 지방에는 포도주 양조공장이 많았다. 너무 빨리 시어지는 포도주로 마음고생이 심하던 양조업자들은 파스퇴르에게 원인 분석을 의뢰했다. 파스퇴르는 알코올 발효를...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vs. “피에 굶주린 로자”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우드로 윌슨 ‘14개조 평화 원칙’ 발표

1차대전 참전과 ‘14개조 평화 원칙’은 윌슨을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킨 승부수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대통령은 국내 문제엔 진보적이었고 외교 정책에선 이상주의자였다. 국내에서는 소득세 개정, 아동의 노동 금지, 독과점 행위 규제 등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외교에서는 이상주의자답게 도덕 정치를 역설했다. 1917년 1차대전 참전을 결정할 때도 자국의 이익보다는 세계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의 이상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18년 1월 발표한...

3·1 운동과 2·8 독립선언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 일어나 1914년 1차대전 발발 후 일본이 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에 가담하자 한국인들은 이들 3국 협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독일이 승리해야 한국의 독립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독일의 승전을 갈망했다. 다행히 독일이 승승장구하자 1916년 초 손병희 교주를 중심으로 천도교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논의되었다. 1917년에는 1만여 명이 연서해 독일 수뇌부에 독립을 청원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17년 4월...

러시아혁명과 제정 러시아 붕괴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농민 정부’ 탄생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문턱에서, 러시아의 차르(황제)가 맞딱뜨린 것은 혁명의 소용돌이였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으로 차르의 권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사이 혁명 세력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국을 뿌리째 흔들었다. 혁명적 분위기는 1904년 초에도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으로 맹목적 애국주의가 노동자·농민에게까지 확산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김두봉 ‘조선말본’ 간행과 ‘말모이’ 사전

주시경의 문법 이론을 체계화한 문법책 오늘날 남북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휘면에서는 이질적인 점이 많아도 문법적인 면에서는 크게 보아 동질적이다. 이는 해방 후 남북 양쪽에서 한글 정책을 주도한 김두봉(1889~1961)과 최현배(1894~1970) 두 한글학자 덕분이다. 김두봉은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뒤 모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최남선이 1910년 설립한 ‘조선광문회’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광문회는 조선어사전을...

1859년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출간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 찰스 다윈(1809~1882)은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든버러 의과대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케임브리지대로 옮겨 신학을 전공했다.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이었다. 전 세계를 탐사할 예정인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가 탐사에 동행할 박물학자를 모집한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1831년 12월 다윈을 태우고 장도에...

박은식 ‘한국통사(痛史)’ 출간

우리는 왜 어떻게 망했는가를 서술 박은식(1859~1925)은 열렬한 독립투사이자 뛰어난 민족사학자였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해 동네 신동으로 불렸다. 10대 후반에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과 더불어 ‘황해도의 두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20대 초반 정약용의 제자에게서 실학을 배우기도 했지만 20대 중반 이항로의 제자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뒤로는 위정척사파 유학자 계열에 속했다. 1882년 7월 서울에서 임오군란을 목도하고...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 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는 건축가이면서 수도자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건축가’로 추앙받고 있고 그의 작품은 ‘어느 시대의 건축양식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초월의 건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 흐르듯 자유롭게 떠 있는 듯한 선적(線的) 형태들을 3차원의 건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아르누보’에 가깝다는 평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수도자처럼 살며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과한 장식과 지나치게 독창적인...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아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은 ‘유전학의 원조’로 불린다. 다만 1865년과 1866년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리해 발표했는데도 30여 년 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야 연구 업적이 재발견되어 그때부터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멘델은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메렌 지방(현재 체코령)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생물 자연발생설’ 논쟁에 결정적으로 종지부 찍어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프랑스 동부의 쥐라주 돌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하고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 화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854년 릴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화학자에서 미생물학자로 변신했다. 당시 릴 지방에는 포도주 양조공장이 많았다. 너무 빨리 시어지는 포도주로 마음고생이 심하던 양조업자들은 파스퇴르에게 원인 분석을 의뢰했다. 파스퇴르는 알코올 발효를...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vs. “피에 굶주린 로자”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우드로 윌슨 ‘14개조 평화 원칙’ 발표

1차대전 참전과 ‘14개조 평화 원칙’은 윌슨을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킨 승부수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대통령은 국내 문제엔 진보적이었고 외교 정책에선 이상주의자였다. 국내에서는 소득세 개정, 아동의 노동 금지, 독과점 행위 규제 등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외교에서는 이상주의자답게 도덕 정치를 역설했다. 1917년 1차대전 참전을 결정할 때도 자국의 이익보다는 세계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의 이상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18년 1월 발표한...

3·1 운동과 2·8 독립선언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 일어나 1914년 1차대전 발발 후 일본이 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에 가담하자 한국인들은 이들 3국 협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독일이 승리해야 한국의 독립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독일의 승전을 갈망했다. 다행히 독일이 승승장구하자 1916년 초 손병희 교주를 중심으로 천도교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논의되었다. 1917년에는 1만여 명이 연서해 독일 수뇌부에 독립을 청원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17년 4월...

러시아혁명과 제정 러시아 붕괴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농민 정부’ 탄생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문턱에서, 러시아의 차르(황제)가 맞딱뜨린 것은 혁명의 소용돌이였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으로 차르의 권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사이 혁명 세력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국을 뿌리째 흔들었다. 혁명적 분위기는 1904년 초에도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으로 맹목적 애국주의가 노동자·농민에게까지 확산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김두봉 ‘조선말본’ 간행과 ‘말모이’ 사전

주시경의 문법 이론을 체계화한 문법책 오늘날 남북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휘면에서는 이질적인 점이 많아도 문법적인 면에서는 크게 보아 동질적이다. 이는 해방 후 남북 양쪽에서 한글 정책을 주도한 김두봉(1889~1961)과 최현배(1894~1970) 두 한글학자 덕분이다. 김두봉은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뒤 모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최남선이 1910년 설립한 ‘조선광문회’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광문회는 조선어사전을...

1859년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출간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 찰스 다윈(1809~1882)은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든버러 의과대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케임브리지대로 옮겨 신학을 전공했다.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이었다. 전 세계를 탐사할 예정인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가 탐사에 동행할 박물학자를 모집한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1831년 12월 다윈을 태우고 장도에...

박은식 ‘한국통사(痛史)’ 출간

우리는 왜 어떻게 망했는가를 서술 박은식(1859~1925)은 열렬한 독립투사이자 뛰어난 민족사학자였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해 동네 신동으로 불렸다. 10대 후반에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과 더불어 ‘황해도의 두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20대 초반 정약용의 제자에게서 실학을 배우기도 했지만 20대 중반 이항로의 제자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뒤로는 위정척사파 유학자 계열에 속했다. 1882년 7월 서울에서 임오군란을 목도하고...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 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는 건축가이면서 수도자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건축가’로 추앙받고 있고 그의 작품은 ‘어느 시대의 건축양식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초월의 건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 흐르듯 자유롭게 떠 있는 듯한 선적(線的) 형태들을 3차원의 건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아르누보’에 가깝다는 평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수도자처럼 살며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과한 장식과 지나치게 독창적인...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아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은 ‘유전학의 원조’로 불린다. 다만 1865년과 1866년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리해 발표했는데도 30여 년 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야 연구 업적이 재발견되어 그때부터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멘델은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메렌 지방(현재 체코령)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생물 자연발생설’ 논쟁에 결정적으로 종지부 찍어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프랑스 동부의 쥐라주 돌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하고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 화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854년 릴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화학자에서 미생물학자로 변신했다. 당시 릴 지방에는 포도주 양조공장이 많았다. 너무 빨리 시어지는 포도주로 마음고생이 심하던 양조업자들은 파스퇴르에게 원인 분석을 의뢰했다. 파스퇴르는 알코올 발효를...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vs. “피에 굶주린 로자”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우드로 윌슨 ‘14개조 평화 원칙’ 발표

1차대전 참전과 ‘14개조 평화 원칙’은 윌슨을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킨 승부수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대통령은 국내 문제엔 진보적이었고 외교 정책에선 이상주의자였다. 국내에서는 소득세 개정, 아동의 노동 금지, 독과점 행위 규제 등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외교에서는 이상주의자답게 도덕 정치를 역설했다. 1917년 1차대전 참전을 결정할 때도 자국의 이익보다는 세계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의 이상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18년 1월 발표한...

3·1 운동과 2·8 독립선언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 일어나 1914년 1차대전 발발 후 일본이 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에 가담하자 한국인들은 이들 3국 협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독일이 승리해야 한국의 독립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독일의 승전을 갈망했다. 다행히 독일이 승승장구하자 1916년 초 손병희 교주를 중심으로 천도교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논의되었다. 1917년에는 1만여 명이 연서해 독일 수뇌부에 독립을 청원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17년 4월...

러시아혁명과 제정 러시아 붕괴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농민 정부’ 탄생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문턱에서, 러시아의 차르(황제)가 맞딱뜨린 것은 혁명의 소용돌이였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으로 차르의 권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사이 혁명 세력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국을 뿌리째 흔들었다. 혁명적 분위기는 1904년 초에도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으로 맹목적 애국주의가 노동자·농민에게까지 확산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김두봉 ‘조선말본’ 간행과 ‘말모이’ 사전

주시경의 문법 이론을 체계화한 문법책 오늘날 남북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휘면에서는 이질적인 점이 많아도 문법적인 면에서는 크게 보아 동질적이다. 이는 해방 후 남북 양쪽에서 한글 정책을 주도한 김두봉(1889~1961)과 최현배(1894~1970) 두 한글학자 덕분이다. 김두봉은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뒤 모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최남선이 1910년 설립한 ‘조선광문회’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광문회는 조선어사전을...

1859년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출간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 찰스 다윈(1809~1882)은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든버러 의과대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케임브리지대로 옮겨 신학을 전공했다.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이었다. 전 세계를 탐사할 예정인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가 탐사에 동행할 박물학자를 모집한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1831년 12월 다윈을 태우고 장도에...

박은식 ‘한국통사(痛史)’ 출간

우리는 왜 어떻게 망했는가를 서술 박은식(1859~1925)은 열렬한 독립투사이자 뛰어난 민족사학자였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해 동네 신동으로 불렸다. 10대 후반에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과 더불어 ‘황해도의 두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20대 초반 정약용의 제자에게서 실학을 배우기도 했지만 20대 중반 이항로의 제자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뒤로는 위정척사파 유학자 계열에 속했다. 1882년 7월 서울에서 임오군란을 목도하고...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 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는 건축가이면서 수도자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건축가’로 추앙받고 있고 그의 작품은 ‘어느 시대의 건축양식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초월의 건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 흐르듯 자유롭게 떠 있는 듯한 선적(線的) 형태들을 3차원의 건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아르누보’에 가깝다는 평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수도자처럼 살며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과한 장식과 지나치게 독창적인...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아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은 ‘유전학의 원조’로 불린다. 다만 1865년과 1866년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리해 발표했는데도 30여 년 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야 연구 업적이 재발견되어 그때부터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멘델은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메렌 지방(현재 체코령)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생물 자연발생설’ 논쟁에 결정적으로 종지부 찍어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프랑스 동부의 쥐라주 돌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하고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 화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854년 릴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화학자에서 미생물학자로 변신했다. 당시 릴 지방에는 포도주 양조공장이 많았다. 너무 빨리 시어지는 포도주로 마음고생이 심하던 양조업자들은 파스퇴르에게 원인 분석을 의뢰했다. 파스퇴르는 알코올 발효를...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vs. “피에 굶주린 로자”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우드로 윌슨 ‘14개조 평화 원칙’ 발표

1차대전 참전과 ‘14개조 평화 원칙’은 윌슨을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킨 승부수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대통령은 국내 문제엔 진보적이었고 외교 정책에선 이상주의자였다. 국내에서는 소득세 개정, 아동의 노동 금지, 독과점 행위 규제 등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외교에서는 이상주의자답게 도덕 정치를 역설했다. 1917년 1차대전 참전을 결정할 때도 자국의 이익보다는 세계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의 이상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18년 1월 발표한...

3·1 운동과 2·8 독립선언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 일어나 1914년 1차대전 발발 후 일본이 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에 가담하자 한국인들은 이들 3국 협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독일이 승리해야 한국의 독립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독일의 승전을 갈망했다. 다행히 독일이 승승장구하자 1916년 초 손병희 교주를 중심으로 천도교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논의되었다. 1917년에는 1만여 명이 연서해 독일 수뇌부에 독립을 청원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17년 4월...

러시아혁명과 제정 러시아 붕괴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농민 정부’ 탄생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문턱에서, 러시아의 차르(황제)가 맞딱뜨린 것은 혁명의 소용돌이였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으로 차르의 권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사이 혁명 세력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국을 뿌리째 흔들었다. 혁명적 분위기는 1904년 초에도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으로 맹목적 애국주의가 노동자·농민에게까지 확산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김두봉 ‘조선말본’ 간행과 ‘말모이’ 사전

주시경의 문법 이론을 체계화한 문법책 오늘날 남북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휘면에서는 이질적인 점이 많아도 문법적인 면에서는 크게 보아 동질적이다. 이는 해방 후 남북 양쪽에서 한글 정책을 주도한 김두봉(1889~1961)과 최현배(1894~1970) 두 한글학자 덕분이다. 김두봉은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뒤 모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최남선이 1910년 설립한 ‘조선광문회’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광문회는 조선어사전을...

1859년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출간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 찰스 다윈(1809~1882)은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든버러 의과대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케임브리지대로 옮겨 신학을 전공했다.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이었다. 전 세계를 탐사할 예정인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가 탐사에 동행할 박물학자를 모집한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1831년 12월 다윈을 태우고 장도에...

박은식 ‘한국통사(痛史)’ 출간

우리는 왜 어떻게 망했는가를 서술 박은식(1859~1925)은 열렬한 독립투사이자 뛰어난 민족사학자였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해 동네 신동으로 불렸다. 10대 후반에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과 더불어 ‘황해도의 두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20대 초반 정약용의 제자에게서 실학을 배우기도 했지만 20대 중반 이항로의 제자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뒤로는 위정척사파 유학자 계열에 속했다. 1882년 7월 서울에서 임오군란을 목도하고...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 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는 건축가이면서 수도자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건축가’로 추앙받고 있고 그의 작품은 ‘어느 시대의 건축양식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초월의 건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 흐르듯 자유롭게 떠 있는 듯한 선적(線的) 형태들을 3차원의 건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아르누보’에 가깝다는 평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수도자처럼 살며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과한 장식과 지나치게 독창적인...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아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은 ‘유전학의 원조’로 불린다. 다만 1865년과 1866년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리해 발표했는데도 30여 년 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야 연구 업적이 재발견되어 그때부터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멘델은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메렌 지방(현재 체코령)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생물 자연발생설’ 논쟁에 결정적으로 종지부 찍어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프랑스 동부의 쥐라주 돌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하고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 화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854년 릴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화학자에서 미생물학자로 변신했다. 당시 릴 지방에는 포도주 양조공장이 많았다. 너무 빨리 시어지는 포도주로 마음고생이 심하던 양조업자들은 파스퇴르에게 원인 분석을 의뢰했다. 파스퇴르는 알코올 발효를...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vs. “피에 굶주린 로자”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우드로 윌슨 ‘14개조 평화 원칙’ 발표

1차대전 참전과 ‘14개조 평화 원칙’은 윌슨을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킨 승부수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대통령은 국내 문제엔 진보적이었고 외교 정책에선 이상주의자였다. 국내에서는 소득세 개정, 아동의 노동 금지, 독과점 행위 규제 등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외교에서는 이상주의자답게 도덕 정치를 역설했다. 1917년 1차대전 참전을 결정할 때도 자국의 이익보다는 세계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의 이상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18년 1월 발표한...

3·1 운동과 2·8 독립선언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 일어나 1914년 1차대전 발발 후 일본이 3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에 가담하자 한국인들은 이들 3국 협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독일이 승리해야 한국의 독립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독일의 승전을 갈망했다. 다행히 독일이 승승장구하자 1916년 초 손병희 교주를 중심으로 천도교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논의되었다. 1917년에는 1만여 명이 연서해 독일 수뇌부에 독립을 청원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17년 4월...

러시아혁명과 제정 러시아 붕괴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농민 정부’ 탄생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의 문턱에서, 러시아의 차르(황제)가 맞딱뜨린 것은 혁명의 소용돌이였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파업으로 차르의 권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사이 혁명 세력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국을 뿌리째 흔들었다. 혁명적 분위기는 1904년 초에도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으로 맹목적 애국주의가 노동자·농민에게까지 확산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김두봉 ‘조선말본’ 간행과 ‘말모이’ 사전

주시경의 문법 이론을 체계화한 문법책 오늘날 남북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휘면에서는 이질적인 점이 많아도 문법적인 면에서는 크게 보아 동질적이다. 이는 해방 후 남북 양쪽에서 한글 정책을 주도한 김두봉(1889~1961)과 최현배(1894~1970) 두 한글학자 덕분이다. 김두봉은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1908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뒤 모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최남선이 1910년 설립한 ‘조선광문회’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광문회는 조선어사전을...

1859년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출간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 찰스 다윈(1809~1882)은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든버러 의과대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케임브리지대로 옮겨 신학을 전공했다. ‘진화론’이라는 운명이 그를 향해 손짓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1831년이었다. 전 세계를 탐사할 예정인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가 탐사에 동행할 박물학자를 모집한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1831년 12월 다윈을 태우고 장도에...

박은식 ‘한국통사(痛史)’ 출간

우리는 왜 어떻게 망했는가를 서술 박은식(1859~1925)은 열렬한 독립투사이자 뛰어난 민족사학자였다.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해 동네 신동으로 불렸다. 10대 후반에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과 더불어 ‘황해도의 두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20대 초반 정약용의 제자에게서 실학을 배우기도 했지만 20대 중반 이항로의 제자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뒤로는 위정척사파 유학자 계열에 속했다. 1882년 7월 서울에서 임오군란을 목도하고...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1883년 : 안토니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공사 총감독에 임명

↑ 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는 건축가이면서 수도자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건축가’로 추앙받고 있고 그의 작품은 ‘어느 시대의 건축양식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초월의 건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 흐르듯 자유롭게 떠 있는 듯한 선적(線的) 형태들을 3차원의 건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아르누보’에 가깝다는 평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수도자처럼 살며 오로지 건축에만 관심을 두었으나 과한 장식과 지나치게 독창적인...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1866년 : 그레고어 멘델, 유전 법칙 증명한 ‘식물의 잡종 연구’ 논문 발표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아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은 ‘유전학의 원조’로 불린다. 다만 1865년과 1866년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리해 발표했는데도 30여 년 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야 연구 업적이 재발견되어 그때부터 ‘유전법칙의 선구자’로 생물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멘델은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메렌 지방(현재 체코령)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1862년 : 루이 파스퇴르, 생물의 자연발생설 부정하고 생물속생설 증명

‘생물 자연발생설’ 논쟁에 결정적으로 종지부 찍어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프랑스 동부의 쥐라주 돌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하고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 화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854년 릴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화학자에서 미생물학자로 변신했다. 당시 릴 지방에는 포도주 양조공장이 많았다. 너무 빨리 시어지는 포도주로 마음고생이 심하던 양조업자들은 파스퇴르에게 원인 분석을 의뢰했다. 파스퇴르는 알코올 발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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