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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사망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과 편력은 2년이 채 모자라는 100년을 살았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넓고도 깊다. 학문세계에서는 수학자․철학자였고, 사회활동에서는 반핵운동가․교육혁신가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1950년)할 만큼 문필가로서의 입지도 확고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시대의 요청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러셀의 올곧은 삶의 궤적은 가문의 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상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러셀 경은 찰스 2세에 모반으로 가담했다가 교수대에서 삶을 마쳤고,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독일, 1 차대전 중 ‘무제한 잠수함작전’ 시작
↑ 독일 킬(Kiel) 항에 정박 중인 U 보트 1차대전 발발과 함께 시작된 영국의 해상봉쇄로 발트해와 북해에 발이 묶이게되자 독일은 1915년 2월 영국 영해 전체를 전쟁지역으로 선포하며 영국에 맞섰다. 독일의 ‘U보트’는 영국으로 가는 수많은 중립국 선박들을 격침시켰고, 1915년 7월에는 영국의 호화여객선 ‘루시타니아호’까지 침몰시켜 128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민간인 1198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격분한 윌슨 미 대통령이 강력히 경고하자...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②] 나폴리, 아말피, 카라라, 친퀘테레
by 김지지 ■나폴리, 전성기 때는 유럽 제2의 도시 카프리 섬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을 태운 페리호가 향한 곳은 나폴리였다. 나폴리는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중심도시이자 캄파니아 지방의 주도로,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다. 나폴리 왕국의 전성기였던 17세기에는 파리 다음 가는 유럽 제2의 도시였고 1860년대 이탈리아가 통일될 당시에는 로마보다 더 번창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주류 입장에서 나폴리는 1860년대 이탈리아가...
노기남 한국인 첫 주교 서품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생생한 목격자 노기남(1901~1984) 신부는 일제 하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로 임명되어 1967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목격자였다. 노기남은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의 11남매 중 막내로 평북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당 공부를 하던 그가 프랑스 신부가 운영하는 서울 원효로의 성심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16세 때인 1917년 9월이었다. 노기남은 12년간의...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 발발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이던 진주만은 2시간 만에 초토화 돼 1940년 7월에 출범한 제2차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겨냥한 곳은 동남아였다. 일본은 먼저 독일의 괴뢰 정부인 프랑스의 ‘비시 정부’를 압박해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부 인도차이나에 비행 기지를 건설했다. 중일전쟁의 상대국인 중국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버마 로드’를 폭격하기 위해서였다. 버마 로드를 통해 중국의 장개석 정부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던 미국은 그해 9월 26일 일본에 비행기 원료, 고철, 강철 판매를 전면...
창씨개명 시행
신사참배와 조선어 폐지에 이은 일제 ‘황민화 정책’의 완결편 1937년 7월의 중일전쟁을 분수령으로 일제는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인의 일본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매월 하루를 ‘애국의 날’로 정해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봉창을 강요했다. 1937년 10월부터는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합심하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황국신민 서사’를 제창하도록 강요하고 전국의 학교에는 천황의...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출간
찬사와 비판 동시에 받으며 큰 반향 불러 일으켜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서 독일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시절부터 농장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1919년 어렵게 스탠퍼드대에 진학해서도 목장이나 공사장, 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고단한 문학청년의 길을 걸었다. 1925년 ‘뉴욕 아메리칸’지의 기자로 입사했으나 기사가...
전형필 간송미술관 건립
전형필이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막은 것은 하늘의 뜻 전형필(1906~1962)이 젊은 나이에 해마다 10만 석을 수확하는 조선 최대 지주의 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그나마 우리 민족에 내려준 선물이다. 전형필의 이런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전형필의 증조부 전계훈의 부(富) 덕분이었다. 증조부는 배우개장(지금의 동대문시장)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전국 곳곳에도 수만 석 농지를 보유하고 있던 당대 최고...
에드거 스노 ‘중국의 붉은 별’ 출간
격동기 중국의 생생한 현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그의 운명 에드거 스노(1905~1972)가 운명의 땅 중국과 처음 대면한 것은 23살이던 1928년이었다. 당시 그는 미주리대 언론학부를 졸업하고 대공황 직전의 호황 속에서 증권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으로 1년간 여정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노가 6주 정도 머문다는 생각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한 것은 1928년 7월 6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중국의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 인민들의...
신용욱 조선항공공업사 설립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 신용욱(1901~1962)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였다. 그는 전북 고창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비행 유학을 떠났다. 1922년 오쿠리 비행학교에서 1등 비행사 면허를 따고 동아항공전문학교를 졸업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비행사가 되었다. 귀국 후, 사재를 들여 여의도에 조선비행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미국에서 신형 비행기 1대를 들여와 1930년 5월 조선비행학교를 개교했다. 일본에서도...
버트런드 러셀 사망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과 편력은 2년이 채 모자라는 100년을 살았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넓고도 깊다. 학문세계에서는 수학자․철학자였고, 사회활동에서는 반핵운동가․교육혁신가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1950년)할 만큼 문필가로서의 입지도 확고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시대의 요청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러셀의 올곧은 삶의 궤적은 가문의 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상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러셀 경은 찰스 2세에 모반으로 가담했다가 교수대에서 삶을 마쳤고,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독일, 1 차대전 중 ‘무제한 잠수함작전’ 시작
↑ 독일 킬(Kiel) 항에 정박 중인 U 보트 1차대전 발발과 함께 시작된 영국의 해상봉쇄로 발트해와 북해에 발이 묶이게되자 독일은 1915년 2월 영국 영해 전체를 전쟁지역으로 선포하며 영국에 맞섰다. 독일의 ‘U보트’는 영국으로 가는 수많은 중립국 선박들을 격침시켰고, 1915년 7월에는 영국의 호화여객선 ‘루시타니아호’까지 침몰시켜 128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민간인 1198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격분한 윌슨 미 대통령이 강력히 경고하자...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②] 나폴리, 아말피, 카라라, 친퀘테레
by 김지지 ■나폴리, 전성기 때는 유럽 제2의 도시 카프리 섬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을 태운 페리호가 향한 곳은 나폴리였다. 나폴리는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중심도시이자 캄파니아 지방의 주도로,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다. 나폴리 왕국의 전성기였던 17세기에는 파리 다음 가는 유럽 제2의 도시였고 1860년대 이탈리아가 통일될 당시에는 로마보다 더 번창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주류 입장에서 나폴리는 1860년대 이탈리아가...
노기남 한국인 첫 주교 서품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생생한 목격자 노기남(1901~1984) 신부는 일제 하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로 임명되어 1967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목격자였다. 노기남은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의 11남매 중 막내로 평북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당 공부를 하던 그가 프랑스 신부가 운영하는 서울 원효로의 성심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16세 때인 1917년 9월이었다. 노기남은 12년간의...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 발발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이던 진주만은 2시간 만에 초토화 돼 1940년 7월에 출범한 제2차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겨냥한 곳은 동남아였다. 일본은 먼저 독일의 괴뢰 정부인 프랑스의 ‘비시 정부’를 압박해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부 인도차이나에 비행 기지를 건설했다. 중일전쟁의 상대국인 중국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버마 로드’를 폭격하기 위해서였다. 버마 로드를 통해 중국의 장개석 정부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던 미국은 그해 9월 26일 일본에 비행기 원료, 고철, 강철 판매를 전면...
창씨개명 시행
신사참배와 조선어 폐지에 이은 일제 ‘황민화 정책’의 완결편 1937년 7월의 중일전쟁을 분수령으로 일제는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인의 일본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매월 하루를 ‘애국의 날’로 정해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봉창을 강요했다. 1937년 10월부터는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합심하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황국신민 서사’를 제창하도록 강요하고 전국의 학교에는 천황의...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출간
찬사와 비판 동시에 받으며 큰 반향 불러 일으켜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서 독일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시절부터 농장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1919년 어렵게 스탠퍼드대에 진학해서도 목장이나 공사장, 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고단한 문학청년의 길을 걸었다. 1925년 ‘뉴욕 아메리칸’지의 기자로 입사했으나 기사가...
전형필 간송미술관 건립
전형필이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막은 것은 하늘의 뜻 전형필(1906~1962)이 젊은 나이에 해마다 10만 석을 수확하는 조선 최대 지주의 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그나마 우리 민족에 내려준 선물이다. 전형필의 이런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전형필의 증조부 전계훈의 부(富) 덕분이었다. 증조부는 배우개장(지금의 동대문시장)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전국 곳곳에도 수만 석 농지를 보유하고 있던 당대 최고...
에드거 스노 ‘중국의 붉은 별’ 출간
격동기 중국의 생생한 현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그의 운명 에드거 스노(1905~1972)가 운명의 땅 중국과 처음 대면한 것은 23살이던 1928년이었다. 당시 그는 미주리대 언론학부를 졸업하고 대공황 직전의 호황 속에서 증권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으로 1년간 여정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노가 6주 정도 머문다는 생각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한 것은 1928년 7월 6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중국의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 인민들의...
신용욱 조선항공공업사 설립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 신용욱(1901~1962)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였다. 그는 전북 고창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비행 유학을 떠났다. 1922년 오쿠리 비행학교에서 1등 비행사 면허를 따고 동아항공전문학교를 졸업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비행사가 되었다. 귀국 후, 사재를 들여 여의도에 조선비행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미국에서 신형 비행기 1대를 들여와 1930년 5월 조선비행학교를 개교했다. 일본에서도...
버트런드 러셀 사망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과 편력은 2년이 채 모자라는 100년을 살았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넓고도 깊다. 학문세계에서는 수학자․철학자였고, 사회활동에서는 반핵운동가․교육혁신가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1950년)할 만큼 문필가로서의 입지도 확고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시대의 요청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러셀의 올곧은 삶의 궤적은 가문의 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상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러셀 경은 찰스 2세에 모반으로 가담했다가 교수대에서 삶을 마쳤고,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독일, 1 차대전 중 ‘무제한 잠수함작전’ 시작
↑ 독일 킬(Kiel) 항에 정박 중인 U 보트 1차대전 발발과 함께 시작된 영국의 해상봉쇄로 발트해와 북해에 발이 묶이게되자 독일은 1915년 2월 영국 영해 전체를 전쟁지역으로 선포하며 영국에 맞섰다. 독일의 ‘U보트’는 영국으로 가는 수많은 중립국 선박들을 격침시켰고, 1915년 7월에는 영국의 호화여객선 ‘루시타니아호’까지 침몰시켜 128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민간인 1198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격분한 윌슨 미 대통령이 강력히 경고하자...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②] 나폴리, 아말피, 카라라, 친퀘테레
by 김지지 ■나폴리, 전성기 때는 유럽 제2의 도시 카프리 섬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을 태운 페리호가 향한 곳은 나폴리였다. 나폴리는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중심도시이자 캄파니아 지방의 주도로,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다. 나폴리 왕국의 전성기였던 17세기에는 파리 다음 가는 유럽 제2의 도시였고 1860년대 이탈리아가 통일될 당시에는 로마보다 더 번창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주류 입장에서 나폴리는 1860년대 이탈리아가...
노기남 한국인 첫 주교 서품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생생한 목격자 노기남(1901~1984) 신부는 일제 하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로 임명되어 1967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목격자였다. 노기남은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의 11남매 중 막내로 평북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당 공부를 하던 그가 프랑스 신부가 운영하는 서울 원효로의 성심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16세 때인 1917년 9월이었다. 노기남은 12년간의...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 발발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이던 진주만은 2시간 만에 초토화 돼 1940년 7월에 출범한 제2차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겨냥한 곳은 동남아였다. 일본은 먼저 독일의 괴뢰 정부인 프랑스의 ‘비시 정부’를 압박해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부 인도차이나에 비행 기지를 건설했다. 중일전쟁의 상대국인 중국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버마 로드’를 폭격하기 위해서였다. 버마 로드를 통해 중국의 장개석 정부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던 미국은 그해 9월 26일 일본에 비행기 원료, 고철, 강철 판매를 전면...
창씨개명 시행
신사참배와 조선어 폐지에 이은 일제 ‘황민화 정책’의 완결편 1937년 7월의 중일전쟁을 분수령으로 일제는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인의 일본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매월 하루를 ‘애국의 날’로 정해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봉창을 강요했다. 1937년 10월부터는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합심하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황국신민 서사’를 제창하도록 강요하고 전국의 학교에는 천황의...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출간
찬사와 비판 동시에 받으며 큰 반향 불러 일으켜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서 독일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시절부터 농장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1919년 어렵게 스탠퍼드대에 진학해서도 목장이나 공사장, 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고단한 문학청년의 길을 걸었다. 1925년 ‘뉴욕 아메리칸’지의 기자로 입사했으나 기사가...
전형필 간송미술관 건립
전형필이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막은 것은 하늘의 뜻 전형필(1906~1962)이 젊은 나이에 해마다 10만 석을 수확하는 조선 최대 지주의 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그나마 우리 민족에 내려준 선물이다. 전형필의 이런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전형필의 증조부 전계훈의 부(富) 덕분이었다. 증조부는 배우개장(지금의 동대문시장)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전국 곳곳에도 수만 석 농지를 보유하고 있던 당대 최고...
에드거 스노 ‘중국의 붉은 별’ 출간
격동기 중국의 생생한 현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그의 운명 에드거 스노(1905~1972)가 운명의 땅 중국과 처음 대면한 것은 23살이던 1928년이었다. 당시 그는 미주리대 언론학부를 졸업하고 대공황 직전의 호황 속에서 증권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으로 1년간 여정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노가 6주 정도 머문다는 생각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한 것은 1928년 7월 6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중국의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 인민들의...
신용욱 조선항공공업사 설립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 신용욱(1901~1962)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였다. 그는 전북 고창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비행 유학을 떠났다. 1922년 오쿠리 비행학교에서 1등 비행사 면허를 따고 동아항공전문학교를 졸업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비행사가 되었다. 귀국 후, 사재를 들여 여의도에 조선비행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미국에서 신형 비행기 1대를 들여와 1930년 5월 조선비행학교를 개교했다. 일본에서도...
버트런드 러셀 사망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과 편력은 2년이 채 모자라는 100년을 살았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넓고도 깊다. 학문세계에서는 수학자․철학자였고, 사회활동에서는 반핵운동가․교육혁신가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1950년)할 만큼 문필가로서의 입지도 확고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시대의 요청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러셀의 올곧은 삶의 궤적은 가문의 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상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러셀 경은 찰스 2세에 모반으로 가담했다가 교수대에서 삶을 마쳤고,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독일, 1 차대전 중 ‘무제한 잠수함작전’ 시작
↑ 독일 킬(Kiel) 항에 정박 중인 U 보트 1차대전 발발과 함께 시작된 영국의 해상봉쇄로 발트해와 북해에 발이 묶이게되자 독일은 1915년 2월 영국 영해 전체를 전쟁지역으로 선포하며 영국에 맞섰다. 독일의 ‘U보트’는 영국으로 가는 수많은 중립국 선박들을 격침시켰고, 1915년 7월에는 영국의 호화여객선 ‘루시타니아호’까지 침몰시켜 128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민간인 1198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격분한 윌슨 미 대통령이 강력히 경고하자...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②] 나폴리, 아말피, 카라라, 친퀘테레
by 김지지 ■나폴리, 전성기 때는 유럽 제2의 도시 카프리 섬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을 태운 페리호가 향한 곳은 나폴리였다. 나폴리는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중심도시이자 캄파니아 지방의 주도로,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다. 나폴리 왕국의 전성기였던 17세기에는 파리 다음 가는 유럽 제2의 도시였고 1860년대 이탈리아가 통일될 당시에는 로마보다 더 번창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주류 입장에서 나폴리는 1860년대 이탈리아가...
노기남 한국인 첫 주교 서품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생생한 목격자 노기남(1901~1984) 신부는 일제 하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로 임명되어 1967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목격자였다. 노기남은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의 11남매 중 막내로 평북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당 공부를 하던 그가 프랑스 신부가 운영하는 서울 원효로의 성심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16세 때인 1917년 9월이었다. 노기남은 12년간의...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 발발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이던 진주만은 2시간 만에 초토화 돼 1940년 7월에 출범한 제2차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겨냥한 곳은 동남아였다. 일본은 먼저 독일의 괴뢰 정부인 프랑스의 ‘비시 정부’를 압박해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부 인도차이나에 비행 기지를 건설했다. 중일전쟁의 상대국인 중국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버마 로드’를 폭격하기 위해서였다. 버마 로드를 통해 중국의 장개석 정부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던 미국은 그해 9월 26일 일본에 비행기 원료, 고철, 강철 판매를 전면...
창씨개명 시행
신사참배와 조선어 폐지에 이은 일제 ‘황민화 정책’의 완결편 1937년 7월의 중일전쟁을 분수령으로 일제는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인의 일본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매월 하루를 ‘애국의 날’로 정해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봉창을 강요했다. 1937년 10월부터는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합심하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황국신민 서사’를 제창하도록 강요하고 전국의 학교에는 천황의...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출간
찬사와 비판 동시에 받으며 큰 반향 불러 일으켜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서 독일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시절부터 농장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1919년 어렵게 스탠퍼드대에 진학해서도 목장이나 공사장, 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고단한 문학청년의 길을 걸었다. 1925년 ‘뉴욕 아메리칸’지의 기자로 입사했으나 기사가...
전형필 간송미술관 건립
전형필이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막은 것은 하늘의 뜻 전형필(1906~1962)이 젊은 나이에 해마다 10만 석을 수확하는 조선 최대 지주의 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그나마 우리 민족에 내려준 선물이다. 전형필의 이런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전형필의 증조부 전계훈의 부(富) 덕분이었다. 증조부는 배우개장(지금의 동대문시장)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전국 곳곳에도 수만 석 농지를 보유하고 있던 당대 최고...
에드거 스노 ‘중국의 붉은 별’ 출간
격동기 중국의 생생한 현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그의 운명 에드거 스노(1905~1972)가 운명의 땅 중국과 처음 대면한 것은 23살이던 1928년이었다. 당시 그는 미주리대 언론학부를 졸업하고 대공황 직전의 호황 속에서 증권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으로 1년간 여정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노가 6주 정도 머문다는 생각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한 것은 1928년 7월 6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중국의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 인민들의...
신용욱 조선항공공업사 설립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 신용욱(1901~1962)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였다. 그는 전북 고창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비행 유학을 떠났다. 1922년 오쿠리 비행학교에서 1등 비행사 면허를 따고 동아항공전문학교를 졸업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비행사가 되었다. 귀국 후, 사재를 들여 여의도에 조선비행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미국에서 신형 비행기 1대를 들여와 1930년 5월 조선비행학교를 개교했다. 일본에서도...
버트런드 러셀 사망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과 편력은 2년이 채 모자라는 100년을 살았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넓고도 깊다. 학문세계에서는 수학자․철학자였고, 사회활동에서는 반핵운동가․교육혁신가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1950년)할 만큼 문필가로서의 입지도 확고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시대의 요청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러셀의 올곧은 삶의 궤적은 가문의 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상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러셀 경은 찰스 2세에 모반으로 가담했다가 교수대에서 삶을 마쳤고,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독일, 1 차대전 중 ‘무제한 잠수함작전’ 시작
↑ 독일 킬(Kiel) 항에 정박 중인 U 보트 1차대전 발발과 함께 시작된 영국의 해상봉쇄로 발트해와 북해에 발이 묶이게되자 독일은 1915년 2월 영국 영해 전체를 전쟁지역으로 선포하며 영국에 맞섰다. 독일의 ‘U보트’는 영국으로 가는 수많은 중립국 선박들을 격침시켰고, 1915년 7월에는 영국의 호화여객선 ‘루시타니아호’까지 침몰시켜 128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민간인 1198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격분한 윌슨 미 대통령이 강력히 경고하자...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②] 나폴리, 아말피, 카라라, 친퀘테레
by 김지지 ■나폴리, 전성기 때는 유럽 제2의 도시 카프리 섬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을 태운 페리호가 향한 곳은 나폴리였다. 나폴리는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중심도시이자 캄파니아 지방의 주도로,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다. 나폴리 왕국의 전성기였던 17세기에는 파리 다음 가는 유럽 제2의 도시였고 1860년대 이탈리아가 통일될 당시에는 로마보다 더 번창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주류 입장에서 나폴리는 1860년대 이탈리아가...
노기남 한국인 첫 주교 서품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생생한 목격자 노기남(1901~1984) 신부는 일제 하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로 임명되어 1967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목격자였다. 노기남은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의 11남매 중 막내로 평북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당 공부를 하던 그가 프랑스 신부가 운영하는 서울 원효로의 성심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16세 때인 1917년 9월이었다. 노기남은 12년간의...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 발발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이던 진주만은 2시간 만에 초토화 돼 1940년 7월에 출범한 제2차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겨냥한 곳은 동남아였다. 일본은 먼저 독일의 괴뢰 정부인 프랑스의 ‘비시 정부’를 압박해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부 인도차이나에 비행 기지를 건설했다. 중일전쟁의 상대국인 중국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버마 로드’를 폭격하기 위해서였다. 버마 로드를 통해 중국의 장개석 정부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던 미국은 그해 9월 26일 일본에 비행기 원료, 고철, 강철 판매를 전면...
창씨개명 시행
신사참배와 조선어 폐지에 이은 일제 ‘황민화 정책’의 완결편 1937년 7월의 중일전쟁을 분수령으로 일제는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인의 일본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매월 하루를 ‘애국의 날’로 정해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봉창을 강요했다. 1937년 10월부터는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합심하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황국신민 서사’를 제창하도록 강요하고 전국의 학교에는 천황의...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출간
찬사와 비판 동시에 받으며 큰 반향 불러 일으켜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서 독일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시절부터 농장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1919년 어렵게 스탠퍼드대에 진학해서도 목장이나 공사장, 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고단한 문학청년의 길을 걸었다. 1925년 ‘뉴욕 아메리칸’지의 기자로 입사했으나 기사가...
전형필 간송미술관 건립
전형필이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막은 것은 하늘의 뜻 전형필(1906~1962)이 젊은 나이에 해마다 10만 석을 수확하는 조선 최대 지주의 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그나마 우리 민족에 내려준 선물이다. 전형필의 이런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전형필의 증조부 전계훈의 부(富) 덕분이었다. 증조부는 배우개장(지금의 동대문시장)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전국 곳곳에도 수만 석 농지를 보유하고 있던 당대 최고...
에드거 스노 ‘중국의 붉은 별’ 출간
격동기 중국의 생생한 현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그의 운명 에드거 스노(1905~1972)가 운명의 땅 중국과 처음 대면한 것은 23살이던 1928년이었다. 당시 그는 미주리대 언론학부를 졸업하고 대공황 직전의 호황 속에서 증권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으로 1년간 여정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노가 6주 정도 머문다는 생각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한 것은 1928년 7월 6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중국의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 인민들의...
신용욱 조선항공공업사 설립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 신용욱(1901~1962)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였다. 그는 전북 고창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비행 유학을 떠났다. 1922년 오쿠리 비행학교에서 1등 비행사 면허를 따고 동아항공전문학교를 졸업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비행사가 되었다. 귀국 후, 사재를 들여 여의도에 조선비행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미국에서 신형 비행기 1대를 들여와 1930년 5월 조선비행학교를 개교했다. 일본에서도...
버트런드 러셀 사망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과 편력은 2년이 채 모자라는 100년을 살았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넓고도 깊다. 학문세계에서는 수학자․철학자였고, 사회활동에서는 반핵운동가․교육혁신가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1950년)할 만큼 문필가로서의 입지도 확고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시대의 요청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러셀의 올곧은 삶의 궤적은 가문의 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상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러셀 경은 찰스 2세에 모반으로 가담했다가 교수대에서 삶을 마쳤고,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독일, 1 차대전 중 ‘무제한 잠수함작전’ 시작
↑ 독일 킬(Kiel) 항에 정박 중인 U 보트 1차대전 발발과 함께 시작된 영국의 해상봉쇄로 발트해와 북해에 발이 묶이게되자 독일은 1915년 2월 영국 영해 전체를 전쟁지역으로 선포하며 영국에 맞섰다. 독일의 ‘U보트’는 영국으로 가는 수많은 중립국 선박들을 격침시켰고, 1915년 7월에는 영국의 호화여객선 ‘루시타니아호’까지 침몰시켜 128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민간인 1198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격분한 윌슨 미 대통령이 강력히 경고하자...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②] 나폴리, 아말피, 카라라, 친퀘테레
by 김지지 ■나폴리, 전성기 때는 유럽 제2의 도시 카프리 섬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을 태운 페리호가 향한 곳은 나폴리였다. 나폴리는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중심도시이자 캄파니아 지방의 주도로,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다. 나폴리 왕국의 전성기였던 17세기에는 파리 다음 가는 유럽 제2의 도시였고 1860년대 이탈리아가 통일될 당시에는 로마보다 더 번창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주류 입장에서 나폴리는 1860년대 이탈리아가...
노기남 한국인 첫 주교 서품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생생한 목격자 노기남(1901~1984) 신부는 일제 하에서 한국인 최초의 주교로 임명되어 1967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격동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잡은 초석이자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목격자였다. 노기남은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의 11남매 중 막내로 평북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당 공부를 하던 그가 프랑스 신부가 운영하는 서울 원효로의 성심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16세 때인 1917년 9월이었다. 노기남은 12년간의...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 발발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이던 진주만은 2시간 만에 초토화 돼 1940년 7월에 출범한 제2차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겨냥한 곳은 동남아였다. 일본은 먼저 독일의 괴뢰 정부인 프랑스의 ‘비시 정부’를 압박해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부 인도차이나에 비행 기지를 건설했다. 중일전쟁의 상대국인 중국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버마 로드’를 폭격하기 위해서였다. 버마 로드를 통해 중국의 장개석 정부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던 미국은 그해 9월 26일 일본에 비행기 원료, 고철, 강철 판매를 전면...
창씨개명 시행
신사참배와 조선어 폐지에 이은 일제 ‘황민화 정책’의 완결편 1937년 7월의 중일전쟁을 분수령으로 일제는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인의 일본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매월 하루를 ‘애국의 날’로 정해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봉창을 강요했다. 1937년 10월부터는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합심하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황국신민 서사’를 제창하도록 강요하고 전국의 학교에는 천황의...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출간
찬사와 비판 동시에 받으며 큰 반향 불러 일으켜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서 독일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시절부터 농장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1919년 어렵게 스탠퍼드대에 진학해서도 목장이나 공사장, 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고단한 문학청년의 길을 걸었다. 1925년 ‘뉴욕 아메리칸’지의 기자로 입사했으나 기사가...
전형필 간송미술관 건립
전형필이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막은 것은 하늘의 뜻 전형필(1906~1962)이 젊은 나이에 해마다 10만 석을 수확하는 조선 최대 지주의 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그나마 우리 민족에 내려준 선물이다. 전형필의 이런 활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전형필의 증조부 전계훈의 부(富) 덕분이었다. 증조부는 배우개장(지금의 동대문시장)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고 전국 곳곳에도 수만 석 농지를 보유하고 있던 당대 최고...
에드거 스노 ‘중국의 붉은 별’ 출간
격동기 중국의 생생한 현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그의 운명 에드거 스노(1905~1972)가 운명의 땅 중국과 처음 대면한 것은 23살이던 1928년이었다. 당시 그는 미주리대 언론학부를 졸업하고 대공황 직전의 호황 속에서 증권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으로 1년간 여정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노가 6주 정도 머문다는 생각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한 것은 1928년 7월 6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중국의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 인민들의...
신용욱 조선항공공업사 설립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 신용욱(1901~1962)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항공수송 산업의 개척자였다. 그는 전북 고창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비행 유학을 떠났다. 1922년 오쿠리 비행학교에서 1등 비행사 면허를 따고 동아항공전문학교를 졸업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비행사가 되었다. 귀국 후, 사재를 들여 여의도에 조선비행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미국에서 신형 비행기 1대를 들여와 1930년 5월 조선비행학교를 개교했다. 일본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