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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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주법 14년 만에 해제

1920년대 미국을 ‘광란의 20년대’로 만든 ‘금주법’이 폐지된 것은 뉴딜정책의 산물이다. 대공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이 금주법을 폐지하는 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33년 12월 5일, 미국의 유타주가 ‘금주법’을 정한 수정헌법 제18조를 무효화시키는 수정헌법 제21조를 36번째로 비준함으로써 역사상 유례가 없던 ‘금주시대’가 막을 내렸다. 36번째는 미 전체 주의 4분의3을 넘기는 분수령이다.

0.5도 이상의 알콜이 함유된 술은 제조도, 운반도, 판매도, 수입·수출도 안된다는 ‘금주법’이 시행된 것은 1920년 1월 16일, 수정헌법 제18조가 비준되면서였다. 그러나 구입과 음주를 금지하지 않아 뉴욕의 경우 금주법 시행 전에는 1만5000개이던 술집이 금주시대에는 3만2000개로 증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수정헌법에 ‘구입’ 금지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주법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금주운동세력과 1893년에 창설된 금주동맹의 입김, 여기에 독일계 양조업자에 대한 반감이 작용해 시작됐지만 그 대상이 6000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인류와 함께 살아온 ‘술’이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됐다.

술을 들고 밖으로만 나가도 초범은 벌금 1000달러에 6개월 금고에 처해지는 바람에 평범한 시민들이 범죄자로 내몰렸고 이를 틈타 암흑가 조직이 급성장했다.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마피아 조직은 밀주와 밀수를 통해 밤을 지배했고, 이 과정에서 조직 간에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속출했다. 금주법으로 조성된 막대한 ‘검은 돈’은 부패한 정치인과 경찰 주머니를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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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개도로 개통

1958년 6월 시작된 청계천 복개공사가 1961년 12월 5일 4년 만에 마무리됐다. 그 옛날 풍류와 세시풍속의 현장이자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복개 직전까지는 불결과 악취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청계천이 철근 콘크리트 밑으로 사라진 것이다. 광교와 오간수교(동대문 부근)까지의 2359m 구간이 먼저 복개됐다. 복개와 함께 광교, 수표교, 관수교, 방산교, 오간수교 5개 돌다리도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췄다. 그 후 마장동 철교까지 복개구간이 늘었고, 그 위를 달리는 3·1고가도로는 서울 현대화의 상징물로 군림했다. 옛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위로는 24개 다리가 가로질렀다.

원래 북악·인왕·남산에서 흘러든 맑은 물이 합쳐지던 청계천은 동쪽으로 내쳐흘러 왕십리 밖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어우러져 한강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서울이 급속히 팽창하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청계천은 말 그대로 ‘오계천(汚溪川)’으로 전락했다. 오·폐수가 흘러 냄새가 진동했고, 무허가 판자촌이 빽빽이 들어차 도시미관도 말이 아니었다. 오염과 빈곤의 상징으로 눈총을 받던 끝에 콘크리트 뚜껑 속으로 감춰진지 40년, 청계천을 복개하면 서울은 곧 깨끗해질 줄 알았지만 그 자리엔 소음과 무질서, 쓰레기가 대신했다. 청계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는 2003년 7월 시작된 철거공사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옛 청계천을 모델로 한 새로운 하천이 2005년 9월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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