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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팔경] 퇴계와 단원이 시와 그림으로 찬사한 최고 명승지… 국가지정 ‘명승(名勝)’으로 5곳이나 뽑혀

↑ 도담삼봉

 

by 김지지

 

충북 단양은 83.7%가 산악지대다. 산세가 발달했으니 골도 깊다. 크고 작은 계곡이 실핏줄처럼 뻗어내려 남한강 상류와 합류한다. 남한강은 다시 북에서 남으로 단양을 관류해 충주호를 형성하는데 곳곳마다 산색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예로부터 명승지가 많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은 인문지리서 ‘택리지’(1751년)에서 단양의 풍광을 이렇게 기록했다. “모두 첩첩산중에 있어서 10리 정도 펼쳐진 들도 없으나 강과 시내, 바위와 골짜기로 이루어진 경치는 훌륭하다.” 단양에서도 최고 명승지를 모아놓은 곳이 단양팔경이다.

 

■단양팔경(丹陽八景)

단양팔경은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8곳의 경승지를 을 일컫는다. 퇴계 이황(1501~1570)이 단양군수 시절 이 경승지들을 둘러보고 “중국 후난성 동정호 남쪽의 소상팔경(瀟湘八景)보다 낫다”고 극찬한 뒤 단양팔경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퇴계는 단양 내 명산인 금수산과 옥순봉 이름도 직접 지었다. 단양팔경은 위치상으로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도담삼봉과 석문, 옥순봉과 구담봉, 사인암과 상·중·하선암이다. 모두가 계곡과 강의 한 가운데 있거나 옆에 끼고 있다. 도담삼봉과 석문은 남한강, 사인암은 남조천, 상중하선암은 선암계곡이다. 하천과 계곡의 물들은 남한강으로 흘러내려가 충주호(청풍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양방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단양읍

 

단양팔경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주관으로 2013년부터 2년마다 발표하는 ‘한국관광 100선’에서 해마다 빠지지 않는다. 2008년에는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名勝)’으로 지정되었다. 다만 옥순봉, 구담봉, 사인암, 도담삼봉, 석문 5곳만 포함되고 상·중·하선암 3곳은 제외되었다. 이유는 아스팔트 도로가 옆으로 지나가 풍광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굳이 도로가 아니더라도 이들 3곳은 명승 5곳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단양5경이라고 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단양8경이라고 했을까. 이유가 있다.

우리는 조선 때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아 명승지가 있으면 ‘8(八)’자를 붙인 ‘팔경’이나 ‘9(九)’자를 붙인 ‘구곡’을 붙였다. ‘팔경’의 바탕은 ‘천지 만물이 여덟 가지 괘(卦)로 이뤄졌다’는 주역이다. 주역에서 팔(八)은 우주의 현상과 자연의 이치를 나타내는 기본 원리를 담은 숫자로 본다. 팔경의 원조는 중국 동정호 인근의 빼어난 경관인 ‘소상팔경(瀟湘八景)’이다. 조선에서 이를 본 따 만든 것이 관동팔경이나 단양팔경이다.

팔경이 주역에서 왔다면 구곡은 중국 남송의 유학자 주자(1130~1200)에게서 왔다. 주자는 54살 되던 해, 중국 복건성 무이산에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정한 후 구곡 중 다섯 번째 구비에 해당하는 은병암 밑에 무이정사를 세우고 제자를 가르쳤다. 그러자 주자를 무대포로 추앙한 조선의 선비들도 무이구곡을 흉내 내어 계곡 절경 중 멋지고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있는 곳이라면 구곡을 설정해 그곳을 중심으로 후학을 가르치고 음풍농월했다. 대표적인 곳이 충북 괴산의 화양구곡과 경북 영주의 죽계구곡 등이다.

단양5경 중 구담봉과 옥순봉은 산행지여서 자연 그대로 모습이다. 그러나 사인암과 도담삼봉은 유명 관광지여서 호젓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다소 혼잡스럽다. 식당과 카페가 많아 자연을 그대로 느끼려는 사람들에게는 살짝 아쉽다. 그래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승지이니 만큼 단양을 방문하게 되면 한번쯤 찾아가게 된다. 이제 단양8경으로 떠나보자.

 

■도담삼봉과 석문

 

▲도담삼봉(島潭三峯)

도담삼봉은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절경지다. 남한강이 휘돌아 흐르는 한 가운데에 3개 봉우리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우뚝 솟아 있다. ‘섬이 있는 호수 같다’고 해서 도담(島潭)이라 명명하니 삼봉(三峯)과 합쳐 도담삼봉이다. 이황을 비롯 정도전, 정약용, 김병연(김삿갓) 등이 도담삼봉에 반해 남긴 시가 131수나 되고 김정희, 김홍도, 이방운 등이 그림을 남겼다. 도담삼봉은 충주댐 건설로 과거 모습 중 3분의 1이 물에 잠겨 옛 시인 묵객들이 읊고 사랑했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물 위에 떠있는 삼봉의 모습은 변함없이 아름다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도담삼봉은 조선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1342~1398)이 어린시절 즐겨 와서 놀던 곳으로 훗날 그는 도담삼봉의 ‘삼봉(三峯)’을 자신의 호로 삼을 정도로 이곳을 좋아했다.

도담삼봉(출처 단양군청)

 

‘택리지’에서는 도담삼봉을 이렇게 기록했다. “세상에서 이담(二潭)과 삼암(三巖)이라 일컫는 명승이 있다. 이담 중에서 도담(島潭)은 영춘 경내에 있고, 강물이 휘감아 돌다 고여서 깊고도 넓다. 물 가운데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 봉우리가 각각 따로 떨어져 마치 곧은 현(絃)처럼 한 줄로 서 있고, 기이하고 교묘하게 조각되고 새겨져 마치 인가에 쌓아 만든 석가산(石假山)과 같다.” 실제로 바라보면 ‘정원 따위에 돌을 모아 쌓아서 조그마하게 만든 산’을 뜻하는 석가산과 흡사하다. 영국의 세계적인 여행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도 1897년 한국을 여행하고 도담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한강의 아름다움은 도담에서 절정을 이룬다. 낮게 깔린 강변과 우뚝 솟은 석회절벽, 그 사이의 푸른 언덕배기에 서 있는 처마가 낮고 지붕이 갈색인 집들이 그림처럼 도열해 있는데, 이곳은 내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삼봉 중 크고 높은 봉우리는 장군처럼 위엄있다고 해서 장군봉이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입혔다. 주봉이 남편봉이고 그 곁에 아름다움과 희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봉이 첩봉이며 이를 외면하고 점잖고 얌전히 앉아 있는 듯한 북봉이 처봉이라는 스토리다.

 

▲석문(石門)

도담삼봉만 보고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근의 석문을 빼놓아서는 안된다. 도담삼봉 전망지에서 뒤쪽 200m 거리에 대형 공연장이 있다. 그 옆에 산중턱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데크길이 있고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팔각정이 나온다. 그곳에서 잠시 도담삼봉을 감상한 뒤 평지길을 10분 정도 걸어가면 석문이다. 기대 이상이어서 만족스럽다. 석문은 오래 전 석회암 동굴이 무너진 후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아 현재의 구름다리 모양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문 자체 형태도 특이하고 아름답지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돌기둥의 뛰어난 조형미와 다리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의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석문

 

■옥순봉과 구담봉

구담봉과 옥순봉은 퇴계 이황과 단원 김홍도 등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글과 그림으로 찬사한 절경지다. 제대로 감상하려면 직접 봉우리로 올라가 산들과 호흡하고 내려와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강에서 봉우리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구담봉은 등산이 더 좋고 옥순봉은 유람선에서 바라봐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두 봉우리를 멀리서나마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은 구담봉 건너편 제비봉 정상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구담봉과 옥순봉의 모습이 충주호와 어울려 한폭의 동양화다.

이중환은 택리지에 “양편 언덕의 석벽이 하늘에 솟아 해를 가리고, 강물이 그 사이로 쏟아져 내려 흘러간다. 바위 협곡이 문이나 창호처럼 겹겹이 서로 막아섰고, 좌우에는 강선대, 채운봉, 옥순봉이 있다. 채운봉과 옥순봉은 만 길이나 되는 봉우리가 순전히 바위 한 덩어리로 되어 있다. 옥순봉은 더 높이 곧게 치솟아 마치 거인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양이다.”라고 기록했다.

먼저 산행부터 소개한다. 옥순봉(286m)과 구담봉(330m)은 봉우리만 다를 뿐 몸체가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한몸이다. 같은 주차장에서 올라가 삼거리(374m)에서 Y자 형으로 갈라지면 오른쪽이 구담봉, 왼쪽이 옥순봉이다. 등산로가 비교적 순하고 거리가 길지 않아 두 봉우리를 다 올라갔다가 원점회귀하는데 3~4시간이면 충분하다. 거리도 5.8㎞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것은 두 봉우리의 들머리에 해당하는 삼거리가 두 봉우리 정상보다 높다는 것이다. 봉우리를 향해 걷다보면 기암능선마다 충주호(청풍호) 주변의 그림같은 풍광을 조망할 수 있고 산세 또한 아기자기하다.

유람선이나 여객선이 드나드는 나루터(선착장)는 충주호에 여러곳 있으나 그중 최고 나루터는 수려한 산세와 기암기석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장회나루터(장회유람선선착장)다. 옥순봉·구담봉 주차장과 지척이어서 접근성도 뛰어나다. 유람선에서 바라보이는 명소는 옥순봉과 구담봉은 물론 가은산과 말목산 그리고 제비봉, 투구봉, 둥지봉이다. 그 사이사이에 불쑥 튀어나온 각기 다른 모습의 대형 기암괴석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옥순봉의 절벽 모습에 압도당한다. 유람선 위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제비봉에서 바라본 구담봉(왼쪽)

 

▲옥순봉(玉荀峰)

옥순봉은 희고 푸르스름한 바위 군상들이 마치 죽순이 돋아나듯 우뚝우뚝 솟아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유람선에서 감상하면 병풍을 펼치듯 웅장한 산세에 승객의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옥순봉이 속한 행정지명은 예나 지금이나 단양이 아니라 제천이다. 그런데도 단양팔경에 이름을 올린 데에는 사연이 있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인 퇴계가 청풍(현 제천시 청풍면)에서 배를 타고 단양으로 거슬러 오르며 시를 지었다. 그러다가 강가에서 옥순봉을 보고는 바위 봉우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천길 단애를 이룬 석벽이 비 온 뒤 솟아오르는 옥빛 죽순같다 하여 옥순봉(玉筍峰)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 자태가 탐이나 청풍부사에게 산을 단양으로 넘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퇴계는 단양이 통하는 첫 문이라는 의미의 ‘단구동문(丹邱洞門)’ 네 글자를 바위에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옥순봉이 단양팔경에 포함된 이유다. 제천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옥순봉을 ‘제천 10경’ 중 제8경’으로도 꼽았다. ‘단구동문(丹丘洞門)’ 글씨는 충주호 준공 후 수면 아래로 잠겼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옥순봉

 

옥순봉은 18세기 후반 김홍도 붓에서도 살아났다. 김홍도는 1792년부터 수년간 충북 괴산군 연풍현감으로 있을 때 단양과 제천을 돌아다니며 산수풍경을 그렸다. 그러다가 현감 임기가 끝난 1796년 병진년 봄에 ‘옥순봉도’(31.6㎝ x 26.7㎝에 수묵담채)를 그렸다. 이 옥순봉도는 ‘병진년 화첩’ 20폭 중 첫 번째 그림으로 현재는 보물 제782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원 김홍도의 ‘옥순봉도’

 

▲구담봉(龜潭峰)

구담봉은 봉우리 전체 형상이 거북이를 닮아서 불린 ‘구봉(龜峰)’과, 충주호로 수몰되기 전 물속 바위에 거북 등짝 무늬가 어른거렸다는 ‘구담(龜潭)’을 합친 명칭이다. 강에서 바라볼 때 감흥은 구담봉이 옥순봉보다 떨어진다. 대신 직접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구담봉은 초반의 숲길과 바윗길을 지난 후 마지막에는 가파른 철계단 내리막길을 따라 U자형으로 패인 안부로 내려섰다가 벼랑에 세워 놓은 사다리같은 200여개의 철계단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계단을 세어보니 안부로 내려갈 때는 249계단이고 안부에서 구담봉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210개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오르는 시간이 5~10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시퍼런 충주호(청풍호)와 산릉의 절경이 충분히 보상해준다. 정상에 서면 왼쪽으로 가은산 능선이 보이고 그 뒤로 금수산~망덕봉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장회나루선착장이 충주호반에 바싹 붙어있고 그 뒤로 제비봉이 충주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참고로 충주호는 3개의 시·군에 걸쳐 있다. 충주호라고 해서 충주시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할 것 같지만 호수 전체의 30%만 충주에 속해 있을 뿐 제천이 60%로 가장 넓다. 단양은 10%다. 해서 명칭도 각기 다르게 부르고 있다. 충주는 충주호, 제천은 군내(郡內) 청풍면에서 따 청풍호, 단양은 그냥 남한강이라 부른다.

산행길에서 바라본 구담봉(우측)

 

■사인암(舍人巖)

사인암은 덕절산(780m) 줄기 아래 남조천 계곡에 직벽으로 우뚝 솟은 기암절벽이다. 50미터 높이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 기암 절벽이 마치 긴 암석을 끼워 맞춘 듯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고려 후기 문신 우탁(1263~1342)이 정4품인 사인재관(舍人在官) 벼슬에 있을 때 이곳에 자주 머물렀다는 사실을 훗날 알게된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 임재광이 사인암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바위마다 수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자연 속 서예전시관이라 해도 될 정도다.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 그림과 같다고 찬양했을 정도로 특이하고 아름답다. 단원 김홍도가 사인암의 절경에 반해 1745년 그린 사인암도(31.4 x 26.6㎝, 종이에 담채)가 전해져 내려온다.

사인암

 

사인암이 자리잡은 남조천에는 조선 영조 때 참판을 지낸 오대익이 설정했다는 ‘운선구곡(雲仙九谷)’도 있다. 운선구곡의 아홉 굽이는 사인암을 끼고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남조천 옆에 조성한 데크길에 제1곡부터 제9곡까지 안내판을 설치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사인암도 운선구곡의 ‘제7곡’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홍도 ‘사인암도’

 

■상·중·하선암

상·중·하선암은 단양의 명산 도락산을 끼고 흐르는 선암계곡을 따라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계곡을 가득 채운 너럭바위들이 볼 만하다. 계곡을 따라 차를 몰고가면 표지판이 보이고 계곡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상·중·하선암 세 곳은 단양팔경 중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 바로 옆으로 도로가 지나가 경승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계곡의 바위 생김새와 규모가 감탄사를 터뜨리기에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5곳은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되었지만 이곳이 제외된 이유다. 따라서 지나가다 들를 수는 있어도 일부러 찾아갈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산행 종주든 달리기 완주든 단양팔경을 모두 다녀왔다는 성취감을 느끼려면 찾아가야 한다. 사인암에서 10분 거리에 불과하고 도락산 주차장에서도 가까우니 거리와 시간상 큰 부담이 없다.

상선암은 크고 웅장한 바위와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이다. 길고 널따랗고 편평하고 흰색의 거대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50여미터 흐르다가 명경담에 이르러 작은 폭포를 이룬다. 도락산 주차장에 해당하는 상선암주차장 바로 아래에 있다. 조선 정조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상선암

 

중선암은 상선암에서 도로를 따라 약 2㎞ 떨어져 있다. 순백색의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고 맑은 물이 그 위를 흘러 여름철의 가족 단위 휴양지로 최적의 절경지이다. 조선 효종 때 곡운 김수증이 명명한 것으로 전해온다. 여러 바위 중 가장 눈에 띄는 옥렴대(玉廉臺) 바위에는 ‘四江三水 郡山仙石(사강삼수 군산선석)’ 글씨가 각자(刻字)되어 있다. ‘사군(단양 영춘 제천 청풍)의 강산이 아름답고 삼선(상·중·하선암)의 수석이 빼어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글씨는 크고 화려하여 중선암의 상징이다. 그 옆에 작은 글씨로 15자가 쓰여있는데 ‘숭정 90년인 정유년 가을에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가 썼다’는 뜻이다. 숭정은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이므로 서기로 환산하면 1717년이다. 당시 중국에 대한 사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지금 한자는 글씨가 오랜 세월로 마모되자 8대손인 윤용한이 1956년 그대로 덧새기고 이를 기록한 것이다.

중선암의 옥련대 바위

 

하선암도 중선암에서 멀지 않다. 3단으로 이뤄진 넓고 편평한 흰바위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형상이 미륵같다 하여 부처바위(佛巖)라고도 한다.

하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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