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월출산 국립공원 ② 산성대~천황봉~경포대] ‘산성대 능선’은 12폭 병풍을 펼쳐놓은 듯 하고 천황봉~구정봉 거쳐 내려간 ‘경포대 계곡’은 깊고 수려하더군요

↑ 590m봉에서 바라본 산성대 능선. 가운데 높이 솟은 봉이 천황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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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8.2㎞에 5~6시간 정도

☞ 산성대 들머리 →(3.9㎞)← 천황봉 →(1.6㎞)← 구정봉 →(0.5㎞)← 바람재 →(2.2㎞)← 경포대

 

이번 산행은 전남 영암의 월출산이다. 2021년 12월 5일 산행에 동행한 이들은 고교 친구인 남수 선근 성일 정형 종훈 철호 태훈 7명이다. 서울 마포에서 4시 30분 출발해 5시 10분 경기 죽전에서 남수 선근 철호와 합류하고 6시 10분 경기 일죽에서 성일을 픽업하는 것으로 대오를 완성했다. 태훈은 근무지인 충북 오창에서 홀로 출발했다.

 

■월출산은 이런 곳

월출산은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국립공원이다. 면적은 국립공원 중 가장 적으나 암릉미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설악산, 북한산, 속리산, 가야산 등과 더불어 ‘암릉 좋은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힌다. 최고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구정봉, 사자봉, 장군봉, 향로봉, 주지봉, 국사봉 등 걸출한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영험한 바위’를 뜻하는 영암(靈巖) 지명도 바위가 많은 월출산에서 유래한다.

월출산은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평야와 나주평야의 너른 들판에 거칠고 험준한 암봉들이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암산이다. 해발고도가 810m여서 1000m가 훌쩍 넘는 내륙의 산들과 비교하면 ‘그만그만한 산’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바다와 가까운 영암의 들판 위에 우뚝 솟아 있어 산행 노고는 내륙의 해발 1200m를 넘나드는 다른 산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월출산은 전남 강진이 30%, 영암이 70%를 차지한다. 특히 영암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은 봉우리마다 창과 칼을 들고 늘어선 기암괴석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산행 들머리는 천황사, 도갑사, 경포대, 산성대 입구 네 곳이다. 이 가운데 경포대 기점은 강진군 쪽에 있고, 나머지는 영암군 쪽에 있다. 어느 등산로를 택하든 정상에 올랐다가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데 4~5시간쯤 걸린다. 종주 구간인 천황사~천황봉~도갑사 구간(9.8㎞)은 6~7시간 남짓 걸린다. 네 곳 중 가장 인기있는 코스는 천황봉탐방지원센터를 들머리로 삼는 것이다. 문제는 길이 가파른 데다 바위투성이라 등산 초보자에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세 곳은 상대적으로 순하고 편하다.

월출산 지도

 

■등산로 : 산성대~천황봉 

산성대 구간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해 초급자들도 즐길 수 있는 암릉 산행이다. 이 코스의 매력은 주변 거봉들에 가려져 있던 천황봉의 뒤태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산성대~광암터삼거리 능선에서 펼쳐지는 온갖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산성대 코스가 개방된 것은 수년에 불과하다. 1988년 월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때 영암실내체육관 부근에서 산성대까지 1.8㎞ 지점만 개방하고 천황봉으로 연결되는 산성대~광암터삼거리 구간 1.5㎞는 27년만인 2015년 10월에야 개방했기 때문이다. 산성대(山城臺) 명칭은 과거 영암산성의 봉수대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들머리는 영암실내체육관 건너편 ‘기(氣)체육공원’ 주차장이다. 내비에서 ‘월출산 산성대’를 검색하면 안내한다. 그런데 들머리 공원에는 월출산둘레길 ‘氣찬묏길’을 안내하는 표지만 보일 뿐 월출산 입구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다. 공원측에서 “있는데 당신이 못 본 거”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게 더 문제다. 여럿이 한동안 입구를 찾았는데 찾지 못했으므로. 각설하고 ‘氣찬묏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면 그곳이 들머리다. 氣찬묏길은 영암읍이 조성한 총 18㎞의 월출산 둘레길이자 기(氣) 체험 산책로다. 산성대 탐방지원센터에 다가가기 전 이정표가 있다. 산성대 1.8㎞, 광암터삼거리 3.3㎞, 천황봉 3.9㎞를 가리킨다.

산성대로 올라가는 들머리. ‘氣찬묏길’은 월출산 둘레길이다.

 

가늘지만 키가 큰 초입의 대나무 숲길을 지나 20분 정도 오르니 비로소 조망이 터진다. 다시 10분가량 오르면 드넓은 영암 들판과 그 안에 자리잡은 영암읍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데크 전망대다. 산 정상을 바라보면 왼쪽에 이름을 알지 못하는 무명봉(402m)이 우리와 함께 산행할 태세다. 이후 무명봉은 우리의 진행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데크 전망대에서 30분 정도 오르니 월출제일관 바위다. 과거 산성대 봉화시설을 통제하는 성문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멋진 조망터로 기능한다. 누군가 ‘月出第一關’이라고 뚜렷하게 음각해 놓은 바위에 오르니 영암의 거대 벌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뛰어난 조망터임을 비로소 알 수 있다.

산성대 오르기 전 조릿대 숲을 지나며 찰칵

 

▲산성대

천천히 고도를 높이며 20분을 더 오르니 넓은 암반 지대인 산성대(471m)다. 들머리에서 1.8㎞이고, 천황봉까지 2.1㎞이니 대충 중간쯤이다. 그런데 산성대는 안내도가 없어 대부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산성대에 세워놓은 거리 표시판 기둥에 ‘산성대’ 표시만 해도 될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건 국립공원 답지 않다. 산성대는 월출산의 봉수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켜 왜적이 침략하거나 지방에 급한 변란이 생기면 봉화를 띄워 나주 금성산에 있는 봉수대로 알리는 역할을 했다.

산성대에 서면 조망이 사방으로 터지고 저 멀리 천황봉도 비로소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아래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넓게 영암 일대의 너른 들이 펼쳐진다. 영산강 상류의 가는 물줄기도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오른쪽(서쪽) 멀리로는, 기암괴봉이 부챗살처럼 쭉쭉 뻗은 구정봉과 노적봉 능선이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옆 모습만 보여주던 무명봉이 마침내 등뼈를 드러낸다.

산성대에서 바라본 천황봉(왼쪽). 저 멀리 능선 가운데가 구정봉이고 그 뒤 능선 오른쪽이 노적봉이다.

 

문제는 오전의 산성대 코스가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올라가는 구간이어서 태양이 머리 위에 걸려있는 천황봉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역광을 피하려 해도 렌즈 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태양 때문에 도무지 멋진 조망을 담을 수 없다. 따라서 천황봉 모습을 제대로 담으려면 동쪽의 천황사 코스를 들머리로 잡거나 오후에 산성대 코스로 올라가야 한다. 사방으로 펼쳐 보이는 암봉과 암릉을 감상하느라 산성대부터 발걸음이 늦어진다. 산성대에서 40분 정도 진행하니 고인돌과 정말 흡사한 고인돌바위다. 다시 10분 정도 오르니 산성대 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최고 조망터인 590m봉이다.

산성대에서 천황봉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

 

▲산성대 능선

산성대 능선이야말로 산성대 탐방코스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다. 590봉에서 바라본 산성대 능선은 암릉과 암봉의 연속이고 양옆은 벼랑이다. 합천 가야산의 만물상과 흡사하다. 그 모습을 보고 “수반 위에 올려 놓은 기기묘묘한 형상의 수석” “12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비경”이라고 상찬하는 산꾼도 있다. 바위를 타고 넘는 아찔한 구간에는 바위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게 철계단과 난간을 설치해놓았다. 암릉 타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지만 경사가 심하지 않아 크게 힘들지는 않다. 이 맛에 산성대 능선을 찾는 것이리라.

뒤돌아본 산성대 능선과 590m봉(가장 오른쪽)

 

590m봉에서 천황봉을 올려다보면 설악산 울산바위 처럼 생긴 장군봉 능선이 왼쪽에 보이고 그 뒤로 사자봉이 우뚝하다. 아쉬운 것은 녹음과 단풍 없는 옅은 갈색의 12월 초여서 자연에 생기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도 밋밋하고 흐릿하다.

590m봉에서 안부로 내려가 산성대 능선의 몇 개 암봉을 오르내리면 광암터 삼거리에 닿는다. 산성대에서 1시간 50분 걸렸다. 산성대 코스는 너른 바위가 펼쳐진 광암터에서 천황사 코스와 만나 정상까지 이어진다. 광암터 삼거리에서 점심을 하는데 “천황봉을 지나 구정봉까지 오른 후 경포대로 내려가면 혹시 해가 질지 모르니 구정봉은 포기하자”고 친구들이 의견을 모은다. 나의 이번 월출산행은 그동안 궁금하게 생각해온 산성대 능선과 구정봉이었는데 구정봉을 오르지 않기로 했다니 나 혼자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과 헤어져 홀로 산행을 시작했다.

산성대 능선 지나가면서 바라본 장군봉 능선(우측)과 그 뒤 능선의 사자봉

 

광암터 삼거리에서 천황봉까지는 0.6㎞ 오르막이다. 0.3㎞ 지점에서 천황사~구름다리를 거쳐 올라오는 천황사 코스와 만난다. 경포대 코스 중 한 곳도 이곳에서 합류한다. 그곳에서 다시 0.3㎞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면 천황봉 100미터 아래의 통천문 삼거리다. 천황봉에 오르려면 통천문을 지나야 하므로 천황봉의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천황봉

천황봉에 도착하니 들머리에서 3시간 30분 걸렸다. 산성대 능선이 산성대 코스의 백미라면 천황봉 정상은 월출산 전체에서 가장 빼어난 조망터다. 사방으로 암봉의 향연이 펼쳐지고 능선과 능선 사이에는 계곡이 깊게 패어있다. 천황봉 꼭대기에 서면 사방이 막힘없는 사통팔달이다. 파노라마 영화를 보는 듯하다.

천황봉에서 내려다본 590m봉(중앙). 그 왼쪽이 우리가 올라온 능선이고 오른쪽 올라오는 길이 산성대 능선이다.

 

멀리는 영암·강진 주변의 산줄기들과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가까이는 월출산의 가파른 산자락과 바위 봉우리들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북쪽으론 산성대 능선이 왼쪽의 590m봉까지 뱀꼬리처럼 길게 이어지고 그 끝 평지에는 영암의 너른 평야가 펼쳐있다. 북동쪽이 천황사 코스의 사자봉 암릉군인데 사자봉 밑에 놓인 구름다리(510m) 모습은 보이는데 천황사와 천황탐방지원센터는 가려 있다. 사자봉(668m) 동쪽 옆으로는 바위들이 꽃처럼 아름다운 달구봉(555m)과 양자봉이 강진의 월남리를 향해 내달린다. 남서쪽으로는 구정봉(738m)과 향로봉(743m)이 천황봉을 향해 손짓하고 있고 멀리 서쪽으론 부채를 활짝 편 것 같은 노적봉(586m) 능선이 흐릿한 윤곽을 보여준다. 향로봉 너머에는 천년고찰 도갑사가 있으나 보이지 않는다.

천황봉에서 바라본 동쪽 암봉들. 왼쪽부터 705봉, 달구봉, 양자봉이다.

 

■하산로 : 천황봉~바람재~구정봉

하산은 구정봉·향로봉 방향의 바람재로 내려간다. 중간에 돼지바위, 남근바위, 투구바위, 사랑바위 등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무쌍한 바위들이 많다. 다만 안내판이 없어 내 눈엔 머리가 돼지와 흡사한 돼지바위와 남근바위만 보인다. 그런데 남근바위는 거대한 수직 돌기둥이어서 차라리 촛대바위나 문필봉이라고 해야 어울릴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남근바위 상단에서 자라는 산철쭉이다. 과거 기후 때문에 고사된 것을 경관자원의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복원했다고 한다.

천황봉에서 바라본 바람재 방향 봉우리들. 가운데 위가 구정봉이고 그 왼쪽 뒤가 향로봉이다. 구정봉 뒤 능선 오른쪽이 노적봉이고 가장 멀리 봉우리가 주지봉이다.

 

천황봉에서 바람재까지 1.1㎞ 길은 초반에는 급경사 내리막이다가 돼지바위부터는 길이 순해진다. 이 길 역시 조망이 좋아 급히 내려가지 않고 천천히 감상하며 걸어내려가야 한다. 수시로 뒤돌아보면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천황봉 정상 모습도 흥미롭다. 이런저런 새끼 바위들이 엄마봉인 천황봉 가슴에 매달린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바람재까지 40분 걸렸다. 바람재는 초원지대처럼 분지를 이루는 바람의 언덕이다. 겨울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다. 바람재는 삼거리다. 그곳에서 구정봉은 0.5㎞, 경포대는 2.2㎞, 도갑사는 4.7㎞다.

바람재 삼거리. 왼쪽이 경포대 방향이고 직진하면 향로봉과 구정봉으로 오른다. (2022년 4월 촬영)

 

우리는 바람재에서 경포대로 하산한다. 그러나 홀로 구정봉에 오르기 위해 광암터 삼거리에서 먼저 출발한 나는 우측에 솟아있는 구정봉에 올라갔다가 되돌아 내려와 바람재에서 친구들과 합류할 예정이다. 바람재에서 구정봉까지는 0.5㎞이지만 다소 경사가 있어 오르는데 20분 걸린다. 구정봉에서 천황봉을 비롯 사방을 조망하고 내려오는데도 20분 걸렸다.

 

▲큰바위얼굴

바람재 부근에 큰바위얼굴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전방 약 200m 지점에 큰바위얼굴이 있는데 얼굴의 길이로 미뤄 큰바위얼굴의 전신 키는 700m가 넘을 것으로 짐작된다. 큰바위얼굴이 사람의 얼굴이고 월출산이 사람의 몸이 되는 셈이다’라고. 사실 홀로 구정봉에 오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큰바위얼굴을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큰바위얼굴은 천황봉 쪽을 향해 있는 구정봉의 절벽인데 사진에서 보면 머리, 이마, 눈, 코, 입, 턱수염 등 영락없는 거대한 인간의 얼굴이다. 이마부터 턱까지 높이가 100m나 되어 큰바위얼굴의 원조인 미국 뉴햄프셔 화이트마운틴의 ‘큰바위얼굴’(높이 13m)보다 7~8배 크다.

큰바위얼굴은 2009년 영암에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박철씨의 카메라에 처음으로 잡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 바람재 전망대에서부터 구정봉 절벽을 바라보면서 구정봉까지 올라갔지만 사진에서 보았던 큰바위얼굴이 아니다. 다른 등산객에 물어봐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째 이런 일이.

월출산 큰바위얼굴(출처 박철 사진작가). 바람재 삼거리에서 촬영한 위의 큰바위얼굴과 확연히 다르다.

 

산행 후 각종 블로그를 뒤져봐도 큰바위얼굴을 직접 찍은 사진은 없고 대부분 영암군청이 제공한 박철씨 사진 뿐이다. 인터넷에서 아주 드물게 큰바위얼굴 사진이 보여 확인해보면 바람재에서 천황봉 쪽으로 살짝 올라간 곳에 있는 바람재 전망대에서 찍은 것으로 되어있다. 이상하다. 나도 분명히 바람재 전망대를 지나갔는데 왜 내 눈엔 보이지 않았을까. 이유는 산행 후 알게 되었다. 큰바위얼굴이 잘 찍히는 계절과 시간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박철씨가 큰바위얼굴을 촬영한 일자와 시간은 한겨울인 2019년 1월 31일 오후 4~5시 쯤이었다. 큰바위얼굴은 태양의 이동에 따라 얼굴 윤곽이 뚜렷해지거나 그늘로 인해 윤곽이 사라지기도 한다. 바람재 부근에서 큰바위얼굴을 바라봤지만 사진 속 그 모습이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구정봉과 베틀굴

큰바위얼굴을 보지 못해 툴툴거리며 구정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신기한 모습의 바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름은 베틀굴인데 생김새는 여성의 음부와 너무 흡사해 민망스럽다. 그런데 딴 생각 하지 말라고 그랬을까. 안내판에 ‘임진왜란 때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곳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전설따라 삼천리 식 설명이어서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다. 다만 ‘베틀굴이 남근석을 향하고 있어 기묘한 자연의 조화’라는 대목에선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남근바위는 전국에 많으나 여성의 음부를 닮은 바위는 흔치않다. 내 산행 경험상 북한산 여성봉 정도뿐이다.

남근바위(왼쪽)와 베틀굴

 

구정봉은 베틀굴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있다. 구정봉이 통짜 암봉이어서 올라갈 곳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알고보니 배낭을 메고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굴을 지나야 오를 수 있다. 구정봉은 20~30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 암반으로  월출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다. 정상에 움푹 패인 9개 우물이 있다고 해서 구정봉(九井峰)이다. 구정봉은 해발 738m다. 높이로 치면 천황봉(810m), 향로봉(743m)보다 낮지만 옛 문헌에서는 제1봉 대접을 받고 있다. 신동국여지승람에서도 월출산의 주봉을 구정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정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기암기봉 투성이다. 천황봉도 마주 보인다. 구정봉 아래에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이 0.5㎞로 떨어진 곳에 있다는 안내판을 보고 가보고 싶었으나 일행과 합류해야 해서 아쉽지만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구정봉에서 바라본 천황봉(출처 영암군청)

 

▲마애여래좌상과 용암사지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은 구정봉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진 내리막 산길을 따라 30분쯤 가면 있다. 국보 144호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란다. 마애여래좌상은 바위 면을 파서 돋을새김한 석불이다. 높이는 8.6m다. 신라말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얼굴과 팔, 다리 등 질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흘러내려 대좌를 덮은 옷의 유려한 주름까지 생생하다. 석불은 오른쪽 무릎 옆에 87㎝의 선재동자승을 품고 있다. 부처님을 향하여 예불을 올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힘든 산행을 하다가 50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왕복 1시간 일정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찾아가야 하는 것이 1000년 동안 숨 죽여온 옛 절터에서 석불과 단둘이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불에서 100여 m 아래에 용암사지가 있다. 1955년 ‘용암사’라고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용암사’임을 알게 되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삼층석탑은 마애석불에서 직선거리로 1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마애여래좌상을 건너다보며 경배하듯 서 있다. 석불과 석탑은 서로 마주보며 그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마애석불을 보는 자리는 삼층석탑 앞이 명당이다. 석불 앞에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는 것보다, 석탑 부근으로 내려가 석탑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마애불과 눈을 맞추는 것이 제격이다.

마애여래좌상(왼쪽)과 용암사지 삼층석탑(출처 문화재청)

 

■하산로 : 구정봉~바람재~경포대

구정봉에서 내려가 바람재 삼거리에서 친구들을 만나 경포대로 하산한다. 완만한 계곡길이어서 힘들지 않다. 경포대 탐방지원센터까지 2.2㎞를 걷는데 1시간 10분 걸렸다. 산성대에서 출발한 오늘 산행의 전체 시간과 거리를 살펴보니 총 8.2㎞를 쉬엄쉬엄  걷는데 6시간 걸렸다. 산성대 탐방지원센터 →(1.8㎞)← 산성대 →(2.1㎞)← 천황봉 →(1.1㎞)← 바람재 →(0.5㎞)← 구정봉 →(0.5㎞)← 바람재 →(2.2㎞)← 경포대 코스다.

다만 이 글에서는 경포대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천황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소개한다. 경포대 코스는 월출산의 기운을 몽땅 받고 폭포와 깊은 계곡까지 누리는 일석삼조 코스다. 특히 금릉경포대계곡은 월출산에서 가장 깊고 수려한 계곡이다. 계곡이 크고 물이 많아 피서를 겸한 계곡산행지로도 알려져 있다. 강릉의 경포대와 이름이 같지만 가운데 한자가 바닷가 ‘포(浦)’가 아닌 천 ‘포(布)’자를 써서 경포대(鏡布臺)다.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2㎞ 길이의 계곡이 마치 삼베를 길게 늘어놓은 듯 아름답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계곡을 흔히 ‘금릉 경포대’라 부르는데, 금릉은 강진의 옛 이름이다. ‘금릉’이라는 지명은 1172년 고려시대부터 부르던 명칭으로 중국 초나라 위왕이 이곳에 왕의 기운이 있다하여 땅 속에다 금덩이를 묻어놓고서 금릉이라 불렀다 한다

금릉 경포대 모습. 12월이라 수량이 적다.

 

산행기점은 경포대 탐방지원센터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데 길이 완만하고 숲이 울창해 산책길이나 다름없다. 수종이 다양한데 특히 동백나무가 많아 2-3월에 오면 제대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을 만날 듯 싶다. 1㎞ 올라가니 경포대 삼거리다. 왼쪽 계곡은 바람재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천황봉 동쪽 안부로 올라서는 길이다. 바람재를 경유해 올라가는 코스가 상대적으로 쉽고 체력 소모가 적어 바람재 계곡길로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경포대 삼거리에서 바람재까지 1.2㎞는 경사가 급해지지만 서서히 높아져 크게 힘들지는 않다.

경포대 삼거리까지는 길이 순하다.

 

삼거리에서 40~50분 정도 걸려 바람재 능선(삼거리)에 오른 뒤에야 비로소 월출산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서쪽으로는 구정봉과 향로봉 쪽 바위능선이, 동북쪽으론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뾰족한 바위들이 첩첩이 늘어서 있다. 바람재에서 천황봉 정상까지는 40~50분쯤 가파른 절벽과 바위 봉우리들을 싸고돌며 오르내려야 닿는다. 중간에 남근바위와 돼지바위 등 이채로운 바위들과, 산 밑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들판이 발길을 자주 멈추게 만든다.

하산은 통천문 삼거리에서 0.2㎞ 떨어진 경포대 능선 삼거리를 지난다. 왼쪽은 구름다리를 거쳐 천황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산 중턱의 약수터를 거쳐 다시 경포대 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데 1시간30분쯤 걸린다. 코스와 거리를 살펴보면 ‘경포대 탐방지원센터 →(2.2㎞)← 바람재 →(1.4㎞)← 천황봉 정상 →(2.2㎞)← 경포대 삼거리 →(1.0㎞)← 경포대 탐방지원센터’ 순서이고 총 거리는 6.8㎞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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