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①-2] 윗세오름 영실탐방로 (영실~윗세오름~어리목)

↑ 족은오름 전망대에서 여성 몇명이 백록담 화구벽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내맘대로 평점(★ 5개 만점).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윗세오름의 존재를 알고 고교 동창들과 함께 처음 오른 것은 2019년 가을이었다. 그후 윗세오름은 내가 다시 가보고 싶은 국내 산행지 Top5 안으로 들어왔다. 해서 2020년 4월 형제들과 윗세오름에 또다시 올랐으나 도중에 장염 때문에 포기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1년 4월 27일, 이번에는 아내가 동행했다. 2년 전에는 어리목에서 출발해 윗세오름 대피소를 거쳐 영실로 하산했으니 이번에는 반대 코스(영실~윗세오름 대피소~어리목)를 선택했다. 하산 후에는 어리목에서 택시를 불러 주차 장소인 영실로 이동하기로 했다.

윗세오름 탐방로는 세 곳이다. 영실, 어리목, 돈내코다. 이중 등산객이 주로 이용하는 등산로는 영실과 어리목이다. 초보자는 영실로 올라가 다시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를 통해 윗세오름의 간을 본다. 중간급 등산객은 영실에서 올라가 어리목으로 내려오거나 어리목에서 올라가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호한다.

영실 탐방로(위)와 어리목 탐방로

 

■영실에서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영실(靈室)은 한라산 정상의 남서쪽 산허리에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들이 하늘로 솟아있는 모습이다.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靈山)과 흡사하다고 해 이름이 지어졌다. ‘산신령이 사는 골짜기’라는 뜻도 있다.

영실 탐방로 입구에서 윗세오름까지 거리는 3.7㎞다. 오르는데 2시간, 다시 영실로 내려오는데 1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물론 윗세오름을 거쳐 어리목으로 내려가면 1시간은 더 잡아야 한다. 영실 코스는 일부 구간에 가파른 돌계단과 데크계단이 있지만 거리가 500m 정도에 불과하고 잘 정비해놓아 전체적으로는 힘들지 않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오르는 모습이 가끔씩 목격된다.

영실 코스가 어리목 코스보다 시간이 덜 걸리는 것은 거리가 짧기도 하지만 영실 출발지점의 해발고도가 어리목에 비해 300m나 높기 때문이다. 해발고도는 어리목이 970m, 영실은 1280m다. 게다가 경사가 끝나는 선작지왓 고원의 해발고도가 1600m여서 1시간~1시간 30분 만에 고도를 300m만 높이면 된다. 선작지왓(1600m)에서도 목적지인 윗세오름 대피소(1700m)까지는 30분동안 고도를 100m만 높이면 되므로 사실상 평지를 걷는 것이어서 유유자적하며 걸을 수 있다.

영실 탐방로 입구

 

영실은 말발굽형 분화구… 그래서 오름

영실 탐방로 초입에서 1㎞ 남짓 거리는 비교적 완만하다. 주변 수목과 영실계곡을 즐기며 쉬엄쉬엄 오를 수 있다. 초입은 아름드리 적송 군락이다. 붉은 색의 가지가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뻗어있다. 2001년 산림청이 주관한 아름다운 숲 공모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 우수상을 수상했다.

적송지대를 벗어나 잡목들이 빼곡한 수림지대를 지나면 영실계곡이다. 곧이어 침목 계단길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오르면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다행히 500m 정도만 가파르다. 위로 올라갈수록 멀리 서귀포 해안과 산방산, 차귀도 등 더 많은 곳이 보인다. 영실기암과 병풍바위도 더 많은 곳을 보여준다. 영실기암은 움푹 내려앉은 분화구를 에워싼 뾰족하고 거대한 수직 암벽 봉우리들의 집합체다. 춘화, 녹음, 단풍, 설경 등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모습과 울창한 수림이 어울려 빼어난 경치를 보여주어 대한민국 명승(제84호)이다. 멀리 보이는 하늘로 솟아있는 기암괴석들은 오백나한 또는 오백장군이다. 전망대 북쪽 끝에는 웅장한 주상절리 암벽인 병풍바위가 수직으로 둘러쳐져 있다.

선작지왓으로 오르는 등산객들. 오른쪽이 병풍바위다.

 

선작지왓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낮은키의 주목 군락지가 왼쪽에 펼쳐진다. 중간중간 마치 은빛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흰색의 고사목들이 봄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나무 위에 앉아있는 까마귀는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멀뚱한 표정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지능이 좋아 사람들이 먹이를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까마귀는 신성한 새다. 제주 사람들은 까마귀가 검은 옷을 입은 무당이라며 까마귀 우는 모습에서 하루를 점친다고 한다. 까마귀가 더욱 진화해 떼를 지어 몰려들면 무섭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무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까마귀

 

초입에서부터 쉬엄쉬엄 1시간 30분 정도를 오르니 하늘이 열리고 전망대(1500m)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야 영실이 왜 말발굽형 분화구인지를 비로소 알 수 있다. 영실기암과 병풍바위가 에워싸고 있고 굼부리(화산분출구)가 영실계곡 쪽으로 터져 있는 것이 오름의 증거다. 비고(389m) 상으로는 제주도 오름 중 산방산(395m)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세 번째는 어승생악(350m)이다. 전망대를 지나 병풍바위 위로 난 길을 오르면 더 이상 경사진 데가 없는 구상나무 군락지대다. 고사목이 많아 고산지대의 독특한 풍광을 볼 수 있다.

영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영실 분화구

 

선작지왓은 생태적 가치 뛰어난 고원습지… 대한민국 명승

구상나무 숲 사이로 설치된 나무데크 길을 지나면 국내 최고(해발 1600~1700m) 초원지대인 선작지왓이 펼쳐진다. 멀리 백록담 화구벽이 우람하다. 선작지왓은 제주어로 ‘바위(작지)들이 서 있는 들판(왓)’이라는 뜻이다. 키작은 관목류가 넓게 분포되어 있고 다양한 식물들이 서식하는 고원습지여서 생태적 가치가 뛰어나다. 이곳 역시 대한민국 명승((91호)이다. 봄에는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꽃바다를 이루고 ‘시로미’ 등 희귀고산식물이 군락을 이룬다.

시로미는 14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라는 늘푸른 키작은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과 백두산에서만 관찰되는 희귀고산식물이다. 털진달래는 해발 1400m 이상에서 피며 4~5월에 홍자색의 꽃이 핀다. 꽃부리에 털이 많아 털진달래다. 산철쭉은 5~6월에 연한 홍자색의 꽃이 핀다. 선뜻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오늘이 4월 27일이니 털진달래다. 진분홍 꽃잎이 생기있고 꽃색이 선명하다다.

선작지왓 고원 모습

 

선작지왓 역시 조릿대 천국이다. 조릿대 사이로 고산식물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고 있고 고원에는 털진달래가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다. 선작지왓 고원에 놓인 나무데크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펑퍼짐한 윗세족은오름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왼쪽에 나타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선작지왓의 고산평원과 이름모를 오름 군락이 파노라마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 백록담 화구벽의 모습이 더욱 늠름하고 씩씩하다. 북서쪽 아래로는 만세동산과 사제비 동산 그리고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데크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맑은날이면 범섬, 마라도, 차귀도 비양도 등 제주도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윗세오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로 최고 경치를 자랑

윗세오름은 1100m 고지 부근의 세 오름을 총칭하거나, 세 오름보다 위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 오름이란 선작지왓과 윗세오름 부근의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이다.

족은오름에서 내려와 윗세오름 대피소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는 완만한 구릉(오름)이, 오른쪽으로는 서귀포 방향으로 너른 평원이 펼쳐있어 시각적 편안함을 준다. 그 사이로 나무데크가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그 길을 걷는 맛이 환상적이다. 그렇게 눈이 시원할 수가 없다. 안구정화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 어디에 이처럼 높은 곳에 시야가 탁 트인 평지 초원이 있을까 싶다. 지평선이 없는 나라에서 너른 평야가 있다한들 그 끝의 종착지는 모두가 산이다. 그러나 이곳 평원의 끝은 산이 아니라 하늘이거나 서귀포 방향 내리막 지평선이다. 내 눈에 윗세오름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로 최고의 자연과 경치를 자랑한다. 스위스 트레킹 경험자로서 그것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스위스 트레킹에 비해 거리가 짧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걷고 쉬고 보고 찍으면서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2시간 50분이 흘렀다. 대피소에는 널빤지로 넓게 조성한 휴게장소가 있다. 사방이 터져있는 그곳에서 햇살을 받으며 먹는 점심이 꿀맛이다. 그곳에서 남벽분기점까지 다녀올 수 있지만 왕복 2시간이나 걸리고 1년 5개월 전 다녀온 터여서 포기하고 어리목 탐방로 입구로 하산했다. 윗세오름의 세 탐방로 중 돈내코 탐방로도 남벽분기점 쪽으로 나 있다,

윗세오름 대피소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어리목으로 하산

 

선작지왓 길도 멋지지만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어리목 방향으로 하산하는 데크길도 참으로 멋진다. 대피소에서 하산 방향을 바라보면 데크 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어리목까지 4.7㎞다. 영실~윗세오름 구간 3.7㎞보다 1㎞ 더 길다. 다행히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다. 다만 중간 지점인 샘터까지만 완만하다가 그때부터 어리목 탐방로까지는 숲속을 걷는 중간급의 경사길이다.

윗세오름 대피소~샘터 구간(2.3㎞)은 마치 구도자의 길처럼 느껴진다. 경건함이 느껴지고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것은 자유이고 해방이다.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아무 데크 위에나 누워보라. 해방구가 따로 없다. 호사도 그런 호사가 없다. 가끔은 걷기 편한 데크 대신 다소 걷기 불편한 현무암을 깔아놓은 길도 있으나 구도자의 길이니만큼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 현무암을 깔아놓은 것은 제주도 전역이 현무암의 땅이니만큼 그걸 느껴보라는 뜻이리라.

상반신이 보이던 백록담 화구벽이 거리가 멀어져 머리만 보일 즈음, 아내가 걸음을 멈추더니 화구벽을 배경으로 동영상 편지를 쓴다.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생신 당일 생신을 축하하지 못했다며 미안함을 전하는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더니 카톡으로 보낸다. 괜찮은 아이디어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어리목 방향

 

윗세오름 대피소~샘터 구간(2.3㎞)은 마치 구도자의 길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1.5㎞ 정도 내려간 곳에 만세동산 전망대가 있다. 만세동안은 예전에 한라산에서 소와 말을 방목할 때 높은 곳에서 소와 말을 감시했다고 해서 망동산으로도 불린다. 만세동산 위쪽으로는 민대가리동산(민오름), 장구목, 백록담 화구벽, 윗세붉은오름, 윗세누운오름이 줄지어 있다. 아래쪽으로는 서쪽 바다까지 길고 넓게 펼쳐진 평원에 마치 경주의 고분처럼 생긴 여러 오름들이 봉긋봉긋 솟아있다. 삼형제오름, 노로오름, 바리매오름, 쳇망오름, 큰노꼬메와 족은노꼬메오름이다. 그중 일부 이름이 익숙하다. 하루전 올라갔던 노꼬메오름과 바리메오름 그리고 영실에서 올라오면서 계속 뒤쪽으로 보였던 쳇망오름이 그것이다. 이름을 아니까 주변의 자연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만세동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오름들

 

샘터에서 어리목까지 숲은 우거지나 다소 경사가 있다. 속도를 낼 수 없으니 올라올 때는 적당한 땀을 각오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은 하산길이다. 게다가 4월의 연초록이 절정이다. 그래도 하산길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다소 지루하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은 거대한 어리목 게곡과 목교다. 4월이어서 물이 없지만 비가 오면 거대한 계곡으로 바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싶다. 어리목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6시간이나 지났다. 일반 등산객의 4~5시간에 비하면 많이 걸렸으나 그만큼 여유있게 걸었다는 뜻이니 만족한다.

어리목 목교

 

■어리목에서 영실로 이동하는 교통편

 

당초 계획은 어리목에서 택시를 호출해 영실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내버스 코스가 궁금해 택시를 포기하고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어리목 주차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영실행 시내버스 정차장은 어리목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아래로 걸어 내려가야 하고, 그곳에서 막차가 오후 5시 47분이란다. 참고로 영실행 시내버스는 어리목에 1시간 마다 있다.

시간상 우리는 막차에 해당되어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윗세오름(6시간)에 이어 어승생악(1시간 30분)까지 올라갔던 터라 발이 무겁다. 심지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엄지발가락에 물집까지 생겼다. 결국 버스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기위해 택시를 호출하는데 응하는 택시가 없다. 할 수 없이 막차 버스라도 타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을 때 택시가 짠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기사에게서 영실의 버스 정류장 위치를 듣고나서야 버스를 탔으면 꽤나 고생했을 것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영실 버스정류장에서 영실 탐방로 입구까지는 2.5㎞ 오르막길을 50분 정도 걸어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도착하면 한창 어두웠을 것이고 고생도 꽤나 했을 것이다. 호출한 택시가 아니라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은 덕에 택시비도 2만원밖에 받지 않은 기사에게 “기사님은 구세주”라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보통 주차장에서 호출할 때는 2만 5천원~3만원을 받는다.

어리목 주차장의 대형 표지석

 

산행 후 영실~어리목 이동할 때는 가급적 택시를 이용하세요

영실 쪽에는 주차장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시내버스가 정차하는 주차장(A)이고, 다른 한 곳은 A주차장에서 2.5㎞ 올라간 곳에 있는, 탐방로 입구와 가까운 영실 휴게소 부근에 조성된 B주차장이다. B주차장은 A주차장보다 고도가 250m 높다. 따라서 A주차장 등산객이 영실 탐방로 입구까지 가려면 오르막길을 40~5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부터 진을 빼는 것이므로 B주차장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시내버스 이용 등산객은 버스가 탐방안내소(A)까지만 가므로 선택의 여지 없이 40~50분을 걸어올라가야 한다.

반면 승용차 운전자는 A와 B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다. 어리목도 마찬가지여서 버스정류장은 어리목 탐방안내소에서 0.9㎞ 내려간 곳에 있다. 다만 거리가 짧아 크게 부담이 안되고 탐방안내소 주차장이 워낙에 넓어 언제든 주차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점을 감안해 가급적 일찍 숙소에서 출발했더니 평일이라 그런지 영실 휴게소 앞 주차장에는 다행히 빈공간이 많았다.

위에 정리한 사실을 기초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조언한다면 가급적 택시로 이동할 것을 권한다. 최대 3만원 아끼려다 고생을 좀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조차 운동의 연장선이라면 이런 말을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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