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원본과 거의 흡사하게 복제본 작업이 추진된다는데… 누가 발견하고 어떻게 ‘세계 최고(最古)’를 인정받았나

↑ 직지심체요절

 

by 김지지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원본과 거의 흡사한 복제본을 만드는 사업이 추진된다. 충북도 청주시는 프랑스에 보관된 ‘직지’ 원본을 그대로 베껴 같은 것을 여러 벌 만드는 ‘복본화’ 사업을 추진한다고 최근 밝혔다. ‘복분화’는 이미지를 단순히 인쇄하는 것이 아닌 종이의 재질과 이미지, 제본 방식 등을 원본과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직지’를 처음 발견한 이는 박병선 박사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박병선(1929~2011)이 소르본대학과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각각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근무를 시작한 곳은 파리 국립도서관이었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홀로 프랑스로 유학 갔다. 한국에서 유학 비자를 받은 여성 1호였다. 그는 학창 시절 스승인 이병도 교수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고서들을 약탈해 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확인이 안 된다. 유학 가면 한 번 찾아보라”고 한 이야기를 잊지 않고 도서관·박물관 등을 뒤지고 다녔다.

1967년 어느날 박병선은 도서관 내 동양문헌실에서 표지에 한자로 ‘直旨(직지)’라고 쓰인 작은 책(가로 17㎝, 세로 24.6㎝) 한 권을 발견했다. 표지에는 누군가 프랑스어로 갈겨 쓴 ‘1377년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

 

그것만으로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던 박병선이 주목한 것은 책의 맨 뒷장 간기에 적힌 ‘선광칠년정사칠월일 청주목외흥덕사 주자인시(宣光七年丁巳七月日 淸州牧外興德寺 鑄字印施)’라는 글귀였다. 해석을 하면 ‘우왕 3년(1377년)에 청주목 교외의 흥덕사에서 주조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라는 뜻이었다. 만약 글이 사실이라면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구텐베르크가 1450년대에 간행한 ‘42행 성서’보다 70여 년이나 앞서 인쇄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1901년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쿠랑이 펴낸 ‘한국 서지’에도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의 어떤 금속활자본보다 빠른 것’이라고 ‘직지’가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직지’가 실물로 존재할 가능성은 높았다. 다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던 것인데 박병선이 ‘직지’의 소재를 찾아낸 것이다.

1972년 한국을 찾은 박병선 박사가 서울 인사동 통문관에서 국내 서지학자들과 함께 직지심체요절 영인본을 확인하는 모습

 

박병선의 정밀한 고증 끝에 진본으로 확인된 ‘직지’의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호가 백운인 고려 말 경한 선사가 1372년 역대 불조(佛祖)들의 법어와 설법 등에서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상하 2권으로 엮은 책을, 경한 선사가 입적한 후인 1377년 7월 비구니 묘덕 스님과 경한 선사의 제자인 석찬과 달장 등이 힘을 합쳐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낸 것이다.

이를 줄여서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부를 수는 있지만 ‘직지심경’이라는 약칭은 잘못된 표현이다. ‘경(經)’은 불교경전을 뜻하는데 ‘직지’는 불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때는 ‘불조직지심체요절’로 기록되었다. 책의 중심 주제는 ‘직지심’으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불도를 깨닫는 명귀에서 따온 것이다.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심성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1907년 프랑스로 건너가 고서 수집가 손을 거쳐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관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어야 할 ‘직지’가 무슨 이유로 멀리 프랑스 파리에까지 간 것일까? 해답의 열쇠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부임한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초대 주한 대리공사가 쥐고 있었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조선 부임 후 공사관 앞에 고서를 산다는 방을 써 붙일 정도로 책 수집에 열중했다.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이런 과정을 거쳐 ‘직지’가 플랑시의 손에 들어가 프랑스로 넘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어디서 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플랑시가 직지를 입수한 뒤 표지에 ‘1377년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고 펜으로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그는 ‘직지’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직지’는 1907년 플랑시에 의해 프랑스로 건너가 1911년 고서 경매를 거쳐 당대의 부유한 보석상이자 고서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1943년 수집가가 숨지자 그의 유언에 따라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현재는 도서번호 109번, 기증번호 9832번을 단 채 동양문헌실에 보관되어 있다.

직지 상하권 중 하권만 발견되고 첫 장은 결락된 상태였지만 하권 마지막 장에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선광칠년(宣光七年)…’이 명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하권 발견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더 다행인 것은 직지를 인쇄하고 1년 뒤 우왕 4년(1378년) 6월에 ‘직지’ 금속활자본과 똑같은 목판본 상하 양권이 경기 여주의 취암사에서 간행되어 지금도 국내 세 곳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직지의 전체 내용을 알 수 있게 된 것도 이 목판본 덕분이다.

‘직지’ 하권 맨 뒷장 간기에 적혀 있는 ‘선광칠년정사칠월일 청주목외흥덕사 주자인시(宣光七年丁巳七月日 淸州牧外興德寺 鑄字印施)’

 

‘직지’의 고증이 끝나자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은 1972년 5월부터 10월까지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주최 ‘책의 역사전’에 ‘직지’를 전시하면서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이라고 발표했다. 세계가 놀라는 가운데 우리나라 전문가들도 파리로 달려가 실물을 보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12월 박병선 박사가 가져온 영인본을 감정한 끝에 한국서지학회가 12월 28일 금속활자본임을 최종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든 문화국가임을 자부할 수 있었다.

 

인류에 끼친 영향면에서는 구텐베르크에 많이 떨어져

‘직지’가 구텐베르크보다 70여 년 먼저 인쇄되었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류에 끼친 영향면에서는 구텐베르크와 비교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직지’ 하권의 인쇄면수가 39장(78쪽)에 불과하고 목판활자가 섞여 인쇄되었으며 인쇄 부수도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에 비해, 1452~1456년 완성된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는 인쇄면수가 1280면이나 되고 발행부수도 약 200부(그중 30부는 양피지)에 달하는 데다 현재도 48부가 세계 주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이 개발된 후 반세기도 안되어 유럽 20여 개 도시에서 약 3만5000종의 책이 찍혀 나와 가히 지식의 대량보급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구텐베르크가 1455년 서양 최초 금속활자로 인쇄한 ‘42행’ 라틴어 성경

 

문제는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흥덕사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제 해결의 단서가 나온 것은 1984년이었다. 그해 11월 청주대박물관 박상일 연구원이 청주시 운천동 866번지에서 절터 하나를 새로이 찾아냈지만 택지 공사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한 긴급 발굴 조사가 1985년 여름 시작되었다.

그리고 10월 초 박 연구원이 흙 속에서 청동 금구(禁口·쇠북)를 발견했다. 중장비 삽날에 찍혀 원상을 잃었지만 측면에 여러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 가운데 ‘서원부 흥덕사’란 문구가 있었다. ‘황룡십년 흥덕사’라고 새겨진 큰 그릇 뚜껑도 함께 출토되었다. 조사단은 발굴 성과를 종합해 이 ‘흥덕사’가 직지를 찍어낸 흥덕사와 같은 곳임을 밝혔다.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산실이 비로소 확인된 것이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직지’를 등재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받았다.

청주시 운천동 흥덕사 터 흙 속에서 발견된 청동 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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