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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국립공원] ② 구담봉·옥순봉·제비봉은 충주호(청풍호) 주변의 그림같은 풍광을 언제든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는 최고 조망터

↑ 옥순봉 정상을 지난 곳 전망터에서 바라본 충주호와 옥순대교. 지금은 소나무 자리에 데크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소나무 왼쪽 옆 아래 강에는 옥순봉 출렁다리가 놓여있다.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공원지킴터 → 구담봉 → 옥순봉삼거리 → 옥순봉 → 공원지킴터 : 5.8㎞에 3시간 20분

☞ 제비봉공원지킴터 → 제비봉 → 얼음골 : 4.1㎞에 3시간 30분

 

by 김지지

 

■구담봉과 옥순봉은 한 몸 두 얼굴

 

월악산 국립공원 내 금수산지구는 공원의 북동쪽에 치우쳐 있어 영봉과 송계계곡 주변으로 형성된 월악산의 중심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인기를 끄는 것은 산세도 산세지만 지구 내 어느산 어느봉에 올라도 충주호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인기 산행지는 구담봉(330m), 옥순봉(286m), 제비봉(721m)이다. 산행 거리가 3~4시간으로 짧고 기암능선마다 충주호(청풍호) 주변의 그림같은 풍광을 조망할 수 있으며 산세 또한 아기자기하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단양팔경’ 중 제3봉과 제4봉이다.

단양팔경은 퇴계 이황이 1548년 단양군수 시절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 등을 둘러 보고 “중국 후난성 동정호 남쪽의 소상팔경(瀟湘八景)보다 낫다”고 극찬한 뒤 정해졌다고 한다. 퇴계는 금수산(錦繡山)과 옥순봉(玉筍峰) 이름도 지었다. 옥순봉은 예나 지금이나 제천 땅에 속해 있어 ‘제천 10경’ 중 제8경’으로도 불린다. 단양팔경 중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사인암, 옥순봉 등 5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44호~48호)이기도 하다.

옥순봉과 구담봉은 봉우리만 다를 뿐 몸체가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한몸이다. 같은 들머리로 올라가 옥순봉삼거리(374m)에서 Y자 형으로 갈라지는데 오른쪽이 구담봉(330m), 왼쪽이 옥순봉(286m)이다. 등산로가 비교적 순하고 거리가 길지 않아 두 봉우리를 다 올라갔다가 원점회귀하는데 3~4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르내리는 총거리는 5.8㎞다. 사실 삼거리의 해발고도가 구담봉과 옥순봉보다 높아 별도의 봉우리 이름이 있어야  할 것 같으나 조망이 없어 무시당한 것 같다.

구담봉 옥순봉 제비봉 지도

 

☞ 클릭! 월악산 국립공원 지도

 

▲구담봉 산행

 

옥순봉은 완경사, 구담봉은 급경사

대학친구인 동규 태성 희용과 함께 구담봉과 옥순봉에 오른 것은 2020년 6월 7일이다. 하루 전 월악산 국립공원 내 금수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숙소에서 한 잔을 걸치면서 이왕에 멀리까지 왔으니 두 봉우리도 올라가자고 의견일치를 본 게 계기가 되었다. 두 봉우리 들머리는 제천과 단양 경계인 계란재 탐방안내소다. 안내소에 도착하니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관광버스도 여러대다. 차림세를 살펴보니 등산객 반, 관광객 반이다.

차를 몰고 탐방안내소 입구로 들어서는데 직원이 산행 예약을 했느냐고 묻는다. “무슨 예약이냐”고 반문했더니 매년 봄 5월 1일부터 6월 30일 사이에는 탐방 예약제를 적용하는데 하루 예약 가능 인원은 600명이란다. 인터넷 예약이 600명을 넘지 않으면 예약 없이 현장에서 이름만 적고 오를 수 있지만, 600명을 넘으면 탐방이 제한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예약이 600명을 넘지 않아 그냥 입장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600명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계란재 탐방안내소와 주차장

 

탐방안내소 입구에서 두 봉우리의 코스 높낮이 지도를 보니 옥순봉 방향은 완경사인데 구담봉 방향은 두 번이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안부까지 내려갔다가 벼랑을 거슬러 급하게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겠다 싶어 선(先) 구담봉, 후(後) 옥순봉 순서로 정했다. 따라서 우리의 산행은 탐방안내소 → 옥순봉삼거리 → 구담봉 → 옥순봉삼거리 → 옥순봉 → 옥순봉삼거리 → 탐방안내소 순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정상에 서니 시퍼런 충주호(청풍호)와 청록의 산릉들이 눈앞에 펼쳐져

입구로 들어서니 콘크리트 포장도로, 숲길, 나무계단 등이 번갈아 나타난다. 10분 정도 완경사 오르막길을 지나 언덕을 넘어서자 너른 분지다. 그곳에 자리잡은 소규모 매점과 밭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급경사는 아니어서 힘들지는 않다. 입구에서 1.4㎞ 거리를 30분 정도 오르니 옥순봉삼거리(374m봉)다. 그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은 옥순봉(0.9㎞), 오른쪽은 구담봉(0.6㎞) 방향이다.

먼저 오를 예정인 구담봉은 봉의 전체 형상이 거북이를 닮아서 불린 ‘구봉(龜峰)’과, 충주호로 수몰되기 전 물속 바위에 거북 등짝 무늬가 어른거렸다는 ‘구담(龜潭)’을 합친 명칭이다. 구담봉 오르막 능선은 잠시 숲길이다가 곧 숲이 걷히면서 기암능선이 속살을 드러낸다. 이후 급경사 암릉길을 한참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철계단도 있다. 마지막에는 가파른 철계단 내리막길을 따라 U자형으로 패인 안부로 내려섰다가 벼랑에 세워 놓은 사다리같은 200여개의 철계단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계단을 직접 세어보니 안부로 내려갈 때는 249계단이고 안부에서 구담봉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210개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오르는 시간이 5~10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시퍼런 충주호(청풍호)와 청록의 산릉 등의 절경이 충분히 보상해준다.

구담봉 정상 전망대에 서면 왼쪽으로 가은산 능선이 보이고 그 뒤로 금수산~망덕봉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장회나루선착장이 충주호반에 바싹 붙어있고 그 뒤로 제비봉이 충주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해 10월 형과 함께 다시 올랐을 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고 했던 형의 감탄사가 기억에 남는다. 구담봉에서 내려와 옥순봉삼거리로 돌아가니 초입부터 합산해 1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들머리부터 총거리는 2.6㎞. 잠시 쉬었다가 옥순봉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데 동규와 태성이 자신들은 그곳에서 쉴터이니 희용과 나 두 사람만 다녀오란다. 7시간 40분이나 걸린 전날의 금수산행이 힘들었나보다.

구담봉과 데크계단

 

▲옥순봉 산행

 

정상보다 조망 좋은 곳이 두 곳이나 있어

희용과 둘이서만 옥순봉에 오르기로 하고 거리를 재보니 왕복 1.8㎞다. 공원지킴터까지 1.4㎞를 합치면 나머지 걸어야 할 구간이 총 3.2㎞다. 구담봉이 바위 위주의 봉이라면 옥순봉은 바위와 흙길의 혼합이다. 코스는 두 차례나 급경사를 오르고 내려야 하는 구담봉과는 달리 한차례만 깊숙이 내려갔다가 짧게 올라가면 된다. 이는 삼거리로 되돌아올 때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옥순봉삼거리에서 옥순봉 가는 길은 숲이 우거진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500m쯤 하염없이 내려가니 숲이 터지고 충주호 건너 가은산 일원이 바라보인다. 이후 능선길을 오르면 옥순봉 정상 목전에서 능선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직진하면 정상이다. ‘옥순봉 286m’라고 표시된 정상석과 데크조망대가 조성되어 있긴 하나 최고 조망터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상보다 조망이 좋은 곳이 주변에 두 곳이나 더 있어 비교가 되기 때문에 최고 조망터가 아니라는 것이지 나름 괜찮은 조망터다. 충주호 건너편으로 가은산릉과 금수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옥순대교 너머로는 거대한 충주호가 바다처럼 펼쳐진다.

조망이 좋은 다른 두 곳은 어디일까. 한 곳은 정상 전 갈림목에서 오른쪽 산릉 끝까지 나아가면 나타나는 너럭바위다. 바위에 올라서면 그림 같은 풍광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그런데 공단 측이 이곳을 출입금지로 지정해놓아 슬금슬금 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또 다른 곳은 옥순봉 정상 옆을 지나 100m 정도 직진한 곳에 있는 암반 조망터다. 내가 볼 때 옥순봉 최고 조망터인데 이곳도 출입금지라고 막아놓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해 10월 다시 가봤을 때는 그곳에 멋진 데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사실 구담봉 바로 옆에도 구담봉보다 더 높은 곳이 있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궁금하지만 이곳 역시 출입금지 표시를 해놓았다. 옥순봉 지난 전망터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옥순대교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데 붉은색 아치가 시퍼런 충주호 풍광과 대비되어 인상적이다. 조망터 앞에서 분재처럼 자란 나지막한 소나무도 일품이다.

옥순봉 전망대. 옥순대교와 멀리 충주호가 길게 이어져 있다.

 

천길 단애를 이룬 석벽이 비 온 뒤 솟아오르는 옥빛 죽순같다 하여 ‘옥순봉(玉筍峰)’

옥순봉은 18세기 후반 김홍도의 붓에서도 살아났다. 김홍도는 1792년부터 수년간 충북 괴산군 연풍현감으로 있을 때 단양과 제천을 돌아다니며 산수풍경을 그렸다. 그러다가 현감 임기가 끝난 1796년 병진년 봄에 ‘옥순봉도’(31.6㎝ x 26.7㎝에 수묵담채)를 그렸다. 이 옥순봉도는 ‘병진년 화첩’ 20폭 중 첫 번째 그림으로 현재는 보물 제782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홍도의 ‘옥순봉도’

 

옥순봉은 예나 지금이나 제천시에 속한다. 그런데도 단양시가 ‘단양팔경’ 중 제4경으로 지정한 이유는 퇴계 이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그가 각별히 아낀 기녀 두향이 남한강변에 우뚝 선 기암절벽의 절경에 반해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이에 퇴계가 제천의 청풍부사에게 요청했으나 청풍부사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퇴계는 천길 단애를 이룬 석벽이 비 온 뒤 솟아오르는 옥빛 죽순같다 하여 ‘옥순봉(玉筍峰)’이라 이름 짓고,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단양으로 통하는 첫 관문)’이라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단구동문(丹丘洞門)’ 글씨는 충주호 준공 후 수면 아래로 들어가버렸다.

구담봉과 옥순봉을 둘러본 후 탐방안내소로 원점회귀한 시간을 살펴보니 휴식시간 포함해 3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시간은 ▲공원지킴터(11:10) → 옥순봉삼거리(11:43) → 구담봉(12:10) → 점심 요기 후 옥순봉삼거리(13:00) → 옥순봉(13:25) → 옥순봉삼거리(14:00) → 공원지킴터(14:33)이고, 거리는 총 5.8㎞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원지킴터 →(1.4㎞)→ 옥순봉삼거리 →(0.6㎞)→ 구담봉 →(0.6㎞)→ 옥순봉 삼거리 →(0.9㎞)→ 옥순봉 →(0.9㎞)→ 옥순봉삼거리 →(1.4㎞)→ 공원지킴터 순이다.

정상 표지석

 

 

■제비봉 산행

 

멀리서 보이는 구담봉·옥순봉이 궁금해 제비봉 올라

옥순봉과 구담봉을 다녀온 후 산행기를 쓰려고 관련 글을 참고하는데 구담봉 건너편의 제비봉을 한 묶음으로 하는 글들이 많아 제비봉이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제비봉에서 바라보는 구담봉과 옥순봉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렇다고 곧 제비봉에 오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전국에 오르고 싶은 멋진 산이 그렇게 많은데 이미 다녀온 구담봉·옥순봉과 비슷한 제비봉을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담봉과 옥순봉을 다녀오고 열흘만에 제비봉에 오르게 되었으니 이 무슨 조화인가.

제비봉을 오르게 된 것은 대학 친구·후배들과 오래전 계획했던 소백산을 다녀오고 단양에서 하룻밤을 머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동행 친구는 대학친구 희용과 대학후배 상현과 원수였다. 우리 네 사람은 2020년 6월 16일 소백산에 올라갔다가 희방사로 내려와 단양 다리안계곡 근처 숙소에서 쉬면서 다음날 어디로 갈지 논의하다가 주변의 제비봉을 후보지로 선택했다.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몸 상태를 살펴보니 전날 소백산 8시간 30분 종주를 하고 술을 거나하게 마셨는데도 모두 체력에 여유가 있는 듯했다. 희용이 제비봉 코스를 급하게 검색하더니 비교적 쉬운 코스로 나온다고 해 우리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제비봉 등정을 결정했다. 제비봉 이름은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구담봉 방면에서 바라보면 충주호 쪽으로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처럼 올려다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구담봉 정상에서 바라본 장회나루선착장과 그 뒤의 제비봉
초입부터 급경사여서 데크의 연속

들머리는 장회유람선선착장 부근의 제비봉공원지킴터다. 입구의 지도를 살펴보니 난이도는 보통으로 표기되었고 경사도는 완경사로 되어 있어 가볍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뗐다. 그런데 실제로는 ‘보통’이나 ‘완경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721m를 치고 올라가야 하는 급경사인데도 300m를 올라가는 완경사처럼 엉터리로 표시해놓은 것이다. 게다가 기온이 갑자기 올라가고 전날 마신 술까지 영향을 미쳐 한발 한발이 무거웠다.

나야 평소 뒤에서 천천히 구경하고 사진찍으며 올라가기 때문에 숨이 헉헉댈 정도는 아니지만 한때는 산꾼같았던 막내 원수가 어느덧 50이 넘으니 힘들다며 툴툴거린다. 평소 집 주변 산에만 오르고 원정산행은 잘 하지 않았던 상현이 비축한 체력으로 날아갈 듯 앞서 나간다. 상현은 하루 전 소백산도 넘치는 체력을 주체하지 못한 듯 힘차게 앞서 오른 바 있다. 산행 거리는 제비봉공원지킴터(들머리) →(2.3㎞)→ 제비봉 정상 →(1.8㎞)→ 얼음골(날머리)이므로 4.1㎞ 거리다. 공원지킴터로 원점회귀한다면 4.6㎞다. 우리는 셋이 얼음골로 내려가고 원수 홀로 공원지킴터로 내려가 차를 가지고 얼음골로 와 우리를 픽업하기로 했다.

초입부터 급경사다. 수십개 계단으로 된 데크를 올라가면 또 다른 데크가 기다리는 데크의 연속이다. 저 멀리 위에 급경사 데크가 보이고 그 위에 봉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제비봉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곳은 온통 암릉으로 이뤄진 540.3m봉이다. 제비봉 정상 못지 않게 풍광이 멋진 곳이다. 그곳에 올라서면 사방이 탁 트이고 저 멀리 충주호가 내려다보인다. 열흘 전 올랐던 구담봉도 건너편에서 손짓을 한다. 옥순봉은 구담봉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좀더 올라가면 보인다. 충주호 건너편의 가은산릉과 말목산릉도 멋지고 그 뒤 망덕봉과 금수산릉도 우람하다. 망덕봉과 금수산도 열흘 전 다녀왔으니 가은산릉만 오르면 월악산의 북동쪽 코스는 어느정도 마스터하는 것이다.

 

 

540.3m봉. 건너편 남한강 왼쪽이 구담봉이고 맞은편이 가은산이다. 오른쪽 산은 말목산이다.

 

조망을 위해 존재하는 봉… 아름드리 소나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암릉 막바지에도 10~30m에 이르는 급경사 데크들이 이어진다. 데크를 오르다 뒤돌아보면 충주호반에 떠 있는 듯한 구담봉 풍광이 일품이다. 마지막 암릉 데크를 땀흘려 올라가면 그 이후 정상까지 암릉은 없다. 여전히 급경사이긴 하나 흙길이다. 강건너 구담봉과 옥순봉에서는 아름드리 나무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은 토양이 좋은지 아름드리 나무 일색이다. 소나무는 물론 굴참나무까지 굵고 잘 뻗어 있다. 정상에 오르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전날 음주에 더위와 급경사가 작용한 탓이다.

제비봉의 아름드리 소나무들

 

제비봉 정상 전망데크에서 바라보는 구담봉과 옥순봉의 모습이 충주호와 어울리니 한폭의 동양화다. 전망데크 바로 앞에서 자라는 소나무 역시 충주호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충주호와 조화롭다. 북으로는 암골미를 자랑하는 가은산과 말목산 뒤로 금수산 정상이 하늘금을 이룬다. 동으로는 백두대간을 떠받치고 있는 소백산 줄기가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고, 남으로는 얼음골 건너로 사봉이 마주보인다.

얼음골 방향의 하산로는 조망이 없다는 게 단점이다. 나무 숲에 가려 하늘이 막혀있어 내려가는데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데크를 설치하는 중인데 그 작업이 모두 끝나면 모를까 그 전에 얼음골 방향은 비추(非推)다. 결론적으로 제비봉 자체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으나 충주호와 주변의 산과 봉들을 바라보는 조망은 그렇게 멋질 수 없다. 조망을 위해 존재하는 봉이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아름드리 소나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품이다. 하산 후 희용에게 물었다. 구담봉·옥순봉과 제비봉 모두 올라가 본 경험으로 한 곳을 추천한다면 어디가 좋으냐고 물으니 옥순봉·구담봉이라고 답한다. 나도 그랬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2시간, 정상에서 얼음골까지 1시간 25분 걸렸다. 합산하면 3시간 3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장회나루로 원점회귀해도 시간은 얼추 비슷하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장회나루와 그 뒤 제비봉

 

▲퇴계와 두향의 사랑 이야기

두향의 묘가 부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제비봉공원지킴터 앞 상점 주인에게 물으니 장회나루선착장 건너 산 아래에 있어 배를 타지 않고서는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나처럼 아쉬워하는 사람을 위해 단양군이 장회나루선착장 부근에 조성한 것이 ‘퇴계 이황·두향의 사랑이야기 공원’이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성된 공간에서 선비옷을 입은 퇴계는 등 뒤로 매화나무 가지를 숨기고 서서 여성을 내려다보고 있고 절경을 등지고 바닥에 앉은 두향은 고개를 숙이고 거문고를 타고 있다.

퇴계와 두향의 사랑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74년부터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정비석의 소설 ‘명기열전’을 통해서이다. 정비석은 ‘명기열전’ 제21화 ‘단양기 두향’ 부분에서 이황과 두향의 이야기를 다뤘다. 정비석은 단양 지방과 퇴계 이황 후손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토대로 이 사랑이야기를 엮었다고 했다. ‘야사’에 살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의 창작은 다른 작가들에게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다. 최인호가 2008년 발표한 ‘유림’은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 삶을 소재로 한 대하소설인데, 여기에도 ‘명기열전’ 중 ‘단양기 두향’ 내용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 2015년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8 : 남한강편’에도 소개되어 있다.

유람선에서 보이는 두향의 묘

 

그렇다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퇴계학 연구자인 정석태 부산대점필재연구원 교수가 2010년 발표한 논문 ‘퇴계 이황 이야기의 서사화 양상’을 보면, 두향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후기 시 몇 편에 등장한다. 두향이 죽기 직전 “강선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내용인데, 퇴계와 관련된 내용은 어떤 곳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생몰연도조차 밝혀진 적이 없어 두향이 과연 퇴계와 동시대에 살았는지 조차 확인할 수 없다고 정 교수는 지적한다. 정석태 교수는 “퇴계 이황과 두향의 사랑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한다.

그러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 시대에 역사적 사실만이 인정을 받아야 하고 픽션은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중에게 감동과 화젯거리를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옥순봉·구담봉 다녀왔다면 관광유람선은 필수

 

옥순봉과 구담봉에서 주변 호수와 암릉·암벽 등 온갖 절경에 감탄하면서 하산했으나 호수에서 바라본 두 봉의 생김새를 알지 못해 격화소양(隔靴搔癢) 즉 신을 신고 가려운 발을 긁는 것처럼 성이 차지 않았다. 결국 두 봉의 전모를 확인하려면 호수 위를 오가는 관광유람선을 타야하는데 그날은 일정 때문에 아쉬움만 가득한 상태에서 현지를 떠나야 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옥순봉 절벽

 

관광유람선을 탈 기회가 찾아온 것은 나를 포함한 4형제가 옥순봉·구담봉을 찾아간 2020년 10월 17일이었다. 유람선이나 여객선이 드나드는 나루터(선착장)는 충주호에 여러곳 있으나 그중 최고 나루터는 수려한 산세와 기암기석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장회나루터(장회유람선선착장)다. 옥순봉·구담봉과 가까이 있는데다 제비봉도 장회나루터 바로 뒤에 우뚝 서 있어 세 봉우리에서 접근성이 뛰어나다.

장회나루터에서 출항하는 유람선은 1시간 정도 호수 주변을 둘러보는데 주변 산세와 암릉·암벽이 워낙에 인상적이어서 9000원의 요금이 결코 아깝지 않다. 유람선에서 바라보이는 명소는 옥순봉과 구담봉은 물론 가은산과 말목산 그리고 제비봉, 투구봉, 둥지봉이다. 그 사이사이에 불쑥 튀어나온 각기 다른 모습의 대형 기암괴석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람선 위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황홀하기 까지 하다. 호변에 잘 관리되고 있는 두향의 묘지까지 가까이서 살필 수 있다.

유람선은 옥순대교 아래를 지나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나루터 방향으로 U턴하는데 옥순봉 전망터에서 내려다보는 맛과 호수에서 바라보는 맛이 다르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유람선 가이드가 지나가는 대형 선박을 보고 “저 배는 우리처럼 가이드의 설명이 있는 유람선이 아니고 나루터와 나루터를 오가는 여객선”이라며 “유람선을 타야지 여객선을 타면 심심하다”고 안내하는데 맞는 말이다.

참고로 충주호는 3개의 시·군에 걸쳐 있다. 충주호라고 해서 충주시가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할 것 같지만 호수 전체의 30%만 충주에 속해 있을 뿐 제천이 60%로 가장 넓다. 단양은 10%다. 해서 명칭도 각기 다르게 부르고 있다. 충주는 충주호, 제천은 군내(郡內) 청풍면에서 따 청풍호, 단양은 그냥 남한강이라 부른다. 산행기를 끝내면서 음식점 한 곳을 소개한다. 귀가 중 아무 생각없이 찾아간 송어집이 있는데 값도 적당하고 맛도 좋다. 음식점 이름은 ‘청풍 황금송어’이고 전화번호는 (043)652-4769이다. 주소는 제천시 금성면 청풍호로 39길 25이니 지나갈 때 꼭 한 번 들러볼 것을 권한다.

중주호 유람선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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