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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사이 세 번이나 시도한 경기도 가평 석룡산 등정… 산세는 수려하지 않으나 조무락계곡이 있어 빛나는 곳

↑ 석룡산 능선에서 바라본 화악산 상봉과 중봉. 상봉에는 군사시설이 있어 접근금지다.

 

by 김지지

 

■세 번의 시도

요즘 들어 자주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우리 산하에도 외국 못지않게 멋진 산과 계곡이 많다는 것이다. 대도시와 가까운 곳이든 오지이든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고 안내도 충실하다. 그러니 훌쩍 떠나고 싶은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2019년은 잊지 못할 해다. 내 생에 가장 많이 산을 찾은 해가 2019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서 차로 2시간이나 걸리고 명산도 아닌 산을 1년 사이 세 번이나 다녀온 곳이 있다. 경기 가평의 석룡산이다. 어쩌다 세 번이나 가게 되었을까. 먼저 2월 3일 석룡산행. 나를 포함한 고교 동기 6명이 떠난 그날의 당초 산행지는 경기 가평과 강원 화천 경계에 있는 화악산이었다. 그러나 화악산의 들머리로 삼은 화악터널로 올라가는 고갯길이 살짝 빙판길로 변해 인근의 석룡산으로 산행지를 변경했다. 거세지는 않았으나 우비를 입어야 하는 비를 맞으며 조무락계곡 옆길을 걷는데 계곡물은 온통 얼어 빙판길이고 계속 내리는 비로 계곡에도 물이 불어나 위험하다 판단해서 2시간만에 되돌아 내려온 것이 석룡산과의 첫 만남이었다.

석룡산과 화악산 주변 지도

 

두 번째 산행은 고교 동기들의 산악모임인 ‘금동산악회’ 대원들과 함께 떠난 7월 20일이었다. 그러나 그날 역시 인원이 32명이나 되는데다 친구들의 산행 수준도 들쑥날쑥이어서 결국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중간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 내려왔으니 아쉬움의 연속이다. 그후 석룡산을 생각하면 계속 찜찜해 언제고 한번은 정상에 올라야 했다. 그래서 다시 결행한 12월 14일의 산행에는 박창민, 박영민, 양재복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참여했다.

조무락산장을 지나 왼쪽으로 올라가는 초입길

 

■석룡산과 조무락계곡은 한 몸

석룡산(1147m)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있다. 석룡산(石龍山)이라는 이름에 돌과 용이 들어있으니 뭔가 거칠고 험한 바위산일 것 같으나 사실은 육산이고 무개성의 산이다. 수려하지 않고 기암괴봉도 없고 정상의 조망도 내세울만한 곳은 아니다.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화악산의 한 봉우리라 해도 억울해 하지 않을 정도다. 가평군에서도 명지산, 축령산, 유명산, 운악산만 명산에 포함할 뿐 석룡산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름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석룡산과 화악산 중봉 능선 사이 숲에 깊게 형성된 조무락계곡 덕분이다. 계곡 위로는 석룡산과 화악산을 경계짓는 방림고개(쉬밀고개)가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다. 계곡의 명칭은 숲이 울창해서 산새들이 조무락(재잘) 거린다고 해서, 또는 새들이 춤추고 즐거워한다고 해서 ‘조무락(鳥舞樂)’이라고 한단다. 6㎞나 되는 계곡에는 폭포와 담(潭), 소(沼)가 줄줄이 이어지고 각각의 소마다 암석과 수목에 둘러싸여 있다.

조무락계곡 (출처 가평군청)

 

■등산길

초입은 삼팔교다. 북위38도선이 지나는 곳에 있어서 삼팔교다. 그곳에서 1.3㎞ 거리의 호젓한 비포장길을 걸어 올라가면 조무락산장이 나타나고 산장을 지나면 갈림길이다. 그곳에서 왼쪽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안내도상 제2코스)과 조무락계곡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제3코스)로 나뉜다. 우리는 제2코스로 올라가 제3코스로 내려올 예정이다. 안내도상 제1코스는 4.6㎞, 제2코스는 4.9㎞, 제3코스는 5.9㎞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이 그러하듯 이 거리는 등산길 곳곳에 설치된 방향판의 거리와는 조금씩 다르다. 국립공원의 산 중에도 거리가 다른 곳이 많아 산에 올라갈 때마다 우리의 수준을 보는 듯 해 답답하다. 우리는 삼팔교에서 조무락산장까지 차를 몰고 가 그곳을 들머리로 삼았기 때문에 안내도에 표시된 거리보다 1.3㎞ 짧았다.

삼팔교 초입에 만들어놓은 지도

 

새벽까지 약간의 눈이 내려 곳곳에 눈이 쌓여있다. 나로서는 올해 첫눈을 석룡산에서 만난 셈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데도 종처럼 능선길이 나타나지 않다가 조무락산장 기준 1.2㎞ 지점에서 임도를 만났다. 임도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있다. 수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꽃 산행이다.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여 있어 상고대 같다.

임도를 지나 능선까지 가는 길은 가평의 자랑 잣나무 군락지다. 임도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 약간 복잡하고 임도도 2개나 되므로 무작정 임도를 따라가기보다는 주변의 리본 등을 잘 살펴야한다. 눈비가 온다는 예보탓인지 출발부터 하산 때까지 등산객을 1명도 만나지 못했다. 다만 눈위에 발자국 하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 앞에 1명은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 발자국을 따라가니 길을 잃을 염려가 사라졌다.

조선시대 이양연(1771~1853)의 시 ‘야설(野雪, 들판의 눈)’이 떠올랐다. 백범 김구가 즐겨 읊고 김대중 대통령도 애호하던 시 내용은 이렇다. “눈 많이 내린 산야를 걸으려면/ 어지럽히지 말고 바르게 걸어야 한다/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은/ 반드시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가 된다(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跡 遂作後人程)”

 

수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꽃 산행

또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자 마침내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멀리 오른쪽으로 눈 덮인 화악산 상봉(1468m)과 중봉(1446m)이, 왼쪽으로는 도마봉(883m)이 눈모자를 쓰고 있다. 925m봉을 지나면 나타나는 안부 쉼터에 제법 큰 참나무가 버티고 있다. 보통은 이 정도 높이라면 나무들의 키가 작은데 석룡산의 나무들은 전반적으로 거목이고 큰 편이다. “주변 고봉들이 바람을 막아줘서 그런 것 같다”고 창민이 한마디한다.

도마봉

 

정상을 향해 가던 중 북위 38도선과 가장 근접한 북위 38.146도를 가리키는 방향표시목이 보이자 한 친구가 “원래 그은 것은 39선이었는데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38도로 바꾸었다”며 미국 때문에 영토가 좁아졌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 산에서 38선과 가장 관련이 깊은 산은 화악산이다. 전남 여수에서 북한 중강진까지 이어지는 경도 127도 30분과 북위 38선을 교차하면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이 화악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악산은 한반도의 정 중앙이다. 다만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있어 중봉이 한반도 중심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38선이 어떻게 획정되었는지를 알아본다.

화악산 중봉 정상석

 

■38선은 어떻게 그어졌나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한 것은 1945년 8월 15일이다. 우리의 해방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하기도 전인 8월 8일 소련은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파죽지세로 일본의 점령지인 만주로 쳐들어갔다. 일본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정신을 못차릴 때였다.

미국으로서는 조속한 종전을 위해 오래전부터 소련의 대일 참전을 요청해온 터라 소련의 참전을 반대할 입장이 아니었다. 일본의 항복 시점을 정확히 알았더라면 소련에 참전을 요청하지 않았겠지만 아직 일본은 항복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원했던 참전이지만 막상 소련이 속전속결로 남하하자 미국으로서는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었다. 소련이 일본까지야 넘보지는 않겠지만 한반도가 문제였다. 과거 막연히 4개국 신탁통치안을 합의만 했지 구체적인 세부 조항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초조해진 미국은 소련의 남하 저지선이 필요했다. 그래서 실무급 대령들이 부랴부랴 38선을 남북 경계선으로 그은 것은 8월 11일 새벽이었다. 당시 미국의 전략가들은 2개 항구(인천과 부산)가 미국 지역에 포함되어야 하고 서울 바로 북쪽에 선을 그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정된 선이 38선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38선을 승인하자 8월 11일 미 태령양사령부가 오키나와 주둔 미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 중장에게 “38도선 이남을 접수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24군단이 아직 한반도에 도착도 하기 전에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미국은 부랴부랴 38도선을 경계로 남에서는 미군이 북에서는 소련군이 항복을 받는다는 ‘일반명령 제1호’를 스탈린에게 통고했다. 스탈린이 이의를 달지 않음으로써 38도선은 남북의 경계선으로 확정되었다. 만일 소련 군대가 일반명령 제1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남하했다면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 조선의 최남단까지 장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련으로서는 세계 유일의 원자탄 보유국인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미국이 일본의 사할린과 쿠릴 열도의 영유를 소련에 허용한 마당에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이처럼 38선은 미소 양국의 군사편의주의의 산물이었으나 당시 식민지 한국에는 선택권이 없었다.

38선 표시

 

■정상으로

정상이 가까워지자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바위산이 기다린다. 석룡산은 전반적으로 흙산이나 이처럼 정상 부근에는 바위가 곳곳에서 버티고 있다. 곧 정상이라고 생각해 낑낑대고 올라갔으나 정상(1147m)이 아니라 서봉(1143m)이다. 그곳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다시 한참을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한다. 막바지 산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눈이 제법 쌓인데다 두툼한 겨울바지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구입 후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망가진 아이젠도 힘듦에 한몫했다.

과거 사용한 아이젠은 아주 심플해서 10년 이상을 사용했는데 새로 구입한 아이젠은 지면에 닿는 바닥의 쇠조각이 많아 한쪽이 쉽게 망가졌다. 아이젠은 심플한 것이 좋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정상은 싱거웠다. 정상 표지석이 없으면 정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다. 정상에는 바위가 있긴 하지만 우뚝함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은 겨울이라 사방이 트였는데도 화악산의 상봉(1468m)은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계절에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한결같은 불만도 정상 주변이 수림으로 둘러싸여 시원한 조망이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능선길도 마찬가지여서 수림 때문에 몇 군데 조망이 열리는 곳 빼고는 조망이 좋지 않다.

정상에서 바라본 하늘.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아름답다.

 

영민이 이런저런 글귀를 적어온 스케치북 종이를 손에 쥔 채 정상석을 배경으로 차례차례 사진을 찍는다. 친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데 새해인사, 생일축하 등이다. 특히 생일축하 메시지를 들고 사진을 찍을 때는 겨울용, 가을용, 봄용으로 나눠 찍었다. 이를테면 겨울용으로는 점퍼를 입고 가을용으로는 점퍼를 벗고 봄용으로는 셔츠를 걷어올렸다. 그 사진을 생일을 맞은 친구들에게 월별로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전에 한 친구가 중병에 걸려 입원했을 때 영민이 산에서 찍은 “친구야 어서 일어나라”는 메시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니 마음이 약해졌을 그 친구가 펑펑울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이런 영민에게 재복이 “새해에는 영민의 경손함을 50%라도 닯겠다”고 하자 창민이 “너무 높은 기대치”라며 놀린다. 영민은 그런 친구다.

정상에서 글귀를 손에 들고 포즈 취한 영민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햇볕을 받아 녹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녹음하거나 기억에 담아두진 못했으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각사각”으로 떠오른다.

 

■원점회귀 하산

하산길은 조무락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제3코스다. 전체적인 시간은 이랬다. 조무락산장(9시 54분) → 임도(11시 10분) → 925m봉 쉼터(11시 49분) → 정상(1시 10분) → 방림고개(1시 42분) → 중간 점심 → 중봉 갈림길(3시 18분) → 복호동폭포(3시 56분) → 조무락산장(4시 30분)이다. 총 6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그 사이 고도는 325m에서 1147m를 오르내렸다. 등산거리는 10㎞ 정도다.

그러나 하산길 코스는 조무락계곡으로 올라오는 등산객을 생각해 등산하는 식으로 바꿔 쓴다. 이 코스의 초입 역시 삼팔교다. 조무락산장에서 직진하면 조무락계곡이다. 산장에서 30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 50m 지점에 복호동폭포가 있다. 수량이 많을 때 모습이 호랑이가 엎드려있는 것 같다고 해서 복호동(伏虎洞)이다. 발원지는 오른쪽의 화악산이다. 다만 이름과 달리 여성미가 돋보인다.

복호동 폭포. 왼쪽은 여름, 오른쪽은 겨울 모습이다.

 

좀더 올라가면 물줄기가 양쪽 두 갈래로 낙수되는 폭포 모습이 두 마리 용의 형상을 하고 있 는 쌍룡폭포가 있다는데 나는 그동안 세 번이나 지나갔는데도 쌍룡폭포를 알아채지 못했다. 복호동 폭포에서 30분 정도 오르면 중봉 갈림길이다. 삼팔교에서 4.1㎞ 지점이다. 석룡산 정상까지는 1.8㎞이고 화악산 중봉까지는 1,9㎞다.

한동안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왼쪽 방림고개로 올라가는 1㎞ 정도의 급경사길이 나온다. 가을이라면 단풍나무 숲이 아름다운 곳이다. 땀좀 흘리겠으나 흙산이어서 쉬엄쉬엄 올라가면 무난하다. 방림고개 오른쪽으로는 화악산 상봉으로 이어지지만 상봉 지역이 군사통제구간이어서 그 길을 이용할 수는 없다. 왼쪽 길은 정상까지 가는 500m 정도의 길이다. 능선은 편안한 숲길이다.

방림고개. 직진하면 화악산 상봉이고 오른쪽이 조무락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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