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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의 일본 산책] 규슈 후쿠오카의 ‘기온 야마가사 마츠리(축제)’에서 ‘야마가사(山笠)’는 13세기 전염병 퇴치에 사용한 ‘가마’에서 기원했다는 설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한 가야인들의 절규였다는 주장도 있어

↑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오이야마(追い山)’ 참가자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일본의 마츠리(祭り)는 우리의 축제에 해당된다. 축제가 이토록 많은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본은 마츠리의 천국이다.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30만 개가 넘는 마츠리가 있다. 365일 1년 내내 마츠리 속에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츠리는 주로 신사(神社)에서 개최되는 행사로서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 신(神)과 인간과의 교감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마츠리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요소인 신을 태우는 가마, 수레, 화려한 장식, 흥을 돋우는 음악, 북소리 등을 보면 주술적인 인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인 마츠리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변질돼 최근에는 자발적인 주민 참여 하에 대중적인 민속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일본의 3대 마츠리를 꼽으라면 도쿄의 ‘간다 마츠리(神田祭)’, 오사카의 ‘텐진 마츠리(天神祭)’, 교토의 ‘기온 마츠리(祇園祭)’를 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하카다(博多, 후쿠오카의 옛 지명)에서 열리는 ‘기온 야마가사 마츠리(祇園山笠祭り)’를 가장 좋아한다. 남성적이면서 열기가 넘치는 분위기가 자못 흥미롭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3대 마츠리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후쿠오카의 ‘기온 야마가사 마츠리’

최근 일본 친구의 초청으로 이 ‘기온 야마가사’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온천장에서 입는 유카다(浴衣) 같은 마츠리 복장(法被)을 하고 호텔 로비에 나타났다. 나의 눈이 동그래지자 껄껄 웃으면서 “마츠리 기간 중에는 이런 복장으로 어디를 다녀도 괜찮다”고 했다. 나 말고도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맞이에 동분서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마치 ‘야마가사(山笠)’의 홍보대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사에 열정적인 그가 너무 좋았다.

야마가사(山笠)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778년 전인 서기 1241년(가마쿠라·鎌倉 時代)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하카다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그러자 중국 송(宋)나라에서 귀국한 조텐지(承天寺)의 쇼이치코쿠시(聖一國師)가 ‘세가키다나(施餓鬼棚)’라는 가마를 타고 감로수를 뿌리고 다니면서 전염병을 물리쳤다. 그 가마가 오늘날 ‘야마가사(山笠·신을 모신 장식가마)’ 형태로 발전하였다는 설이 있다.

조텐지(承天寺)

 

다분히 미신적인 요소가 많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세계적인 기술, 경제의 선진국이면서도 이런 전설적인 이야기를 사실로 믿는다. 다시 말하면 신을 모시는 정성이 대단한 것이다. 최첨단 IT연구소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면서도 지신제(地神祭)에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이라이트는 가마를 메고 서로 쫓아가며 질주하는 ‘오이야마(追い山)’

후쿠오카에는 7월 1일부터 도심 곳곳에 장식용 축제 가마인 ‘카자리 야마카사’가 설치되고 갖가지 의식이 거행되지만 ‘야마가사’의 하이라이트는 7월 15일 새벽에 시작되는, 야마를 메고 서로 쫓아가며 질주하는 ‘오이야마(追い山)’다.

장식용 축제 가마인 ‘카자리 야마카사’

 

그날은 참가자는 물론이고 구경꾼들까지 거의 밤을 지새운다. 새벽 2시부터는 교통도 차단되고 신사 주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인원이 40만~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새벽 2시가 막 지나자 ‘오이야마(追い山)’의 전사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신사(神社)로 모여들었다. 어떤 팀은 “오이사! 오이사!”하는 소릴 지르고, 어떤 팀은 “왓쇼이! 왓쇼이!”를 외친다. 여명의 순간. “둥―” 북소리가 울리자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과 함께 ‘오이야마’의 맹렬 무리들이 신사의 경내로 돌진했다.

신사 경내로 질주하는 ‘오이야마’

 

이들이 경내를 도는 시간은 30초 전후다. 전쟁터를 나서는 장수들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경내를 돈다. 안내자는 각 팀별로 경내를 도는 시간을 체크하여 발표한다. 그때마다 약 2,500여명의 본부석 관람객들은 박수를 친다. 이어서 이들은 5분 간격으로 목적지를 향하여 줄달음친다.

‘오이야마’ 때의 가마 무게는 약 1톤이다. 6명의 건장한 남자가 올라타고 이를 매고 뛰는 사람은 약 30명 쯤 된다. 이들의 뒤에는 수백 명의 남자들이 뒤를 따르면서 응원을 한다. 이들이 달리는 거리는 5㎞. 대체로 30분에 주파한다.

 

778년 동안 이어온 민속축제

이들은 무엇 때문에 죽을 각오로 뛸까? 자기 동네의 명예를 짊어지고 뛴다. 어깨의 피부가 벗겨져 벌건 피가 흐르기도 하고,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 서일본신문의 한 기자는 이를 ‘농밀(濃密)한 인간관계의 결정체’라고 표현했다. 단결심, 협동심, 인내심이 한데 어울려 ‘화합’이라는 꽃을 피우고 하카다의 ‘자존심’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그들은 이러한 전통을 778년 동안 이어왔다.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시원한 청량제 같은 민속 축제를 스스로 가꾸어 온 것이다. 우승 상금은 없다. 단지 명예뿐이다. 우승의 영광이라면 구시다신사(櫛田神社) 경내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1분 동안 ‘하카다 축하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축하가 경사스럽네. 와카마쓰(若松)여. 아카마쓰여. 줄기도 돋보이네 이파리도 무성하네… 당신은 100까지, 나는 99까지 우리 다함께 살아가자 백발이 될때까지…>

구시다신사(櫛田神社)

 

“오이사! 오이사!”, “왓쇼이! 왓쇼이!” 외치는 참가자들의 함성이 낯설지 않아

고대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박병식 씨는 ‘일본어의 비극’(1987년, 평민사)이라는 책에서 야마가사(山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린 바 있다.

“가야족의 일본 상륙은 기원전 500년 무렵이다. 규슈(九州) 북부지방에는 ‘야마’가 붙은 지명이 많다. 현 고령(경북) 지방에 해당되는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이 가야국 최초의 맹주였다. 일본인들은 미오사마국을 ‘미오 야마코쿠’라고 한다. ‘야마가사(山笠)’는 ‘야마에 가자’라는 우리말에서 [ㅈ]이 [ㅅ]으로 변화되어 생긴 말이다. ‘야마가사’는 고향을 그리는 가야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말로서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절절한 염원을 토로한 절규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오이사! 오이사!”, “왓쇼이! 왓쇼이!“라고 외치는 하카다인들의 함성이 낯설지 않았다.

박병식 저 ‘일본어의 비극'(1987년 평민사)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대우건설과 팬택에서 30여 년 동안 홍보업무를 했다. 2008년 홍보컨설팅회사 JSI 파트너스를 창업했다. 폭넓은 일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엮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 <현해탄 파고(波高) 저편에> <홍보는 위기관리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장편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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