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변산반도 국립공원] 1년 사이 두 번 오른 전북 부안의 내변산… 내소사~관음봉 구간(5㎞)은 산세 만끽하는 맞춤길, 남여치~내소사 구간(9㎞)은 명소 탐방길이자 본격 산행길

↑  내소사로 하산하는 암릉에서 줄포만과 곰소염전 지대를 바라보고 있는 아내와 아들. 뿌연 줄포만 건너편이 전북 고창이다.

 

by 김지지

 

내소사~관음봉~세봉~내소사 : 5㎞
원암통제소~재백이고개~관음봉~세봉~내소사일주문 : 6.5㎞
남여치~쌍선봉~월명암~직소폭포~관음봉삼거리~내소사 : 8.8㎞

 

이 글은 전국의 등산객들이 전북 부안의 내변산을 산행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핵심 산행길 두 곳을 둘러본 산행기다. 2개 코스는 ▲내소사~관음봉~세봉~내소사 원점회귀 코스 5.5㎞ ▲남여치~쌍선봉~월명암~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내소사 코스 8.8㎞다.

 

■변산(邊山)은 우리나라 십승지(十勝地) 중 한 곳

전북 부안군의 변산(邊山)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좁은 의미의 변산은 전북 부안군 5개면(面) 중 하나인 변산면의 행정 지명이고 넓은 의미의 변산은 변산반도 대부분을 포괄하는 국립공원 일대를 통칭한다. 변산반도는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뫼 산(山)자가 있어 산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변산반도국립공원에는 변산 이름의 산이 없다. 그래서 편의상 변산반도 내부를 타원형으로 감싼 산줄기 안쪽의 산악지대를 내변산, 그 바깥 바다 방면을 외변산으로 구분한다.

변산은 ‘정감록’에서 소개한 우리나라 십승지(十勝地) 가운데 한 곳이다. 십승지란 조선시대에 난리를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여 곳의 장소를 말한다. 풍기의 금계촌, 안동의 춘양면, 보은의 속리산, 운봉의 두류산, 예천의 금당동, 공주의 유구와 마곡, 영월의 정동상류, 무주의 무풍동, 성주의 만수동, 부안의 변산이다. 이 중 바다를 낀 곳은 변산이 유일하다.

 

■주요 산행길은 네 곳

내변산에는 봉우리들이 많다. 의상봉(508m), 신선봉(488m), 갈마봉(484m), 쌍선봉(459m), 관음봉(424m), 세봉(402m), 선인봉(264m) 등이다. 이중 내소사를 품고 있는 관음봉이 가장 유명하고 의상봉이 가장 높다. 다만 의상봉은 군 시설 보호를 이유로 접근 금지다. 내변산에는 유명 사찰과 자연 명승지가 많아 이 봉우리들과 연계한 산행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내변산 산행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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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들머리는 네 곳이다. 북서쪽의 남여치 통제소와 내변산 탐방지원센터, 남동쪽의 원암 통제소와 내소사 탐방지원센터다. 그중 인기 코스는 ▲내소사~관음봉~세봉~내소사 원점회귀 코스 ▲남여치~쌍선봉~월명암~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내소사 코스 두 곳이다. 내소사 원점회귀 코스는 거리가 5.5㎞이고 남여치~내소사 코스는 9㎞ 정도다. 각자의 체력에 맞게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내소사 원점회귀 코스는 짧은 시간에 내변산의 심장과도 같은 내소사를 둘러보고 관음봉에 올라가 멀리 바다까지 바라보며 내변산의 산세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코스다. 3시간 소요된다. 혹 힘들다 싶으면 관음봉 정상만 밟고, 올라갔던 길 그대로 내려오면 4㎞에 2시간 걸린다.

남여치~내소사 간 9㎞ 코스는 내변산의 핵심 명소를 두루 거치는 명소길이자 본격 산행 코스다. 약 5시간 소요된다. 단점은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출발지와 도착지가 달라 내소사 일주문 밖에서 택시를 불러 남여치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변산의 정수를 둘러보는 것이니 이만한 코스가 없다. 택시 요금은 3만원 정도다. 체력에 자신이 있는 등산객을 위한 코스로는 ▲남여치~관음봉~세봉~가마소를 거쳐서 내변산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오는 12㎞ 거리의 긴 코스도 있다.

가족·연인과 함께 내변산 일대를 가볍게 둘러볼 생각이면 내소사를 둘러본 뒤 차량으로 내변산탐방지원센터로 이동, 그곳에서 직소폭포까지 다녀오는 것도 방법이다. 왕복 2시간에 거리는 4.6㎞이나 비교적 평탄한 흙길과 숲길이어서 운동화를 신고 직소보, 선녀탕, 직소폭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내변산 구간별 난이도. 위는 원암~사자동 코스, 아래는 남여치~내소사 코스

 

■원암통제소~재백이고개~관음봉~세봉~내소사일주문 코스 6.5㎞

 

고교 동창생 규철 상화 선근 영민 정형 창민 창화 7명이서 내변산에 오른 것은 2019년 4월 6일이다. 당초 계획은 내소사~관음봉 왕복 코스 4㎞였다. 이 코스를 정한 이유는 누구도 관음봉에 올라간 적이 없어 난이도가 어떤지를 알지 못하고 서울을 떠나 현지 도착 시간이 오후 3시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메고 올라간 7개 배낭

 

오후 3시 내소사 주차장에 주차를 끝내고 내소사 일주문을 향해 걷는데 음식점 사장인 듯한 남성이 말을 걸어온다. 내소사에서 관음봉으로 올라가 원점회귀하는 시간이나 인근의 원암통제소로 올라가 관음봉을 거쳐 내소사로 내려오는 시간이나 별 차이가 없으니 원암통제소로 올라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 좋고 내변산의 더 많은 곳을 감상할 수 있으니 좋지않느냐는 것이다.

음식점 사장이 우리에게 새로운 코스를 알려준 것은 우리가 산행을 마친 뒤 그의 친절을 고맙게 생각할테니 하산길에 지나게 될 자신의 음식점을 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 적극적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솔깃했다.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르니 내변산의 더 많은 속살을 구경할 수 있고 입장료 2만 1000원(1인당 3000원)도 아낄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해서 음식점 사장이 알려준 대로 도보로 20분 거리의 원암통제소로 방향을 틀었다. 하산길에는 그 음식점에 들러 목을 축일 생각이었다.

영민이가 그린 내변산 지도

 

주왕산 주봉에서 바라본 암봉과 흡사

우리는 원암통제소를 들머리 삼아 3시 30분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호젓하다. 소나무들이 산길 양옆에서 우리를 호위하듯 쭉쭉뻗어 있고 새색시 단장을 한 연분홍 진달래는 수줍은 듯 살랑살랑 춤을 추며 우리를 반겨맞는다. 기온은 20도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미세먼지가 오늘도 극성이다. 다행히 시야가 어느정도 틔어있어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같다.

내변산 재백이고개를 지나

 

원암통제소에서 1.2㎞ 길을 30분 걸려 올라가니 재백이고개가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1.5㎞ 정도 가면 남여치로 이어지는 직소폭포이고 오른쪽으로 치고 올라가면 관음봉이다. 재백이고개에서 관음봉삼거리까지는 0.9㎞이고 경사가 가파른 편이지만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큰바위얼굴들을 감상하면서 걷기 때문인지 지루하지 않고 걷는 맛도 쏠쏠하다. 거대한 바위로 이뤄진 봉우리들도 경북 청송의 주왕산 주봉에서 바라본 계곡 건너편의 장군봉, 연화봉, 병풍바위와 흡사하다. 암릉길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

관음봉삼거리에서 0.6㎞ 거리를 오르내리니 비로소 관음봉(424m) 정상이다. 시간은 오후 5시를 가리킨다. 관음봉에서 내려다보는 내소사가 아늑하고 남쪽으로 펼쳐진 줄포만과 곰소항의 풍광이 시원하다. 멀리 줄지어 선 연봉들은 첩첩산중 느낌을 준다. 관음봉 정상의 쉼터도 목재로 잘 만들어 놓아 쉬어가기에 적격이다. 다만 정상표지석 주변에 걸어놓은 ‘산불조심’ ‘흡연금지’ 등의 알록달록한 천들이 자연의 느낌을 방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의 마지막에서 소개한다.

 

멀리 산 뒤로 힘없이 넘어가는 저녁해 모습이 가장 멋져

정상에서 충분히 쉬고 사진을 찍은 뒤 20~30분 걸어 세봉(402.5m)에 닿았는데 막상 가보니 싱거웠다. 나름 규모를 갖춘 단일봉을 기대했으나 ‘세봉’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흔하디 흔한 바위였다. 그 옹색한 바위와 그 옆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가 세봉의 전부였다. 세봉에서 하산길 능선을 타고 걷다보면 주변이 확 트이는 암부가 연이어 나타난다. 그중 가장 멋진 장면은 멀리 산 뒤로 힘없이 넘어가는 저녁해 모습이었다. 그 순간은 화투장의 ‘솔광’과 흡사하다고 생각해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내려와 ‘솔광’과 비교해보니 구도 자체가 많이 달랐다.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서둘러 하산하고 있을 때 내소사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가 고즈넉한 저녁 분위기에 운치를 더해준다. 내소사 일주문 옆을 지나는데 시계는 오후 7시 16분을 가리킨다. 6.5㎞ 정도를 산행하는데 3시간 40분 정도 걸린 셈이다. 20여년 전 다녀와 기억에도 흐릿한 내소사를 둘러보지 못하고 친절을 베푼 사장의 음식점도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이미 날이 저문데다 숙소가 채석강 부근에 있어 나중을 기약하고 서둘러 내변산과 작별을 고했다.

내소사 전경

 

■남여치~쌍선봉~월명암~직소폭포~관음봉삼거리~내소사 9㎞

 

원암~관음봉~세봉~내소사 코스를 다녀온 뒤 전문산악지 ‘山’지에 소개된 내변산 산행기를 읽는데 현지 토박이들이 최고로 치는 코스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여치를 출발해 쌍선봉을 거쳐 월명암에 들렀다가 직소폭포 보고 관음봉으로 올라가 내소사로 내려오는 9㎞ 거리의 코스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되니 자꾸 가고 싶어진다.

결국 현지인들이 내변산 최고 코스로 꼽는다는 길을 찾아 2020년 5월 23일 집을 떠났다. 이번에는 아내와 아들이 동행했다. 아내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산행을 함께 하지만 아들과는 2017년 6월 북한산 등정 후 3년 만이다. 첫날엔 내변산에 오르고 둘째날엔 논산쪽 대둔산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내변산이 힘들었는지 아들의 거부로 다음날 산행은 포기했다. 아들은 20대 후반 나이에다 최근 운동을 열심히 해서 이 정도 산행은 무난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20대 젊음과 산행 경험은 별개인 것 같다. 또하나 분명한 것은 아들이 동행하니 아내 표정이 연신 싱글벙글이라는 것이다.

서울을 출발 변산반도국립공원의 남여치 주차장에 도착하니 11시 20분이다. 주차장은 10여대 정도만 주차할 수 있어 아담하다. 사방이 숲이어서 아늑하고 가게나 장사치가 없어 한적하다. 남여치는 옛날 부안현감처럼 높은 분들이 남여(藍輿)를 타고 직소폭포 구경하러 오다가 쉬던 고개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남여는 벼슬아치들이 타던 지붕 없는 가마를 말한다.

냠여치 들머리

 

현지 토박이들이 최고로 꼽는 코스

탐방로에 들어서 작은 개울 하나를 건너자 오르막이 시작되고 바로 우거진 숲길이 펼쳐진다. 5월 말이 되니 어느덧 나무도 연초록의 앳된 티를 벗고 성숙하고 진한 초록으로 갈아입었다. 국립공원답게 길가 나무마다 굴참나무, 소사나무, 졸참나무 등 팻말을 매달아놓았다. 나무 공부를 하려고 일일이 사진을 찍어놓았으나 식물 공부는 여전히 내게 큰 숙제다.

남여치에서 쌍선봉(459m)으로 올라가는 길은 오름길의 연속이지만 크게 힘들지는 않다. 숲은 조망이 없을 정도로 우거지나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없다. 과거 변산반도는 나무가 무성했으나 해방 전후로 피폐해졌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말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많은 수목이 벌채되고 해방 후에는 무허가 도벌이 극심해 아름드리 낙락장송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쌍선봉삼거리를 향해서

 

남여치에서 1.5㎞ 거리를 오르니 쌍선봉삼거리다. 삼거리인데도 남여치와 월명암 두 방향만을 가리키는 안내목 뿐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주변의 쌍선봉 방향을 안내하는 방향목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쌍선봉이 어디인지, 정상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한 채 월명암으로 내려가야 했다. 쌍선봉이 비지정탐방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을 찾아간 사람들의 글에 따르면 정상 조망이 좋아 산해절승의 절경이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진다고 한다. 월명암도 살짝 보인다고 한다.

월명암을 향해 가는데 어느 순간 능선 길이 막히고 왼쪽 옆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다. 능선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면 낙조대가 나오는데 이곳 역시 비지정탐방로다. 낙조대 역시 올라가 본 사람들의 글에 따르면 ‘대(垈)’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시원한 조망터는 아니고 육산 위에 바윗덩이 하나 얹혀 있는 모양이란다. 조망이 서해안 3대 일몰 감상지 중 하나로 꼽힌다는 평이 있지만 실제로 가보면 높이 자란 나무와 풀 때문에 시야가 탁 트이지 않아 서쪽 해변 일부만 볼 수 있을 정도란다. 내리막길을 지나 개울을 건너니 멀지 않은 곳에서 월명암(月明庵)이 반긴다.

 

▲월명암, 사방이 온통 초록

월명암은 쌍선봉 남쪽 기슭에 세워진 암자다. 법당 앞마당에 올라서자 큰 삽살개 한 마리가 배를 땅에 깔고 엎드려 멀뚱히 우리를 바라본다. 삶의 의욕이 없는건지 도통한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월명암의 예전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글에 따르면 예전엔 법당과 요사채 두 채만 소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불사를 일으키면서 대웅전과 몇 개의 전각이 새로 들어섰다며 규모는 커졌으나 품격은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암자 치곤 건물도 여러 채이고 규모도 큰 편이다. 내가 갔을 때도 한창 공사 중이었다.

월명암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사방이 온통 초록이다. 대웅전 앞 등 요사채마다 흰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흔히 보아온 대웅전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다. 변산에는 8경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안개 무(霧)자와 아지랑이 애(靄)자를 쓴 월명무애(月明霧靄)다. 어떤 느낌일까 상상이 가진 않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직소폭포, 내소사 저녁 종소리의 정경인 소사모종(蘇寺暮鐘),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낙조(西海落照) 등도 변산8경이다.

월명암 대웅전

 

월명암은 692년(신라 신문왕 12년)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설거사의 행적은 ‘부설전’이란 고소설에서 상세하게 전한다. 부설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불교소설로 월명암 소장본이 현재로서는 유일본이다. 월명암은 예부터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 중 하나로 알려졌다. 빼어난 경치와 땅 기운의 조화로 번뇌마저 끊어져 가라앉을 정도의 길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월명암 앞쪽에 내변산의 수려한 절경이 펼쳐있다.

 

▲직소보와 직소폭포

월명암을 지나면 한동안 완만하고 평탄한 산길이다. 곧 내리막길로 이어지는데 암릉 전망터가 곳곳에 있어 주변 산세를 바라보며 쉬어갈 것을 권한다. 멀리 산중호수인 직소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터도 있다. 월명암에서 자연보호헌장탑까지는 2.3㎞의 내리막길이다.

자연보호헌장탑 주변은 삼거리다. 남여치, 내변산탐방지원센터, 직소폭포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비교적 너른 평지에 자리 잡고 있고 옆으로는 개울이 흐른다. 쉬어가라고 나무 의자도 있다. 이곳에서부터 운동화를 신은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띤다. 북쪽으로 1.4㎞ 거리의 내변산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비교적 평탄한 길로 걸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목적지는 내변산 최고 절경을 자랑하는 직소보와 선녀탕을 지나 직소폭포까지다. 자연보호헌장탑에서 0.9㎞ 떨어진 직소폭포 쪽으로는 한동안 평지 숲이다. 짧은 완경사를 오르니 직소보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내변산 직소보

 

직소보는 직소폭포 계곡에 보를 세워 만든 산중호수다. 본래는 부안군민의 비상식수원으로 만들었으나 1996년 부안댐이 준공된 후에는 그대로 내버려두어 지금은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산중호수여서 물이 맑다. 직소보 뒤로 관음봉과 세봉이 철옹성처럼 솟구쳐 있다.

직소폭포에서 쏟아져 내려온 물줄기는 분옥담과 선녀탕을 지나 직소보로 모인다. 이후 봉래구곡을 지나 북쪽의 부안호로 흘러든다. 봉래구곡은 제1곡 대소, 제2곡 직소폭포, 제3곡 분옥담, 제4곡 선녀탕, 제5곡 봉래곡을 거쳐 제9곡 암지까지 아홉 곡의 명승을 2㎞에 걸쳐 흐른다. 직소보를 끼고 걷는 산행길이 호젓하다. 왼쪽으로는 호수 물이, 오른쪽으로는 초록 수림이다.

 

직소폭포는 내변산 최고의 경승

그렇게 가다보면 선녀탕, 분옥담, 직소폭포 순으로 나타난다. 선녀탕은 반석이 푹 파인 두 개의 둥근 소로 되어 있는데 선녀의 욕탕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선녀탕을 구경하고 경사진 짧은 산길을 넘어서면 직소폭포를 멀리서 감상할 수 있는 조망대에 닿는다.

직소폭포

 

직소폭포는 예로부터 내변산 최고의 승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직소폭포 물줄기는 분옥담과 선녀탕을 이루며 내변산의 골짜기를 형성한다. 직소폭포 주변의 암반은 화산 지역의 특성을 이루는데, 화산 폭발로 쏟아져 나온 여러 암석들이 퇴적된 뒤 빠르게 냉각되거나 수축되면서 만들어진다는 주상절리가 그것이다. 직소폭포 역시 주상절리 폭포다. 직소폭포는 멀리 떨어진 조망대에서 원경을 감상할 수 있고 폭포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지근 거리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폭포 상단의 옆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으니 세 가지 형태의 사진이 가능하다.

이번 산행이 각별했던 것은 소니사의 미러리스 카메라 ‘알파 6400’을 처음 사용했기 때문이다. 며칠전 누이가 생일을 축하한다며 선물한 고가의 카메라이다보니 조심스럽게 다루는데 카메라가 내게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 갖고 다닐만 하고 안경을 벗어야 피사체가 잘 보이는 스마트폰과 달리 카메라는 뷰파인더에 눈을 가까이 대니 피사체를 보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카메라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숙제인데 숙제를 잘 해내고 싶다.

직소폭포(왼쪽 아래), 분옥담계곡으로 표기된 직소보(중앙 상단), 분옥담, 선녀탕, 자연보호헌장탑 등이 표시되어 있다. (출처 네이버)
▲관음봉 지나 내소사로

직소폭포의 오른쪽 산길을 따라 폭포를 넘어서니 널찍하고 평탄한 흙길이 펼쳐진다. 하늘은 울창한 숲이 가리고 있고 길옆으로는 계곡 최상류의 물길이 직소폭포를 향해 흘러간다. 푹신푹신한 흙을 밟는 것은 그 자체로 휴식이다.

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다보면 직소폭포에서 1.5㎞ 떨어진 재백이고개 삼거리다. 여기서 곧장 가면 1.2㎞ 떨어진 원암통제소로 내려서고, 왼쪽 능선길을 따르면 1.5㎞ 거리의 관음봉으로 이어진다. 예정대로 왼쪽 길을 선택했다. 재백이고개를 지나자 길이 가파르다. 그러나 꾸역꾸역 오르다보면 수시로 줄포만과 곰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가 나타나 피곤함을 보상해준다.

드디어 관음봉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가면 내소사로 직접 내려가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관음봉과 세봉을 돌아 내소사 일주문으로 이어진다. 당초 계획은 관음봉삼거리에서 0.6㎞ 떨어진 관음봉에 올라갔다가 다시 관음봉삼거리로 되돌아와 내소사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당초 계획보다 1.2㎞를 더 산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힘들다며 바로 내려가겠다고 하고 아내는 체력은 괜찮으나 아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바로 하산하잔다.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로 하산하다가 암릉 구간에서 왼쪽 뒤를 돌아보면 보이지 않던 관음봉이 나타난다.

 

내소사 하산길, 한눈에 들어오는 내소사 전경이 일품

결국 내소사로 내려가는데 중간중간 암봉이 나타나 전망이 좋다. 특히 한눈에 들어오는 내소사 전경이 일품이다. 어느정도 내려가니 왼쪽 뒤로 관음봉이 갑자기 솟아오른 것처럼 고개를 내민다. 그렇게 급경사 1.2㎞를 내려가면 내소사다. 내변산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을 기준하면 남여치~내소사 구간 거리는 8.8㎞다. 남여치 출발 시간이 11시 20분이고 이곳 도착 시간이 18시이므로 대량 6시간 40분 걸린 셈이다. 평균 이상의 시간이 걸렸지만 3년만에 산에 오르는 아들이 완주했으니 순조로운 산행이었다.

관음봉에서 하산할 때 내려다보이는 내소사 전경

 

내소사를 두루 둘러보고 택시를 불러 남여치 주차장으로 가는데 미터기로 2만7000원이 나온다. 운전기사가 부안의 관광지 중 한 곳을 안내하는데 친절하고 정보도 실속이 있다. 기사는 우리 숙소가 채석강 옆 대명콘도라니까 콘도에서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가면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바닷길도로가 있는데 그 길에 적벽강, 하섬 등 관관지가 있으니 둘러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도로 끝이 새만금도로와 연결되니 새만금도로를 타고 가다가 왼쪽의 고군산대로를 이용해 고군산군도까지 둘러보라고 한다. 기사가 추천하는 곳이 모두 처음이어서 다음날 그 길을 따라가며 기사에게 감사의 말을 속으로 전했다.

 

■내소사(來蘇寺)

내소사(來蘇寺)는 아름다운 산문(山門) 가운데 하나다.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 두타가 창건하고 이런 저런 전란을 겪으며 소실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현재의 내소사를 있게한 우암 혜산 선사가 내소사에 주석하면서 쇠락해진 전각과 요사를 정비, 복원하여 오늘날의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사찰이 처음 섰을 때의 이름은 내소사가 아닌 소래사(蘇來寺)였다. ‘소래’라는 이름 속에는 ‘내생(다음 세상)에 반드시 소생(蘇生)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찰의 이름이 바뀐 연유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먼저 반기는 것이 천왕문 전 피안교까지 이어지는 600m의 전나무 숲길이다. 하늘로 치솟은 100살 넘은 굵은 둥치의 전나무들이 도열하니 마치 숲의 회랑 같다. 그러나 숲이 형성된 시기와 이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400여년 전 내소사를 중건할 당시 숲도 함께 조성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천왕문을 지나 내소사로 들면 앞마당에 뿌리를 내린 1000년 수령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시선을 잡아당긴다.

내소사 앞 전나무 숲길

 

절의 내부를 둘러보니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대형그림인 영산회괘불탱(보물 1268호) 등 보물도 많다. 특히 인조 11년(1633년) 청민대사가 건립했다는 대웅보전을 바라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웅보전은 쇠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만 매끄럽게 이음매를 맞췄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단청이 퇴색되어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났는데도 단청을 덧칠하지 않아 한결 수수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고풍스럽고 고색창연하다. 그러나 건물 내부는 다르다. 화려한 색감의 후불탱화 등이 장엄한 불화의 세계를 선사하고 있다. 특히 삼존불을 모신 후불벽의 ‘백의관음보살상’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백의관음보살 중 가장 크다. 총 6칸 흙벽에 그렸다. 저녁해가 비치니 대웅보전 벽이 황금빛이다. 저녁해를 받아 고즈넉하고 평온하다.

내소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수수·단아하고 고색창연해

대웅보전은 건물 자체도 고풍스럽지만 대웅전 전면의 8짝 봉합창문의 꽃 문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꽃 문살은 연꽃, 국화, 모란 등 여러 꽃무늬를 조각했다. 마치 꽃잎이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고 정교해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법당 안에서 문을 보면 꽃무늬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단정한 마름모꼴 살 그림자만 정갈하게 비친다.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서면 용마루 위로 관음봉이 솟아 있다. 내소사에는 전각과 요사가 20여개동이 넘는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

 

내소사를 뒤로 하고 인적없는 급경사 산자락을 오르면 머리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 관음봉 아래 관음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내소사에 속해 있으면서도 경내를 벗어난 곳에 터를 잡은 독특한 건물이다. 관음전 앞 뜨락에 서면 내소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소사 앞에서는 우뚝 선 관음봉의 위세 탓에 절집이 평면적으로 보이는데 관음전에 올라 절집 뒤편에서 내려다보니 양옆 산자락의 긴 능선이 만나는 자리에 터를 잡은 내소사가 자못 입체적인 느낌이다. 관음전 가는 길은 내변산의 세봉까지 이어졌으나 등산객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관음전에서 산길을 더 짚어 올라가면 내변산의 암봉과 하늘을 지붕 삼은 암자 청련암이 있다. 청련암은 내소사 창건에 앞서 먼저 문을 열었던 곳이니 내소사의 뿌리인 셈이다. 본디 청련암에서 불법을 설파하다 신도들이 모여들자 산 아래에 내소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의 무지와 무신경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의 무지와 무신경을 지적해야겠다.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관음봉 정상에 3장의 천이 펄럭인다. 산불조심, 음주행위 금지, 흡연금지, 쓰레기투기 금지, 애완동물 반입금지를 경고하는 천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관음봉 정상표지석 바로 뒤에 걸어놓아 정상의 멋진 풍경을 망쳐놓고 있다.

관음봉 정상. 표지석 뒤로 3장의 알록달록한 천들이 흉물스럽다.

 

땀흘리며 힘들게 정상에 올라간 등산객이라면 누구나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텐데 3장이나 되는 커다랗고 알록달록한 천이 정상표지석 바로 뒤에 흉물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정상석 주변 공간이 좁아 도무지 천을 피해 사진을 찍을 방도가 없다. 결국 자연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고 싶어도 그리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사진이 잘나오고 안나오고의 문제가 아니다. 왜 빨강 파랑 노랑의 알록달록한 인공물로 정상의 자연경관을 망쳐놓느냐는 것이다. 다른 국립공원 정상에서 이렇게 무지하고 무신경한 곳을 본 적이 없다. 변산반도공단은 무슨 생각으로 알록달록한 천을 그곳에 걸어놓았을까. 그래야 공단이 금지하고 금지하고 금지하는 것을 등산객들이 잘 지킨다고 본 것일까. 공단의 무신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요 지점과 지점 간의 거리가 안내판마다 제각각이다. 주요 지점이란 원암 → 재백이 고개 → 관음봉삼거리 → 관음봉 → 세봉 → 세봉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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