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지난 20년간 알라딘에서 가장 많이 팔린 SF소설이 ‘멋진 신세계’라는데… 올더스 헉슬리의 삶과 작품 세계

↑ 국내에서 출판된 3종의 ‘멋진 신세계’ 표지

 

by 김지지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지난 21년간 자체 SF(과학소설)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알라딘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판매한 SF 중 디스토피아를 다룬 ‘멋진 신세계’가 판매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3위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순으로 나타났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6위를 차지해 국내 SF로는 상위 20위 안에 유일하게 들었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 가문과 문학가 집안의 혈통을 갖고 태어나

올더스 헉슬리(1894~1963)는 백과사전적 박학다식을 발휘하며 30권의 책을 펴낸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였다. 그의 저서나 작품은 풍자가 번뜩이고 지식이 심오한 게 특징이다. 중반기까지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오만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예고하는 예언자적 작품이 많았으나 후반기에는 동양정신과 신비주의 등에 천착했다.

헉슬리는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 가문과 문학가 집안의 혈통을 갖고 태어났다. 할아버지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발전시킨 저명한 과학자였다. 형 줄리언 헉슬리는 생물학자, 동생 제임스 헉슬리는 의사이자 정신병리학자로 유명했다. 이복동생 앤드루 헉슬리도 노벨상 생리·의학상을 수상(1963)한 세계적인 생리학자였다. 어머니는 옥스퍼드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시인으로 영국의 유명 시인이자 문예비평가인 매슈 아널드의 질녀였다. 종교와 사회문제를 대담한 소설로 묘사한 햄프리 워드 부인도 헉슬리의 외척이다.

헉슬리는 이러한 지적 환경 속에서 태어나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대 의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1911년 각막염 수술을 받은 후 눈이 극도로 나빠져 1916년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4살 때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1908)과 둘째 형 노엘 헉슬리의 자살(1914)에 이어 시력상실의 충격까지 더해지자 내면 세계로 침잠했다.

‘불타는 수레바퀴’(1916) 등 몇 권의 시집을 냈으나 첫 장편소설 ‘크롬 옐로’(1921)가 호평을 받자 소설가로 일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크롬 옐로’는 1차대전 후 지식층에 만연한 혼란과 퇴폐를 풍자적이고 파괴적인 필치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후 1차대전 후 방황하는 지식인과 유한부인을 그린 ‘어릿광대의 춤’(1923), 1920년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연애대위법’(1928)을 출간함으로써 1920년대 영국의 대표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마침내 1932년 ‘멋진 신세계’를 출간함으로써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 반열에 올랐다.

올더스 헉슬리

 

과학과 진보에 대한 맹신과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

‘멋진 신세계’는 과학의 무한 발전이 인간의 안락과 사회 안정을 보장하기는커녕 종국에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비극적 상황을 풍자한 반유토피아 소설이다. ‘멋진 신세계’의 의도는 과학과 진보에 대한 맹신과 인간의 욕심이 결국 유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인 디스토피아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을 1920~1930년대에 대두된 전체주의적 정치 체제와 연결했다는 점에서는 17년 후 등장할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연상시켰다.

‘멋진 신세계’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제5막 1장에 나오는 “오,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신세계여!”에서 땄다. 시대 배경은 ‘포드 기원’ 632년의 영국 런던이다. ‘포드 기원’은 미국의 자동차회사 포드사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T형 자동차’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서기 1913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따라서 AD로 말하면 2540년이다.

그런데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기점으로 파괴적 회의주의자에서 건설적 도덕론자로 변신한다. ‘가자에서 눈이 멀어’(1936)를 후기 도덕가적 경향을 띤 첫 작품으로 꼽는다면 ‘멋진 신세계’는 헉슬리 인생의 전기와 후기의 가교적이고 과도기적 작품이다. 헉슬리는 1937년 거의 실명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주로 캘리포니아주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멋진 신세계’ 초판

 

LSD 복용으로 환각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길 떠나

1944년에는 가톨릭 신비주의와 불교·힌두교의 종교적 체험에 몰두하면서 부정과 비리에 대한 불교적 해석을 모색한 ‘시간은 멈추어야 한다’를 발표하고, 1949년에는 과학과 전쟁에 의해 황폐해진 인간세계를 동물세계에 빗대 풍자한 ‘원숭이와 본질’을 발표했다. 점차 궁극적인 실체란 무엇인가에 빠져들면서 1953년 환각제 메스칼린을 복용하고 이후 총 10년에 걸쳐 10번의 환각 세계를 경험했다.

이때의 환각 체험을 소설로 쓴 ‘지각의 문’(1954), ‘천국과 지옥’(1956) 등은 당대에 ‘사이키델릭 문화의 고전’, ‘히피의 경전’으로 칭송받았다. ‘신비주의자’, ‘약물 옹호자’라는 비판이 가해졌으나 일부 젊은이는 ‘지각의 문’을 하나의 교조로 받아들였다. 유명 록그룹 ‘도어스(Doors)’도 ‘지각의 문’에서 딴 이름이다. 1962년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와는 달리 과학에 지배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유토피아 소설 ‘섬’을 남겼다.

그리고 1963년 11월 22일, LSD 복용으로 환각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부인이 읽어주는 시를 들으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그의 부인이 쓴 ‘영원한 순간’에는 헉슬리의 마지막 순간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날 헉슬리는 2시간 간격으로 두 차례 LSD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오후 5시 20분 평화롭게 사망했다. 다만 5시간 전 피살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에 가려져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올더스 헉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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