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개그콘서트’, 스타 개그맨 배출하고 각종 유행어 산실로 21년간 장수했으나 시청률 저하에 따라 기약없는 휴식 선언

↑ KBS2 ‘개그콘서트’ 1000회 기념사진(2019년 5월 13일). 왼쪽부터 유민상, 신봉선, 김미화, 강유미, 전유성, 김대희, 송준근, 박영진, 정명훈

 

by 김지지

 

지상파 유일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KBS2 ‘개그콘서트’가 “변신을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고 밝혔다. 달라진 방송 환경,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첫 방송 후 21년만의 휴식 선언에 사실상 종영이 아니냐는 해석이 적지 않다. ‘개그콘서트’는 실험적인 코너를 잇달아 선보이면서 오랫동안 ‘국민 예능’으로 군림했으나 야외 버라이어티와 관찰 예능의 강세가 지속되고 시청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개편 때마다 위기론이 대두되었다. 마지막 방송된 1046회(2020년 5월 8일) 시청률은 2.5%였다.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90년대 중반

방송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쇠락의 조짐을 보인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이경규·이홍렬·신동엽·남희석 등 인기 개그 스타들이 신설된 버라이어티쇼와 시트콤으로 떠나고, 시청자들도 콩트 코미디를 더 이상 반기지 않은 게 주원인이었다. 여기에 버라이어티쇼와 시트콤들이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면서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서서히 그 존재 의미를 잃어갔다. 이러다가 코미디 장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할 정도로 불황의 골은 깊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공채 개그맨들을 방출하거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사정은 1999년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대학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그 공연무대는 성황을 이루었다. 대학로 한편에서는 정찬우, 김태균 등 컬트 3총사가 ‘개그콘서트’라는 제목의 공연으로 관객을 끌어모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획자 전유성과 연기자 백재현을 중심으로 신인 개그맨들이 개그 공연을 활발하게 펼쳤다. 춤과 노래와 마임, 그리고 3분을 넘지 않는 빠른 템포의 개그들로 구성된 이들의 공연에 젊은 관객은 박수와 폭소로 화답했다. 대학로의 개그맨들은 관객과 정면으로 만나는 부담감 때문에 항상 아이디어를 짜는데 골머리를 앓았다. 그렇게 짜낸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먹히지 않으면 춤과 노래로 대신했다.

컬트 3총사.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찬우, 김태균, 정성한

 

그 무렵 개그맨 김미화가 그 흐름을 포착했다. 김미화는 당시 인기를 끌던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처럼 현장 분위기를 담은 코미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대에서 하는 개그 공연을 방송에 도입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판단이 서자 기획안을 만들어 KBS 제작진에 제안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회의적이었다. 우선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형식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앙코르 개그’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게다가 신인 개그맨을 위주로 한다는 점이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돈을 주고 방청객을 동원해야 하는 형편에 관객이 자발적으로 모일지도 의문이었다.

 

김미화가 현장 분위기를 담은 새로운 포맷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제안

그러나 “세 달만 시간을 달라. 코미디 한 번 해보겠다. 파일럿을 떠보고 재미없으면 안 내보내면 되지 않느냐”는 작은 고추 김미화의 매운 설득에 제작진도 손을 들고 파일럿(시험)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이때 김미화를 도와준 선배가 평소 개그 아이디어가 철철 넘치는 전유성이었다. 그는 당시 백재현과 함께 대학로에서 개그공연 중이었다.

2002년 9월 SBS TV ‘김미화의 코미디 스쿨’ 프로에 초대된 백재현(왼쪽)과 전유성

 

파일럿 무대는 음악 콘서트처럼 공연 문화로 기획되었다. 낯설고 파격적인 포맷이라 방송국의 반응은 여전히 반신반의하거나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박중민 PD와 전유성, 김미화, 백재현, 심현섭, 김대희, 김지혜 등 선·후배 개그맨들은 기존 공식을 파괴하는 도전에 땀을 흘렸다. 프로그램 이름은 당시 대학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컬트 삼총사’에게서 동의를 얻어 ‘개그콘서트’로 확정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KBS 2TV 방송 전파를 탄 것은 1999년 7월 18일(일) 밤 9시였다. 무대에서는 1~3분 정도 길이의 17개 소극이 막간 쉼표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거친 듯 하지만 생동감 있는 즉흥 대사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초대 손님으로 2인조 댄스가스 ‘컨츄리 꼬꼬’의 장기와 노래, ‘컬트 삼총사’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이날 방청석에는 400여 명의 20대 젊은 남녀가 가득찼다. PC통신으로 6,000여 명이 방청을 신청했을 만큼 방송 전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다. 파일럿은 이렇게 성공했고 1개월 후 본 방송이 결정되었다.

개콘 초기 멤버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대희 김영철 백재현 심현섭 김준호 김지혜 김미화 ㅇㅇㅇ

 

한국 코미디의 부활이자 ‘개그콘서트’ 전설의 시작

마침내 ‘개그콘서트’의 첫 방송이 안방을 파고든 것은 1999년 9월 4일(토) 밤 9시였다. 침체되어 있던 한국 코미디의 부활이자 ‘개그콘서트’ 전설의 시작이었다. 첫 회 시청률은 10%를 넘지 못했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했다. 초기 분위기를 책임진 개그맨들은 김미화, 백재현, 심현섭이었다. 특히 심현섭은 정치인 흉내 내기에 이어 ‘사바나의 아침’에 추장으로 등장, “밤바야~~”를 목청껏 외치며 ‘개콘’을 각인시키고 키잡이 역할을 했다. 1999년 연평균 시청률 16.3%로 시작해 점점 오른 수치는 2003년에는 무려 28.9%를 기록했다. 30%를 넘을 때도 있었다.

‘사바나의 아침’에서 추장으로 분한 심현섭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개콘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03년 1월이었다. 심현섭, 강성범, 이병진, 김준호, 황승환 등 주연급 7~8명이 대거 이탈해 그해 4월 방송을 시작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개콘은 당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박준형과 정종철을 전면에 내세우고 2진이던 정형돈, 김상태, 김기수, 임혁필 등을 1진으로 전진 배치해 위기를 타개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생활사투리’ ‘9시 언저리 뉴스’ ‘개그J 특공대’ 같은 생활 밀착형 코너부터 ‘걸인의 추억’ ‘집으로’ 등 패러디 코너, ‘우비 삼남매’ ‘대단해요’ 등 캐릭터 코미디가 인기를 끌었고 개콘은 한국의 간판 공개 코미디로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2003년 8월 31일 방송된 200회 특집은 당시 역대 예능 최고 시청률 35.3%를 기록했다.

그러던중 ‘웃찾사’의 적극적 공격으로 개콘의 시청률이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2004년 말에는 웃찾사에 시청률이 뒤지기도 했다. 그러나 개콘은 곧 정상을 탈환했고 이후 한 번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았다. 2008년에도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 등 주력 멤버들이 MBC의 ‘개그야’로 옮기는 위기가 있었으나 이미 자리가 잡힌 개콘의 아성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개콘의 10년간 평균 시청률은 19.2%에 달했다. 웬만한 오락 프로그램이 1년을 넘기기도 쉽지 않은 마당에 이처럼 높은 시청률로 장수하는 건 경이적인 일이었다.

 

스타 개그맨의 배출지이자 각종 캐릭터와 유행어의 산실

개콘은 스타 개그맨의 배출지였고 각종 캐릭터와 유행어의 산실이었다. ‘울랄라 추장’ 심현섭, ‘연변 총각’ 강성범, ‘남남북녀’의 김지선을 비롯해 ‘갈갈이 3형제’의 박준형, ‘옥동자’와 ‘마빡이’ 정종철, ‘사랑의 카운슬러’ 커플 유세윤과 강유미, ‘고음불가’의 이수근, ‘달인’의 김병만, ‘대화가 필요해’의 김대희, ‘왕비호’의 윤형빈 등 숱한 개그맨이 잇따라 탄생했다. “그까이꺼 뭐 대충”(장동민),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황현희) “무우를 주세요”(박준형), “고뤠~”(김준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박성광), “소는 누가 키우나?”(박영진) 등 숱한 유행어도 낳았다.

‘갈갈이 3형제’. 왼쪽부터 정종철, 박준형, 이승환

 

특히 김병만은 2002년 공채 데뷔 후 5년 동안 “몸만 쓰는 개그맨” 소리를 듣다가 2007년 12월 개콘의 ‘달인’을 시작해 2011년 11월까지 3년 11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출연해 ‘인간 승리’라는 찬사를 들었다. 개콘의 성공에 힘입어 개콘 출신 개그맨들은 KBS를 넘어 지상파와 종편을 가리지 않고 타 방송사의 각종 오락 프로그램까지 점령하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초 역으로 종횡무진했다.

개콘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인기 개그맨 1~2명이 빠져도 별 문제가 없도록 만든 견고한 시스템에 있었다. 이 탄탄한 시스템은 신인들이라도 아이디어와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출연 기회를 보장받고, 스타 개그맨이라도 동료와 방청객을 웃기지 못하면 금세 도태되는 완벽한 개방형 경쟁 체제를 통해 구축되었다.

덕분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신인 개그맨의 등용문 역할을 하며 수많은 스타를 양성했다. KBS의 연말 연예대상에서는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만 4차례(2003, 2011, 2012, 2013)나 차지했다. 백상예술대상과 한국방송대상도 수상했는데 각종 시상식에서 코미디언상도 42개 차지했다. 김준호, 강유미, 박성호, 유민상, 김병만, 김준현, 김지민, 정종철 등이 각종 상을 휩쓸었다.

개콘의 인기를 견인한 주역들. 위 왼쪽부터 심현섭, 강성범, 박준형. 중간 왼쪽부터 이수근, 김병만, 정종철 아래 왼쪽부터 안상태, 유세윤, 윤형빈

 

개콘 최장수 코너는 김병만의 ‘달인’
역대 최고 유행어는 옥동자의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척 하기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개그콘서트’는 점차 위기를 맞았다. 공개 코미디 포맷 자체가 식상해지고, 야외 버라이어티와 관찰 예능 등이 주류 장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튜브 등 자유로운 콘텐츠가 많아지고 방송 환경의 변화로 지상파 공개 코미디의 한계가 꾸준히 지적되었다. 일부 프로의 편향된 정치 코미디와 달라진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하지 못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고공행진을 하던 ‘개그콘서트’는 2016년 연평균 시청률 10%를 찍은 것을 마지막으로 줄곧 한 자릿수를 유지했다. 2019년 에는 2001년부터 18년간 지켜온 일요일 밤 시간대도 내줬다.

이처럼 개콘이 위기에 처해 곧 종영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개그콘서트’의 폐지를 막아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으나 식상해진 공개 코미디 포멧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3%대까지 시청률이 추락함으로써 사실상 휴식의 수순을 밟아야 했다. 2020년 5월 현재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tvN ‘코미디 빅리그’만이 남아있으나 1%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어 앞날 역시 불투명하다.

2019년 5월 개그콘서트 1000회를 맞아 KBS가 내놓은 그동안의 방송 기록 즉 연도별 코너, 유행어, 각종 특집 방송, 연출진과 연기자의 변동사항을 기록한 자료에 따르면 개그콘서트 최장수 코너는 김병만, 노우진, 류담이 꾸민 ‘달인’이었다. 3년 11개월간 무려 197회 방송된 ‘달인’은 무수하게 많은 에피소드를 탄생시켰다. ‘달인’은 또한 시청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역대 최고의 코너’, ‘역대 최고의 캐릭터’로도 꼽혔다. 2위는 김준호 등이 출연한 ‘집으로’(2년 2개월·115회), 3위는 송준근 등이 나온 ‘생활의 발견’(2년 2개월·110회), 4위는 김대희·장동민·신봉선 등의 ‘대화가 필요해’(2년·105회), 5위는 박성호의 ‘뮤직토크'(2년·103회)가 차지했다.

‘달인’ 코너. 왼쪽부터 노우진, 김병만, 류담

 

최다 출연자 영광은 터줏대감 김준호에게 돌아갔다. 그는 1000회 방송 동안 797번 출연함으로써 개그계를 대표하는 기둥임을 확고히 하고 2위는 그와 함께 양 기둥으로 불리는 김대희(720)가 차지했다. 3위는 정명훈(628회), 4위는 유민상(621회), 5위는 송준근(598회)이었다.

시청자 대상 설문에서 역대 최고의 유행어는 옥동자의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척 하기는, 적어도 나 정도는 돼야지’(18%·188명)가 차지했다. 2위는 장동민의 ‘그까이꺼 대충’(15%), 3위는 박준형의 ‘무를 주세요’(13%), 4위는 김준호의 ‘자냐자냐’(13%), 5위는 박영진의 ‘소는 누가 키워!’(12%)였다.

최다 출연한 김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