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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가봐수까 ⑦] 산굼부리는 빼어난 자연미(自然美)와 인공미(人工美)의 적절한 조합체… 너른 평지에 움푹 패인 깊고 커다란 분화구가 이색적

↑ 산굼부리 모습. 오른쪽이 구상나무길이고 사진 위쪽에 전망대와 꽃굼부리가 보인다.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자연미와 인공미의 적절한 조합

오늘의 방문지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소재한 산굼부리다. ‘굼부리’는 화산체의 분화구를 일컫는 제주말이다. 산굼부리는 오름으로 분류하지만 막상 가보면 여느 오름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고 높이가 평지에서 30m도 채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곳이 오름인 것은 ‘오름’을 뜻하는 ‘자그마한 산’이고 화산 분출이 있어서다.

일반 오름과 또 하나 다른 점은 인공적으로 잘 가꾸고 관리해 유명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이유다. 빼어난 자연미에 인공미를 적절히 조합한 것인데 이를 두고 “자연의 속살을 헤집은 인간의 손길이 느껴져 서글픈 생각이 든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평소 나는 “날것의 자연미에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야 자연미도 돋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공미는 깔끔하게 조성된 주차장에서부터 확인된다.

산굼부리 지도

 

▲가을철 최고의 억새 명소 중 한 곳

입구는 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는 영봉문(榮鳳門)이다. 입주 주변에 구멍이 뻥 뚫린 바위덩어리가 있다. 10만 년 전 화산 폭발 후 솟아오른 용암이 나무를 덮고 흘렀을 때 만들어진 암석이다. 용암에 갇혔던 나무가 높은 온도를 견디지 못해 숯덩이가 되었다가 차츰 없어져 이름이 ‘용암수형석(溶岩樹形石)’이다.

입구인 영봉문

 

주변 곳곳에는 1~2m 크기의 화산탄도 놓여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회전하면서 떨어지던 중 굳어져 만들어진 폭탄바위이다. 영봉문 안으로 들어가면 기이한 수목이 줄지어 서 있고 각종 기암괴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 현무암으로 쾌적하게 조성한 탐방로를 따라가면 억새밭 사이로 완만한 경사길이 그림처럼 펼쳐 있다. 제주의 억센 바람을 뚫고 억새를 감상하다 보면 곧 해발 438m 지점인 산굼부리 정상에 닿는다. 정상 주변은 크게 억새밭, 굼부리, 구상나무길, 꽃굼부리로 나뉜다.

완만한 경사길 양쪽에 펼쳐있는 억새밭

 

먼저 억새밭을 살펴보자. 산굼부리는 가을철 최고의 억새명소 중 한 곳이다. 가을철 입구에서 분화구 방향으로 오르다보면 은빛 물결의 억새가 군락을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억새밭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역시 억새로 유명한 제주 서쪽의 새별오름보다 규모는 작지만 워낙에 깔끔하게 관리해 안구가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가을이 아니더라도 사계절 중 어느 계절에 방문하든 멋진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꽃굼부리는 넓직한 잔디정원이다. 사방이 담으로 둘러쌓인 그 안에 또다시 자그마한 담으로 둘러싸인 5~6기의 무덤이 있다. 묘에 담을 쌓는 이유는 방목으로 키우는 소나 말이 묘를 파헤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영화 ‘연풍연가’(1998년)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산굼부리에서 출입이 허용된 곳은 오름 전체를 기준으로 약 4분의 1 정도다. 나머지 부분은 보존을 위해 남겨두고 있다

꽃굼부리

 

▲너른 평지에 깊고 커다란 분화구가 푹 꺼져있는 게 특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굼부리는 절구통을 연상시키지만 미끈하고 잘 생겼다. 분화구 밑바닥까지 볼 수는 있으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분화구 주위에 둘레길이 없어 아쉽다. 분화구 밑둘레가 756m이고 바깥둘레가 2,7㎞ 정도이니 둘레길을 만들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비고가 100m 내외의 높은 곳에 위치한 다른 오름과 달리 너른 평지에 깊고 커다란 분화구가 푹 꺼져있는 게 특이하다.

몸집(화산체)에 비해 분화구 크기가 파격적으로 큰 것도 눈길을 끈다. 몸뚱이는 없고 아가리만 벌려 있는 것 같은 기이한 형상이다. 대접을 엎어 놓은 듯한 형태이거나 말발굽 형태인 다른 오름 분화구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분화구 바닥이 해발 305m이고 정상이 438m이니 표고차(깊이)는 133m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 깊이가 115m이므로 이곳 분화구가 18m 더 깊다. 북쪽 기슭의 도로가 해발 410m 안팎이므로 정상까지의 높이는 28m 정도다.

깊이가 100m 이상인데도 큰 메워짐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내사면이 우거진 초목으로 다져져 있어 토사의 유입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분화구의 표고가 낮고, 밑지름과 깊이가 백록담보다 더 크고 깊은데도 산정호수처럼 물이 고이지 않는 것은 화구에 내린 빗물이 화구벽의 현무암 자갈층을 통하여 바다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한다.

굼부리

 

▲한동안 ‘마르형’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피트형’으로 인정

굼부리가 평지에 깊숙하게 형성되고 주변에 용암이 높게 쌓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폭발은 있었지만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소량에 그치고 구멍만 깊숙이 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형태의 분화구를 학계에서는 ‘마르(Maar)형 화구’라고 하는데 ‘마르’란 화구 둘레가 환상(環狀·고리처럼 동그랗게 생긴 형상)의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폭렬화구(화산이 터질 때, 산의 일부가 폭파되어 생긴 구덩이나 구멍)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산굼부리가 유일하고 세계적으로도 일본과 독일에 몇 개 정도에 불과하다. 제주도에서는 문화재청의 이런 분석을 토대로 산굼부리를 마르형이라고 홍보해왔다.

그런데 2015년 산굼부리 분화구가 ‘마르형’이 아니라 ‘피트(Pit)형’이라는 학계의 조사결과가 나와 지금은 피트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즉 화산체가 폭발하고 용암이 분출하면서 지하에 빈 공간이 생겼는데, 이후 냉각되어 굳은 화구의 상부가 자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함몰형 분화구(Pit Crater)가 만들어진 피트형이라는 것이다.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은 “1970∼1980년대 일부에서 산굼부리의 희귀성과 독특함을 강조하기 위해 ‘마르형’이라 잘못 표현한 것을 체계적인 조사와 검증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정부의 문화재 자료에까지 그렇게 된 것”으로 설명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산굼부리 전경. 굼부리(사진 위), 구상나무길(왼쪽 상단), 꽃굼부리(아래 중앙), 입구(아래), 억새밭(가운데 오른쪽)

 

▲구상나무길

전망대 왼쪽에 목재로 만든 ‘산굼부리’라는 대형입간판이 있고 그 뒤로 잘 다듬어진 풀밭이 넓게 펼쳐있다. 풀밭 뒤 왼쪽에 힐링코스인 왕복 1.2㎞의 구상나무길이 있어 가보았더니 구상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걸으며 구상나무, 비자나무, 해송은 물론 인공조림 나무인 삼나무까지 비교하며 관찰할 수 있다. ‘위기의 구상나무’라는 제목으로 구상나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어 살펴보았는데 일부 내용이 잘못 되어 있다.

왼쪽이 구상나무길이고 오른쪽이 굼부리다. (출처 탐라문화유산보존회)

 

정확히 설명하자면 구상나무는 한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우리나라의 자생 품종으로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으로 불린다. 덕유산, 지리산 등 남부 지방의 높은 산에 사는데 제주도 한라산에 가장 많이 자생하고 있다. 구상나무의 존재를 처음 알게된 서양인은 1907년 제주도에서 활동하던 프랑스의 포리 신부다. 그는 분비나무와 비슷하지만 잎과 열매의 생김새가 사뭇 다른 상록침엽수를 한라산에서 발견하고는 나무의 표본을 채집해 미국 하버드대 부설 수목원에서 활동하던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에게 보냈다.

윌슨은 1917년 제주도를 방문해 한라산 백록담 기슭에 무리 지어 살고 있는 구상나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나무가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새 품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한국의 침엽수’를 뜻한 ‘Abies koreana’라는 학명을 붙여 전 세계에 구상나무의 존재를 알렸다. 윌슨은 제주도 주민들이 ‘쿠살낭’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구상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제주도 사투리로 ‘쿠살’은 해녀들이 바다에서 잡는 ‘성게’를, ‘낭’은 나무를 가리킨다. 구상나무의 잎이 성게 가시처럼 생겼다고 해서 ‘쿠살낭’이라고 부른 것이다.

 

기온 상승할 경우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어

구상나무가 세상에 알려지자 유럽의 식물 애호가들이 제주도를 찾아와 씨앗을 가져가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양에서 정원수와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우리는 사용료를 내고 구상나무 품종을 역수입하는 불공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구상나무 관련 재산권이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있기 때문이다.

산굼부리에 있는 구상나무

 

구상나무는 서식지와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고사목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기온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경우 구상나무가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위험에 처한 적색목록’에서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하고 국제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산굼부리는 다양한 희귀식물들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분화구 식물원’이기도 하다. 일정한 장소에서 모여 사는 특유한 식물집단을 의미하는 이곳의 식생(植生)은 독립적이다. 분화구 안에서 자라는 420여 종의 식물들은 같은 제주도의 한라산에 있는 식물들과 격리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분화의 길을 걸어와 식물 분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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