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강원도 선자령을 겨울에만 두 번 다녀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초록계절에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

↑ 정상 바로 전, 너른 초지(草地)가 온통 눈세상이다.

 

by 김지지

 

▲선자령은 이런 곳

 

강원도 선자령을 겨울철 2개월 사이 두 번 다녀왔다. 한 번은 2020년 1월 4일 고교 동기들과 함께이고 또 한 번은 2월 29일 집사람이 동행했다. 겨울철만 되면 주위에서 “선자령 선자령” 하는데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아 궁금해하던 차에 고교 친구에게서 선자령 제안이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만사 제쳐두고 응했다.

선자령은 강원도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백두대간의 한 고갯길로,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의 경계에 있다. 옛날 대관령에 도로가 나기 전 영동 지역으로 가기 위해 나그네들이 이곳을 넘나들었다.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 데서 선자령(仙子嶺)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지만 사실 선자령의 백미는 계곡이 아니라 능선이다. 능선 동쪽은 넓은 해안평야지대와 야산들뿐이어서 동해까지 눈에 걸리는 게 없다. 서쪽에서는 포근하고 편안한 모습의 구릉지가 반긴다. 출발지에서 선자령까지 길 이름은 선자령 풍차길이다. 강릉시에서는 이곳을 바우길 제1구간으로 지정했다. 바우길은 17개의 일반구간에 3개의 특별구간을 합친 명칭이다.

능선에서 바라본 서쪽 숲. 눈이 수북하다.

 

선자령은 사시사철 여행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 계절은 눈쌓인 겨울철이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눈이 내린다 싶으면 평일에도 등산객들로 붐빈다. 고교 동기인 남수, 선근, 영일, 정형, 철호 이렇게 다섯 친구들도 1월 4일 눈쌓인 선자령을 상상하면서 영일의 랭글러 지프에 몸을 실었다.

 

▲산행

 

선자령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갈래

산행기점은 선자령 주차장이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옛 대관령 휴게소다. 지금은 지방도로로 격하된 구 영동고속도로의 상행 휴게소였다. 기온은 영하 8도를 가리켰다. 한겨울이어서 바람이 당연히 거셀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보다는 약했다. 그래도 단단히 채비하고 9시 50분쯤 산행을 시작했다.

200~300미터 앞에 들머리가 있다.

 

선자령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국사성황사를 기점으로 왼쪽의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 완만한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거나 오른쪽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다가간다. 물론 양떼목장을 지나 계곡 방향으로 가거나 등산로 입구에서 국사성황사 쪽으로 가지 않고 바로 오른쪽 능선길을 이용할 수도 있다.

들머리는 휴게소에서 200~300m 정도 떨어진 주차장 동쪽(선자령 방향) 끝에 있다. 우리는 오른쪽 능선길로 올라가 계곡길로 하산한다. 등산로 입구(주차장) → KT중계탑 → 새봉 전망대 → 선자령 → 샘터 → 재궁골삼거리 → 풍해조림지 → 국사성황사 → 등산로 종점(주차장)이다. 거리는 대략 11㎞이고 시간은 4~5시간 정도 걸린다. 구체적인 길은 아래 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들머리는 ‘대관령국사성황사’라고 씌어있는 대형 표지석의 왼쪽 길이다. 주차장 해발이 830m이고 정상이 1,157m니 표고차는 320여m밖에 안 된다. 더구나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경사가 완만하고 길도 잘 조성해놓아 초보 산행객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운동화를 신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다.

선자령 지도

 

새봉전망대에 서면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초입은 넓은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철 푸르른 군락지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주로 쓰이는 구상나무로 알았는데 나중 확인해보니 주목이란다. 주목과 구상나무의 차이는 이파리를 만져보면 알 수 있다. 이파리를 만졌을 때 부드러우면 주목이고 찌르는 느낌이 들면 구상나무다.

초입의 주목 나무

 

완만한 경사길을 20분 정도 오르니 대관령 옛길 이정표가 보이고 능선 양쪽으로 길이 나있다. 길은 능선 왼쪽의 국사성황사와 오른쪽 강릉 방향으로 이어진다. 바우길 제2구간과 상당부분 겹친다. 대관령 옛길은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이이)의 손을 잡고 강릉과 한양으로 오가던 길이다. 율곡의 친구이자 강원도 관찰사였던 송강 정철은 이 길을 지나 ‘관동별곡’을 썼다. 청운의 꿈을 안은 영동의 선비들이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정취가 서린 옛길이기도 하다. 김홍도는 이 길 중턱에서 대관령의 경치에 반해 화구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다.

바우길2구간(출처 사단법인 강릉바우길 홈페이지)

 

콘크리트 포장도로는 KT중계탑 옆을 지나 삼거리에서 끝난다. 직진하면 무선항공통제소 방향이고 왼쪽 숲속으로 작은 샛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경사가 가팔라지는 곳에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두 길은 나중에 만나지만, 오른쪽 능선길로 올라가야 선자령 코스 최고의 전망대인 새봉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해발 1,050m의 새봉에는 사람들이 쉬거나 주변 경치를 볼 수 있게 목재로 넓게 만든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 서면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동쪽은 급경사여서 눈에 걸리는 것 없이 동해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강릉이 고향인 영일이가 동해를 가리키면서 위로부터 주문진, 영진항, 사천진항, 강릉 경포대라고 알려준다. 전망대 저 아래에 우주선 같은 게 보였으나 무엇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귀가 후 찾아보니 한국공항공사 무선표지소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새봉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안 모습

 

전망대에서 5분 정도 지나니 조금 전 갈림길이 다시 합쳐지고 이후 한동안은 내리막 숲길이다. 산죽과 참나무가 섞여 자라고 있다. 완경사 숲길을 10분 정도 걸으니 왼쪽으로 광활한 구릉지가 펼쳐지는 능선 위로 올라선다. 건너편 구릉지에는 하야디 하얀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가 바람의 세기에 맞춰 웅웅거리며 돌고 있고 능선과 구릉지 사이에는 우리의 하산길이 낮게 깔려 있다.

 

정상에는 7m 높이의 ‘백두대간 선자령’ 표지석 서 있어

왼쪽이 탁 트인 능선길을 따라 걷다보면 곧 1071m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 완만하게 비탈진 초지(草地)가 넓게 펼쳐진다. 눈이 쌓였다면 장관이었을텐데 아쉽기만 하다. 초지 초입에서는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가 돌고 있으나 바람이 세지 않아 소리가 요란하지는 않다. 선자령 주변은 국내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다. 모두 44기이고 총 발전량은 소양강 다목적댐의 절반에 해당하는 98Mw이다. 약 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라고 한다.

정상으로 오르기 바로 전의 비탈진 초지

 

초지를 지나 100m쯤 더 오르니 널찍한 선자령 정상이다. 시계가 11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으니 2시간 남짓 걸린 셈이다. ‘백두대간 선자령’이라고 쓰여있는 7m 높이의 대형 표지석이 우뚝하다. 사람들이 표지석을 배경으로 정상 인증샷을 찍으려고 줄지어 서있다. 그런데 실제 선자령 정상은 100m쯤 올라간 지점의 둥그스름한 봉우리다. 그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곤신봉, 매봉을 지나 소황병산까지 이어지는 마치 알몸 같은 백두대간 능선에 20여 개 풍력발전기가 도도하게 바람을 맞고 있다. 그 능선 오른쪽에서 시퍼런 동해가 찰랑거린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친구들. 오른쪽은 사진을 찍으려고 줄지어 있는 모습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모습

 

정상에서 300m의 급경사를 내려가면 너른 임도와 연결된다. 임도는 나중에 오솔길로 바뀌어 숲속 나무들과 더불어 운치를 더해준다. 하산길은 능선이 아니라 숲길의 연속이다. 여느 숲길과 비교해도 정취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호젓하고 포근하고 품위가 있다. 발걸음이 가볍다. 종착지에 다가갈수록 길옆 개울은 점차 계곡으로 넓어진다. 선자령 명칭은 이 계곡에서 유래했다.

크고 작은 주목도 곳곳에서 보이고 눈부시게 흰 나무껍질을 가진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도 있다. 낙엽송(일본잎갈나무)과 전나무 혼재림도 나타나는데 낙엽송이 심어지기 전 그곳에는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 산에서 화전을 일궈 살던 주민을 내보내고 남은 빈터에 속성으로 자라는 낙엽송을 심은 것이다. 숲길에는 화전민들의 식수원이었던 샘터도 있다.

자작나무(왼쪽)와 낙엽송

 

계곡길, 호젓하고 포근하고 품위있어

선자령 정상에서 3.8㎞ 정도 내려가니 재궁골삼거리다. 안내판에는 하산길 기준 왼쪽 방향을 가리키며 <대관령휴게소 2.3㎞>, <국사성황사 0.8㎞>라고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으로는 <가시머리 3.1㎞>라고 표시되어 있다. 다만 재궁골삼거리에서 국사성황사로 가기 전 중간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만나게 되는 양떼목장 안내는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선자령에서 내려와 양떼목장을 지나 하산하려는 초행자들은 재궁골삼거리에서 어느쪽으로 가야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다른 등산객에게 물어보지만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우리 역시 국사성황사로 가야할지 반대쪽 가시머리쪽으로 가야할지 한동안 헷갈렸다. 물론 미리 지도를 보았다면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에 안내판을 만들었으니 <국사성황사 0.8㎞> 표시 아래에 같은 방향으로 <양떼목장 1.3㎞>를 표시하면 좋을 것 같다.

국사성황사 방향 길 0.8㎞는 마지막 오르막이다. 중간에 풍해조림지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국사성황사고 오른쪽으로 가면 양떼목장이다. 두 곳 모두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국사성황사로 갔기 때문에 양떼목장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그 길을 지나온 등산객의 글을 보면 양떼목장 옆에 친 펜스를 끼고 양떼목장을 살펴보면서 하산한다.

국사성황사는 사찰인지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신당이었다. 국사성황사에는 4개의 신이 있다. 김유신 장군과 범일국사, 나머지 신은 물신과 천신이다. 물신은 용왕, 즉 관음보살과 관련 있는 신이고, 천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다. 강릉시에서 매년 강릉단오제가 열리는 첫날,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 성황사에서는 범일국사를, 그리고 성황사 오른편 위쪽에 올라서 있는 산신각에서는 김유신 장군을 모시고 있다. 종착지인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 23분이다. 5시간 30분이나 걸린 것인데 한 친구가 중간에 쉬다가 등산지팡이를 깜빡놓고 와 되돌아가 가져오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선자령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눈을 연상하는데 눈이 쌓여있지 않아 눈길을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량한 겨울철 눈이 없는 선자령은 앙코 없는 진빵아닌가. 녹음이 짙은 숲속도 궁금했다. 결국 눈이 쌓이거나 녹음이 우거진 시기에 다시 찾아오라는 숙제를 받은 셈이다.

순백의 숲속

 

▲2개월만에 다시 찾다

 

학수고대하던 눈을 실컷 구경

사방이 황량했던 선자령의 아쉬움을 벌충할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선자령행을 계획하던 중 2월 27일 반가운 기상예보가 떴다. 28일 오후부터 29일 새벽까지 강원도 산간에 눈이 내린 후 낮부터 맑게 갠다는 예보였다. 29일 토요일 선자령을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몇몇 친구들에게 의사를 타진하니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그런지 선뜻 응하는 이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혼자 가려니 집사람이 동행하겠단다.

그렇게 떠난 2월 29일의 선자령은 기상예보와 달리 맑지는 않았으나 학수고대하던 눈만은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다만 1년 전 태백산의 설경을 보고 설산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진 상태여서 선자령의 설경은 성에 차지 않았다. 눈이 많이 쌓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눈을 매개로 빚어내는 설경 이를테면 주목을 덮고 있는 환상적인 눈이라든지 상고대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또 하나 비교하자면 온통 순백의 눈세상인 태백산과 달리 선자령은 사철 푸른 나무들이 많아 눈세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비교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그런 심리인지 모른다.

눈 무게 때문에 기울어있는 소나무

 

휴대폰 내비에 ‘선자령등산로 주차장’을 찍고 10시 반 도착하니 주차장은 이미 입구부터 만차여서 진입할 수 없었다. 도로 한쪽 차선도 이미 길게 주차한 상태였다. 순간 내비에 찍을 다른 지명이 떠올랐다. 주차장은 같으나 입구가 반대편에 있는 ‘강원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었다. 예상대로 그쪽 입구는 상대적으로 덜 붐볐다. 주차하고 복장을 챙긴 후 출발지에 서니 어느덧 11시 40분이다.

 

눈을 확인하니 초록의 선자령이 궁금해져

코스는 1월 4일과 같으나 국사성황사로 하산하지 않고 양떼목장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밤새 내린 눈이 30~40센티는 쌓인 듯 보였다. 눈도 잘 뭉치는 함박눈이다. 그토록 기대해온 선자령 눈구경을 하니 눈(目)이 호강한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오늘도 바람은 유순하다. 중반부터 정상까지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사람들이 어떤 것은 흘겨보는 표정으로 어떤 것은 앙증맞은 미소로 등산객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눈사람

 

정상 전 초지에 도착하니 눈을 치워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낼 백패커들이다. 순간 “선자령은 백패커들의 성지”라는 대학 후배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어마무시한 크기의 배낭을 메고 오후에 산에 올라가 하룻밤을 그곳에서 세운 뒤 다음날 새벽에 일출을 보고 오전 내려가는 게 일상이다. 산이 높아도 거리가 멀어도 마다하지 않는다. 배낭을 짊어진 젊은 남녀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보여 절로 기분이 좋다.

나도 대학 후배를 따라 충남 홍성의 오서산을 비롯해 백패킹을 세 번 했다. 당시는 여름인데도 배낭무게가 16㎏ 정도였다. 후배가 짐을 덜어주어서 그런 것이지 실제로는 더 무겁다. 그러니 겨울철이면 장비가 더 많아져 훨씬 무거워진다.

백패커들의 텐트. 오른쪽은 지인이 하루 전 촬영한 사진이다.

 

정상 전 초지에 도착하니 말을 타고 주위를 돌아보며 흥겨워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관광상품인지 주민인지 모르겠는데 복장으로 봐선 관광객인 듯 싶다. 1500m 고지의 눈 위에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니 신기하다. 오늘도 사람들이 여지없이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줄지어 있다.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호젓하다. 선자령의 눈을 경험하니 이번에는 초록의 선자령이 또 궁금해졌다. 계곡물소리도 시원하고 풍해림에 심어놓은 낙엽송도 여전히 쭉쭉 뻗어있다.

고지 눈 위에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흥미롭다.

 

재공굴삼거리에서 양떼목장 찾지 못해 고생만 잔뜩 해

재궁골삼거리에 도착했다. 종착점까지는 대략 2.1㎞ 거리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앞서 말한대로 재궁골삼거리의 안내판에는 양떼목장이 없다. 위쪽 방향으로 <국사성황사 0.8㎞>, 오른쪽 계곡 방향으로 <가시머리 3.1㎞>만 안내할 뿐이다. 그래도 2개월 전 다녀왔으니 양떼목장 방향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하는데 이상하게 양떼목장과는 거리가 먼 <가시머리 3.1㎞> 안내판을 보고 그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양떼목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착각이고 고생의 시작이었다.

가시머리쪽 눈길에 발자국이 적게 찍혀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양떼목장 코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걸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나중에 생각하니 한심했다. 집사람은 왜 안내판에도 없는 길을 가느냐며 뒤돌아가자고 계속 불만을 터뜨리고 불안해 하는데도 나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집사람의 불안감이 다소 해소된 것은 우리와 똑같은 부부 즉 우리처럼 양떼목장이 그쪽에 있을 것으로 믿고 그 길을 선택한 부부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이 보인 후였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신발이 눈 속에 푹푹 빠졌다. 체력 소모도 크다.

그렇게 2.5㎞ 정도를 무작정 가니 목장의 축사같은 건물들과 눈에 덮힌 너른 초지가 보였다. 그곳이 양떼목장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은 가시머리에 위치한 대관령 느린마을 전원주택단지였다. 단지 밖에 설치한 안내판에도 재공굴삼거리와 가시머리만 안내할 뿐 양떼목장은 안내하지 않았다.

가시머리에 위치한 대관령 느린마을 전원주택단지

 

두 달 사이 두 번 다녀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그런데 그 안내판 옆에 누군가 손으로 삐뚤삐뚤 쓴,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양때목장’ ‘휴계소“ 안내판이 산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으로 걸어가니 발자국은 더욱 적어지고 눈은 더 깊었다. 그렇게 1㎞ 정도 올라갔을까 펜스가 쳐져 있었다. 양떼목장 경계일 것으로 생각되는 그 펜스를 피하려면 산쪽으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거리를 알 수 없어 막막한데다 해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푹푹빠지는 산길을 걸어 피곤도 몰려왔다.

할 수 없이 가시머리 쪽으로 돌아가 주택단지를 관통했다. 네이버 지도를 살펴보니 그곳에서 휴게소까지는 도보로 뺑돌아 40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도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니 집사람의 얼굴에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재공굴삼거리에 양떼목장 방향 안내판을 설치해줄 것을 관리소 측에 거듭 요청한다.

두 달 사이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도 선자령이 자꾸 어른거린다. 고놈의 양떼목장을 보지 못하니 퍼즐맞추기에서 한 귀퉁이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다. 양떼목장이 대단한 것도 아닐텐네 직접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전하다. 초록의 선자령도 궁금하므로 5월 이후에 다시 다녀와야겠다. 머리가 무겁고 가슴 속이 답답할 때 찾아가면 더욱 좋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가보면 만나게 되는 초록의 숲길 (출처 평창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