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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권력’에 맞섰던 검찰들 3-②] 이탈리아 피에트로 검사와 ‘마니 풀리테’ 운동… 성과 있었으나 국민의식이 뒷받침하지 않아 베를루스코니라는 구악(舊惡) 정치인 낳아

↑ ‘마니 풀리테’ 운동의 주역들. 왼쪽부터 피에트로와 콜롬보 검사, 보렐리 치안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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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이탈리아 전후(戰後) 정치 상황…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유착을 관행으로 치부

이탈리아는 독일·일본과 함께 2차대전의 패전국이어서 종전 후 미군정의 지배를 받았다. 미군정은 전 세계가 미국·소련 중심의 냉전에 휩싸이게 되자 공산당 등 좌파 정치 세력은 배제하고 우파인 기독교민주당(기민당) 중심의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운이 좋게도 1950~1960년대의 경제성장은 눈부셨다. 이 때문에 사회기강 등을 세우는 데는 둔감했다. 이는 1970년~1980년대에 정치적 후견인제도, 파벌주의, 엽관주의, 마피아 유착 등이 만연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후견인제도는 중앙의 주요 인물을 후견인으로 놓고 그 아래 수많은 직위와 끈들이 연결되어 있는 제도였다. 엽관주의는 선거로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선거에서 공을 세운 사람을 관직에 임명하는 정치 관습을 뜻한다. 제1당인 기민당은 사회당 등의 연립 정당들과 함께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고 조장했다.

이탈리아의 이런 정치 시스템 덕분에 집권당은 한번의 정권 교체도 없이 계속 권력을 독점했다. 정치인들은 이를 기반으로 이권에 개입하고 기업과 유착하고 불법으로 결탁하는 패거리를 양산했다. 1980년대 말까지는 여전히 냉전시대여서 기민당 등 연립 정당은 한 방향, 한 목소리로 국민을 유도하는 반공 정치를 표방하면서 속으로는 부패한 방식으로 잇속을 챙겼다. 그런데도 이 강력한 집단과 충돌하는 정당·단체의 세력이 약해 부정부패는 아무런 견제 없이 정치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대기업들은 이런 정치인들과 유착을 강화하면서 부를 쌓았다.

권력독점의 세 주역. 왼쪽부터 베티노 크락시(전직 총리이자 사회당 당수), 줄리오 안드레오티(전직 총리이자 장관), 아르날도 포를라니(기민당 당수)

 

부정부패가 극성을 부린 데는 선거제도에도 원인이 있다. 공산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다보니 제1당이 단독으로 집권하기 어렵고 그래서 군소정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야합이 성행했다. 그럼에도 성장의 절정기를 달릴 때이고 반공을 우선하던 냉전기여서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유착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치부되고 나라를 위한 효율성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부패사건이 터질 때마다 미봉책의 명분과 구실을 제공해주던 냉전의 위협이 1980년대 말 사라지고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부패라는 종기를 놔두었다가는 나라가 결단날지도 모른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던 1992년 2월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조그마한 사건 하나가 터졌다. 소규모 청소용역회사 사장이 관급공사를 따기위해 사회당에 정치자금을 대오다 힘에 부쳐 이를 검찰에 알린 것이다. 용역회사 사장은 1992년 2월 어느날 밀라노 사회당 지부 위원장이자 요양원 원장인 마리오 키에자에게 사업청탁의 대가로 700만 리라를 뇌물로 건네주면서 펜형의 녹음기를 상의 안에 넣고 대화내용을 녹음했다. 또한 결정적인 증거를 남기기 위해 700만 리라 지폐에 모두 표시를 했다. 그리고는 검찰에 이 사실을 알렸다. 밀라노 검찰청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당시 42세) 검사는 2월 17일 뇌물을 받은 요양원장의 집을 수색해 700만 리라의 현금을 압수했다. 수년 동안 이탈리아 사회 전체를 들쑤셔놓은 이른바 ‘마니 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마니 풀리테’ 가동… 선봉은 피에트로 검사

마니 풀리테의 주축은 밀라노의 젊은 검사 3명이었고 그중 선봉은 피에트로 검사였다. 피에트로는 빈농에서 태어나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밀라노 대학 법학과 야간부에 등록, 뒤늦게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 치안판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이었다. 수사팀은 먼저 요양원장에게 뇌물을 주고 입찰공사를 따낸 다수의 사업가들을 구속했다. 뇌물사건 초기 국민과 여론은 전부터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종종 발생했기 때문에 그런 유형의 사건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실제로 이 정도의 뇌물수수는 윤활유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피에트로 검사를 비롯한 밀라노 수사팀은 그 뇌물이 단지 원장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 정당의 불법자금 조성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집권 연립정당은 물론 주요 야당인 공산당과 다른 군소 정당들에도 뇌물이 전달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부정부패가 정치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고 고착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심증뿐이던 부패한 정치자금 구조가 물증을 통해 밝혀지자 검찰은 경찰과 세무팀을 보강해 ‘밀라노 풀’을 구성하고 고위공직자·기업인·조폭의 삼각 커넥션을 파헤치는 것으로 수사범위를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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