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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의 일본 산책> 규슈 사가현의 가라쓰(唐津)는 해류 따라 이동한 백제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 가카라시마(加唐島)는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섬

↑  가라쓰성(唐津城)에서 내려다본 가라쓰 시내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비(妃) 허황후(許皇后)가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설화와 ‘신라의 4대왕 석탈해가 바다를 표류해서 신라에 도착했다’는 설화가 있다.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볼 때 이해가 잘 안되는 일이지만, 해류(海流)의 흐름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주장(고려대 김현구 교수)도 있다.

또한 과거 일본 가고시마 사츠마번(藩)의 시마즈(島津)가 1609년 류큐왕국(현 오키나와)을 정벌할 수 있었던 것은 ‘계절풍을 잘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같은 맥락이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바다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해류와 계절풍을 잘 알면 길이 보인다’는 것이리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물론, 물건, 기술, 문화도 바다를 건너서 새로이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다.

고은의 시 ‘북청사자 춤’에도 이러한 흐름이 녹아 있다.

<아프리카 마사이 초원 언덕 / 한나절 내내 / 먼데 바라보고 있는 사자인 적 있는가 / 그대 / 어찌 어찌하여 / 그 존엄스러운 사자가 /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져 / 바다 건너 / 고대 서부 인도간다라 지나 / 서녘 오아시스 지나 / 장안 지나 / 동북아시아 고려에 이르러… (중략) / 천 년 전 아프리카와 고려가 이렇게 아득히 하나였으니…〉

 

사가현 북서부의 가라쓰(唐津), 충남 당진(唐津)과 이름 똑같아

일본의 후쿠오카(福岡)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쯤 서쪽으로 달리면 우리나라의 충남 당진(唐津)과 이름이 똑같은 도시가 나온다. 일본어로는 ‘가라쓰(唐津)’라고 한다.

사가현 가라쓰 지도

 

가라쓰시(市)는 사가현 북서부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후쿠오카현, 서쪽은 바다 건너 나가사키현, 남쪽은 다쿠시(多久市), 다케오시(武雄市), 이마리시(伊万里市)가 있다. 그리고 북쪽은 현해탄 연안 지역이다. 총 면적은 487.42㎢, 인구 13만 5000명의 중소 도시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 ‘대륙과의 교류의 장’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가라쓰란 이름의 어원을 보면 이 도시의 역할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빨라진다. ‘가라(韓唐)’를 건너는 나루(津)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과 200㎞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이기에 가라쓰의 파도 소리가 대륙까지 들릴 수 있다.”는 그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가라쓰성

 

어떻게 백제인들이 일본에 많이 갔을까? 최인호 작가가 피와 땀을 흘려 쓴 ‘제 4의 제국’에 답이 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인 기록을 담은 활동사진 같다. 그가 밝힌 백제인들의 해상로다.

하남 위례성 → 아리수(한강) → 임진강 → 서해 → 남해 → 쓰시마 → 이키섬(壹岐) → 하카다(博多, 현 후쿠오카) → 시모노세키(下關) → 일본 내해(內海) → 니니와(難波, 현 오사카) → 목적지 왜에 상륙〉이다.

그러나 최인호 작가는 가라쓰란 도시를 방문한 이후부터 이 항로에 대해서 수정을 했다. <쓰시마 → 이키섬 → 하카다〉의 항로를 쓰시마 → 이키섬 → 가라쓰 → 하카다>로 바꾸었다.

사실일 것 같다. 지도를 거꾸로 돌려 보면 더욱 이해가 된다. 해류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교류의 역사’가 예로부터 이곳 가라쓰에서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최인호의 ‘제4의 제국’

 

작은 어촌 요부코(呼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위해 출병한 곳

가라쓰에서 버스로 40분, 택시로 20분 정도 달리면 요부코(呼子)라는 자그마한 어촌이 나온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속초 같은 분위기다. 이곳은 일본의 어느 지역보다도 오징어의 맛이 뛰어나다. “오징어가 오징어지 별거야?” 하던 사람들도 일단 맛을 보고 나면 입이 딱 벌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먹거리’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뒤얽힌 ‘역사의 실타래’를 풀어보고자 한다.

요부코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조선침략(임진왜란)을 위해 출병한 곳이다. 전쟁에 나간 ‘아들을 부른다’는 의미가 ‘요부코(부를 呼, 아들 子)’라는 도시 이름을 탄생하게 했다.

“아들아 ! 아들아 !”

현해탄을 바라보면서 일본의 어머니들은 조선을 향해서 목이 터져라 외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어머니들은 어떠했을까? 목이 터지다 못해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민초들의 아픔을 그 누가 알까? 오로지 ‘검은 바다’ 만이 알 일이다.

<오오! / 현해탄은 현해탄은 / 우리들의 운명과 더불어/ 영구히 잊을 수 없는 바다다〉(임화, 1908~1953)

요부코 전경

 

가카라시마(加唐島)는 무령왕이 태어난 섬

임진왜란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타임머신을 타고 백제로 가보자. 요부코에서 뱃길을 따라 30분 정도 파도를 가르면 가카라시마(加唐島)라는 섬이 나온다. 그 섬에서 백제의 무령왕(25대)이 태어났다. 무령왕이 왜? 그곳에서 태어났을까?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김현구)에 잘 설명되어 있다.

<4월, 백제의 개로왕이 동생 곤지에게 ‘너는 일본으로 가서 천왕(백제계)을 섬겨라’고 하면서 임신한 자기 부인을 동생에게 주었다. ‘임신한 내 부인은 이미 산달이 되었다. 만일 도중에 출산을 하게 되면 부디 배에 태워서 속히 우리나라로 돌려보내라’…>

가카라시마

 

개로왕의 부인과 동생 곤지가 일본으로 항해하다가 태풍을 만나 방향을 잃고 표류하였다. 결국은 무인도인 가카라시마(加唐島)에 흘러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피신하던 중 난산(難産) 끝에 무령왕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섬에서 태어났으니 도군(島君)이라 부른다.’ 곤지에 의해서 붙여진 무령왕의 이름이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은 그를 시마카시(島君)라고 불렀으며, 백제인들은 ‘주군의 섬(主島)’이라고 했다.

전설 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역사적 고증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으며, 일본인들이 만든 관광안내서에도 명시되어있다.

무령왕이 출생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가카라시마 포구의 동굴(왼쪽)과 안내판. ‘백제 제25대 무령왕 탄생지’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처럼 바다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만들어 왔으며, 앞으로도 만들어 갈 것이다. 해류(海流)는 그 폭이 100㎞에 달하며, 수송하는 해수의 양(量)이 초당 5,000t이나 된다고 한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해수(海水)속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을까?

우리가 알 수 없는 ‘역사의 보고(寶庫)가 바로 바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가리시마 위치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대우건설과 팬택에서 30여 년 동안 홍보업무를 했다. 2008년 홍보컨설팅회사 JSI 파트너스를 창업했다. 폭넓은 일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엮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 <현해탄 파고(波高) 저편에> <홍보는 위기관리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장편소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