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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가봐수까 ②] 다랑쉬오름은 ‘제주 오름 답사 1번지’… 등산의 맛, 거대한 분화구, 뛰어난 조망, 완벽한 균제미와 대칭미가 자랑

↑ 다랑쉬 오름 분화구. 2021년 5월에 촬영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by 김지지

 

■왜 다랑쉬오름을 찾는가

 

오름은 한라산 동부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구좌읍은 오름이 모여 있어 ‘오름의 왕국’으로 불린다. 오름은 저마다 특색이 있고 각각의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제주도민이 아닌 바에야 한정된 시간에 다 오를 수는 없다. 이럴때 제주 토박이에게 묻는다. “오름 중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그러면 돌아오는 답의 십중팔구는 다랑쉬오름이다.

실제로 가보면 이유를 알게 된다. 먼저 오르는 맛이 쏠쏠하다. 20~30분 정도만 오르면 능선을 만나는데 전반적으로 경사가 비탈져 나름 등산의 재미가 있다. 제주 바람을 맞으며 걷는 풀밭 능선 길, 크고 깊은 분화구, 뛰어난 조망에서도 다른 오름을 압도한다.

다랑쉬오름(왼쪽)과 아끈다랑쉬오름 모습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또 다른 자랑은 어디에서 바라봐도 한결같은 균제미(均齊美)와 대칭미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오름 둘레와 굼부리(분화구) 둘레가 거의 동심원이고, 원거리에서 바라보면 가파르면서도 매끈한 원추형이다. 전체 둘레는 3391m, 밑지름은 1013m이고 해발고도는 383m, 비고(比高·평지에서 치솟은 산 자체의 높이)는 227m이니 독립 오름으로는 꽤 큰 규모다. 이렇게 말끔한 형체가 가능한 것은 한 번의 강력한 폭발만 있고 추가적인 변동이 없어서다. 영화배우와 비교하자면 잘생긴 남자의 대명사 남궁원이나 신영균이다.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고 해서 제주말로 다랑쉬(도랑쉬, 달랑쉬)라는 설, 오름 위로 떠오르는 달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높다는 뜻의 제주어 ‘달’에 봉우리 뜻을 가진 ‘수리(쉬)’가 합쳐졌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설들은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다랑쉬오름이 두 가지 설을 다 만족시킬만한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자로는 ‘달 도련님 봉우리’라는 뜻의 ‘월랑봉(月郞峰)’이다.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

 

■올라가보니

 

아내와 함께 다랑쉬오름을 찾아간 것은 2018년 12월 28일이었다. 아무리 제주도라지만 한겨울이다. 서울 날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바람이 세다. 해서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다랑쉬오름’ 표석이 세워진 들머리에서 바람을 막기 위해 옷 매무세를 가다듬었다.

초입부터 오름 중턱까지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사이로 반듯하지만 가파른 나무계단이 놓여있다. 나무계단 옆에는 다랑쉬오름을 지키는 근위대처럼 삼나무들이 줄을 맞추어 몸을 곧추세우고 있다. 우거진 숲을 빠져나가면 가파른 언덕이다. 시야가 탁 트이고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랑쉬 오름 초입

 

지그재그로 사면을 계속 오르니 능선이 보인다. 숨을 고르고 앉아 쉴 수 있는 널찍한 데크도 있다. 데크 맞은편 가까운 곳에는 아끈다랑쉬 오름이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람이 더욱 거세지니 체감온도가 더욱 낮아진다.

능선 위에 서면 움푹 패어 있는 깔대기 모양의 거대한 원형 분화구(굼부리)가 실체를 드러낸다. 둘레는 1500m이고 깊이는 백록담과 같은 115m다. 비고가 227m이니 절반 정도가 안쪽으로 구멍이 파인 셈이다. 아래에서 봤을 때 밋밋한 산봉인데 그 봉우리 가운데에 그렇게 깊고 움푹 꺼진 분화구가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발을 헛디뎌서 분화구 속으로 미끄러지면 위로 올라올 수 없을 것처럼 경사가 급하다. 오름의 외형만큼이나 분화구가 그렇게 잘 생길 수가 없다.

능선의 가장 높은 곳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그 옆에 서면 막힘없는 제주도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뜬다랑쉬오름, 지미봉, 말미오름, 용눈이오름, 손지오름, 높은오름, 돗오름 등이 황무지 같은 벌판에 꿋꿋하게 서있다. 아끈다랑쉬 너머로는 지미봉, 우도, 성산일출봉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오름의 여왕’이다. 용눈이오름과 함께 제주 동부 오름의 대표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정상 한쪽에 ‘망곡의 자리’가 있다. 제주 사람 홍달한이 1720년 숙종 임금이 승하했을 때 다랑쉬오름 꼭대기에 올라와 수평선 너머 북녘 하늘을 보며 슬퍼했다는 자리다. 들머리에서 올라가 전체 능선길을 다 돌고 원점회귀하는데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다랑쉬 오름에서 내려가는길. 올라올 때도 이 길로 오른다

 

■이왕이면 아끈다랑쉬까지

 

이왕에 다랑쉬오름까지 올라갔으니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400m 정도 떨어진 아끈다랑쉬를 빼놓을 수는 없다. 다랑쉬오름 정상에서 그 귀여운 진면목을 내려다봤으니 더욱 그러하다. 아끈은 제주 사투리로 ‘버금가는 것’, ‘둘째 것’이라는 의미다. 다랑쉬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오름이란 뜻이다. 한자로는 ‘소월랑봉(小月郞峰)’이다. 다만 정식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지 않아 길이 편하진 않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본 아끈다랑쉬 모습이 사람들 눈에는 각기 다르게 보이나보다. 도넛, 동그란 방석, 깎아놓은 밤송이처럼 생겼단다. 공통적인 인상은 매끈하면서도 앙증맞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주도 동부 지역 사람들 중 일부는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를 부를 때 “아유, 요 아끈다랑쉬 같은 계집애”라고 한단다. 해발고도는 198m, 비고는 58m이고 굼부리 깊이는 10m 남짓이다. 가을에 오르면 굼부리를 가득 덮은 억새가 인상적이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본 아끈다랑쉬오름.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다랑쉬굴, 제주 4·3사건 비극의 현장

 

다랑쉬오름 들머리를 지나 들녘으로 조금 더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한 그루의 팽나무 아래에 비석이 서 있다. ‘잃어버린 마을 : 다랑쉬’라는 이름의 비석은 이곳이 1948년 제주 4·3사건으로 사라진 한 마을의 터임을 알려주고 있다. 부근에 ‘다랑쉬굴’이 있다. 다랑쉬오름 동쪽 해발 170m 지점이다.

1992년 4월, 아이 1명이 포함된 시신의 유골 11구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부근 해안마을의 주민들이었다. 1948년 10월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져 굴에 숨어 살다가 1948년 12월 18일 군·경·민 합동토벌대에게 굴이 발각되었다. 토벌대가 굴속에 수류탄 등을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지만 주민들은 나가도 죽을 게 뻔한 상황이어서 응하지 않았다. 결국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그들 모두를 질식사 시켰다.

그로부터 44년 후 수습된 유골은 한줌의 재로 변해 바다에 뿌려졌다. 그후 그들이 사용하던 솥과 단지, 그릇 같은 유물들을 굴속에 그대로 남긴 채 입구를 바위로 봉쇄했다. 제주 4·3평화기념관에 당시 다랑쉬굴의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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